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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감독이 말하는 '결백', 여성, 그리고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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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현 감독이 말하는 '결백', 여성, 그리고 인물들

    [노컷 인터뷰]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곳, 대천에 모인 사람들 ③
    영화 '결백' 박상현 감독 - 1편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오랜 시간 고향 대천을 떠났던 정인(신혜선)은 유명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가 됐다. 어느 날 정인은 TV에서 엄마 화자(배종옥)를 보게 된다. 엄마는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다. 떠나온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그곳에서 만난 엄마는 자신조차 몰라본다. 치매에 걸렸다. 그런 엄마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살인사건의 단서를 하나씩 뒤쫓는다.

    사건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번번이 대천의 권력자 추인회 시장(허준호)과 그 일행이 정인을 가로막는다. 이 수상한 남성 권력에 맞서는 이는 정인밖에 없다. 그렇게 사건의 흔적들을 발견하던 와중에 만난 엄마의 진실, 추 시장 일당의 추악한 진실은 정인을 뒤흔든다.

    정인이 목도한 진실은 관객들마저 뒤흔든다. '결백'이라는 영화 제목, 정인이 그토록 증명하려 했던 '무죄'가 가진 아이러니를 마주하며 관객들은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영화 초반에 만난 '결백'과 마지막에 만난 '결백'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연출자 박상현 감독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관해 흥미롭고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결백에 관한 아이러니를 정인이라는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상현 감독을 만나 이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 박상현 감독의 영화적 욕망_아이러니에 관한 추적극 '결백'

    '결백'은 박상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그때 그사람들' '사생결단'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의 조감독을 거쳐, 단편 연출작 '스탠드 업'으로 제8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15년부터 쓰기 시작한 '결백'은 시작부터 '여성'이 이끌어가는 작품이었다.

    "제가 시나리오를 한창 쓸 당시 진짜 남성 서사 영화들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여성이 주가 되는 캐릭터를 잡고 싶었죠. 고향을 등진 변호사 딸이 살인사건 용의자가 된 엄마를 변호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비밀이 풀리며 모녀의 선택과 신념이 바뀌는 걸 세팅한 상태에서 독극물 사건을 접하게 됐죠. 이 사건이면 땅에 발 디딜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지독하게 죄에 예민한 엄마와 딸이 살인 용의자와 변호사로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독극물 살인사건이 녹아들어 장르적 특색까지 얻게 됐다. 정인이 부딪히게 되는 아이러니가 더욱 극대화됐다.

    박 감독은 "정인은 죄를 밝히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도덕적 윤리관이 더 뛰어난 법조인이다. 그러나 판사로서 활동할 때는 그러한 직업관이 유효할지 몰라도 변호사로서는 직업적 문제가 된다"며 "엄마의 사건을 맡으며 도덕적 윤리관이라는 큰 틀에서 멀어지지만 직업적 윤리관은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박 감독이 그려내는 '무죄 입증 추적극'은 흥미롭다. 화자는 법적으로는 사실 명백한 '유죄'다. 그러나 화자의 서사를 모두 목격한 관객은 감정적으로 그에게 무죄를 줄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 사회에서도 법의 판단과 개인 내지 여론의 판단 사이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결백'은 우리가 사회에서 겪게 되는 결백에 관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영화에 '결백'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온다. 정인이 '내가 결백을 증명할게'라고 말할 때, 그리고 부장검사가 '어머니가 결백하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을 때, 이렇게 두 번 나온다"며 "또 영화 처음에 뜨는 타이틀 '결백'과 엔딩에 나오는 '결백' 디자인이 다르다. 마지막 '결백'에는