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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조주빈 검거 100일…달라진 檢警, 그러나 여전한 법원



사건/사고

    '박사' 조주빈 검거 100일…달라진 檢警, 그러나 여전한 법원

    • 2020-06-23 05:20

    경찰, 조주빈 체포 이후 '부따','갓갓' 등 주요 피의자 검거 성과
    성범죄 적용 최초 신상공개…박사방 일당에 '범죄단체죄' 적용도
    그러나 '여전한' 법원, 집행유예 50% 이상…실형은 2년6월 그쳐
    성범죄 등 한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양형' 결정해야 목소리도
    결국 '피해자'가 직접 나서…방청연대 구성해 공판 '지켜보기'

    [편집자주] 'n번방'.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게 하고, 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갓갓'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져 '1~8번방'까지 존재했던 이 방들은 경찰 수사를 피할 목적으로 수없이 생산과 폭파를 반복하면서 'n'번방이라고 불렸다.

    점차 갓갓의 범행 수법을 모사한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피해자 수 역시 그에 비례해 늘어났다. 그 중 피해자들을 가장 악랄하게 괴롭힌 것으로 유명했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거대한 '디지털성범죄'의 일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23일)은 '박사' 조주빈이 검거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온라인에서 은밀히 자행되던 범죄에 경악한 우리 사회는 이후 숱한 대책을 쏟아냈지만, '실제' 변화가 있었는가를 묻는다면 확신에 찬 답은 어려워 보인다. CBS노컷뉴스는 연속 기획으로 '디지털성범죄'의 현 상황을 점검하고, 이를 뿌리 뽑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봤다.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 3월 25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살인 아닌' 성범죄로는 최초 신상공개…檢 '범단죄' 적용도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지난 3월 16일 경찰에 체포된 조주빈은 목에 깁스를 하고, 머리에는 밴드를 붙인 채 처음 포토라인에 서서는 스스로를 '악마'에 비유했다. 그는 지금 매일 반성문을 쓰고 있다.

    조주빈 검거 이후 드러난 'n번방' 실태에 우리 사회는 격분했다. 경찰은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단'을 꾸려 주요 운영자와 공범들 추적에 나섰다. 공범 '부따'(강훈), '이기야'(이원호)를 잇따라 검거한 경찰은 잠적한 'n번방' 창시자 '갓갓'(문형욱)까지 체포했다. 이외에도 'n번방' 통로라 불리는 '링크공유방'의 운영자 '커비'와 10대 남학생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중앙정보부'의 운영자들도 속속 붙잡혔다.

    경찰청은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27일 기준 총 664명을 검거했고, 86명을 구속했다. 검거된 가해자들은 10~20대로, 피해자도 마찬가지로 10~2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방 피해자만 미성년자와 성인을 합해 70여명에 이른다. 유료회원을 상대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경찰이 현재까지 신원을 파악한 박사방 유료회원만 60명으로, 다른 'n번방'까지 확대하면 수사대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주빈은 살인 이외의 범죄로는 '최초' 신상공개가 된 사례다. 수사 단계에서의 신상공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각각 규정돼 있었지만, 실제 성폭력 범죄가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조주빈을 필두로 공범 강훈과 이원호의 신상공개가 이뤄졌고, 문형욱에 이어 지난 22일 그의 공범 안승진까지 신상이 공개됐다.

    (이미지=연합뉴스)

     

    특히 수사기관이 '박사방' 일당을 '범죄단체'로 규정하고, 관련 혐의를 적용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사방 일당은 조주빈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피해자 유인, 성착취물 제작·유포, 수익금 인출·전달 등을 해왔다. 전날 검찰은 조주빈을 포함한 일당 8명에 대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추가 기소했다. 이에 따라 이들에게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큰 성과 중 하나는 기존에 붙잡힌 성범죄 피의자 중 'n번방'과의 관계가 드러난 이들에게 합당한 처벌이 한 발짝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앞서 '고담방' 운영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와치맨'은 CBS노컷뉴스 취재로 'n번방'의 핵심 인물임이 드러나면서, 선고가 미뤄진 상황이다. 3년 6개월을 구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검찰은 뒤늦게나마 "죄질에 부합하는 중형이 선고되도록 하겠다"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다만 아직 붙잡히지 않은 'n번방' 운영자 추적은 남아 있는 과제다. 조주빈이 처음으로 텔레그램 세계에서 이름을 알린 '완장방'의 운영자 '체스터'와 박사방 공범 '사마귀' 등이 아직 붙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계속해서 쫓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단서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일단 신원이 특정된 피의자들을 중심으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최대 '3년' 또는 '집유'…아동·청소년 성착취에 '여전한' 사법부

    "형사 처벌의 전력이 없고,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합의했다.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개월 선고한다."(2020년 6월 10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 혐의를 받는 A씨 항소심 선고 재판중)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피고인의 부모가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에게 오랜 기간 용서를 구하고자 노력했다.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한다."(2020년 6월 10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 혐의를 받는 B씨 항소심 선고 재판중)

    그러나 문제는 수사기관이 힘들게 범인을 찾아내 재판에 넘겨도, 법원이 이들을 '솜방망이' 처벌한다는 데 있다. A씨는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A씨는 항소해 지난 6월 10일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로 감형됐다. 그는 최후 변론에서 "수감된 9개월 동안 반성했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심에도 불복해 최근 대법원에 상고했다.

    B씨에 대한 판결은 더욱 황당하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4개월 후 열린 2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법원은 "피고인의 나이가 젊고,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선처를 구하기에 이번에 한해 형을 유예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외에도 '갓갓'(문형욱)의 공범 C씨는 최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갓갓에게 돈과 자신의 체액을 함께 전달하며 미성년 피해자가 이를 먹도록 시키게 했다. 갓갓의 성착취물과 관련해 먼저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미성년자 4명에게 성착취물을 170개 찍도록 지시하고, 미성년자 성착취물 1만7900개를 소지한 혐의도 받는다. 법원은 "장차 치료를 받아 왜곡된 성적 충동을 고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아울러 갓갓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또 다른 공범 D씨도 최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초범이고 반성문의 내용을 볼 때, 그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한 사람에게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유기징역의 상한선이 징역 30년인 것을 감안하면, 판사가 선고할 수 있는 형의 범위는 5~30년 사이다.

    그러나 실제 선고는 최소 형량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처분결과 집행유예 비율이 51.9%로 과반을 웃돌았다. 징역형은 37.7%에 불과했다. 최종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 평균 형량은 2년 6개월에 불과했다.

    이는 판사에게 부여된 '작량감경'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작량감경이란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감경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범죄 등은 시민들이 직접 양형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판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의하면, 성폭력과 아동학대, 산재 사고 등의 범죄에 한해서는 형을 선고할 때 판사는 유·무죄 여부만 판단한 뒤, 구체적 양형은 외부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국민양형위원'의 심의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미지=연합뉴스)

     

    ◇변하지 않는 국가, 결국 '피해자'가 직접 나서…"지켜봐야 바뀐다"

    여전히 지능화된 성폭력에 상응하는 '맞춤 처벌'을 내놓지 못하는 사법부를 바라보는 민심(民心)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조주빈이 검거된 이후 지난 3월 23일 트위터에는 'n번방 텔레그램 탈퇴 총공(총공격)' 계정이 개설됐다. 해당 계정은 같은 달 25·29일 오후 9시에 '텔레그램 동시 탈퇴'와 함께 탈퇴사유로 'Nthroom-We need your coopertation'(n번방-텔레그램의 협조가 필요하다)을 내세울 것을 제안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에 'n번방'을 올리고자 구성된 'n번방 네이버 실검 총공'도 거들기에 나섰다.

    더 이상 국가의 처분만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며 직접 발품을 팔아 가해자들의 공판이 진행되는 법정을 찾는 '자발적 감시자'들도 등장했다. n번방 관련 범죄자들의 재판을 참관하며 기록을 남기고 있는 이 방청자들은 대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n번방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왔으며, 일부는 과거 성범죄에 노출됐던 '피해자'이기도 하다.

    트위터에서 과거 '마녀'란 닉네임을 썼던 활동가 'D'(@D_T_Monitoring)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0년 지인으로부터 협박, 스토킹이 수반된 성폭행을 당한 'D'는 기나긴 투쟁 끝에 2014년 가해자에 대해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과 다양한 연대활동을 펼쳐온 'D'는 지난 5일 일명 '제2의 n번방'을 운영하며 여중생 등을 상대로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로리대장태범' 배모씨의 1심 선고공판을 방청했다. A씨는 재판부가 배씨에게 법정 최고형(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선고한 이날 "(재판부가) 적어도 이렇게 해야 한다. n번방이 알려진 이후 실질적 첫 판결이 이렇게 나왔으니 다른 재판도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n번방 운영자 중 한 명인 '잼까츄'의 공판을 지켜본 여성의당 인천시당 관계자는 "재판을 방청하러 와서 연대감을 느꼈고, n번방 사건을 주목하고 있는 여성분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며 "다만, 피고인이 재판 도중에 전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방청단을 관망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불쾌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 방청은 성범죄 피해자와 연대하는 가장 수월하고도 보편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 참여하게 됐다"며 "구형이 최대한 무겁게 이뤄지고 상급심에 가서도 (형이) 깎이지 않고 그대로 실형이 선고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nbun_out) 팀과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론인 '온성신' 또한 관련 공판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모니터링 요원들이다. 'eNd' 팀은 여성단체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과 함께 공동소송플랫폼 '화난 사람들'을 통해 미성년자 성착취물 제작·유포를 주도하거나 동조해 재판에 넘겨진 15명에 대해 '엄벌 릴레이 탄원' 캠페인을 한 달 넘게 진행 중이다.

    법원의 첫 판단이 끝난 '로리대장태범' 배씨와 '슬픈고양이' 류씨를 제외한 '박사' 조주빈, '갓갓' 문형욱 등 13인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려달라며 탄원서 작성에 동참한 인원은 22일 기준 총 13만 5900여명에 달한다.

    온성신은 이들을 소개한 'D'의 글과 같이 블로그로 "세밀하고 구체적인 방청기"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로리대장태범'의 재판을 시작으로 취재기자인 '솔개'와 '우미', '호두'가 방청한 '박사방' 연루 의혹으로 파면된 거제시청 공무원 천모씨, 조주빈의 공범 한모씨, '부따' 강훈의 공판을 꾸준히 연속보도하고 있다. 각 공판에서 나온 굵직한 쟁점과 관련법, 추후 일정까지 설명을 첨부하는 식이다.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사법부의 '몰상식'을 수동적으로 탓하는 데 지쳐, 피해자가 '능동적 액션'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 사법부의 '상식적 판결'은 언제쯤 기본값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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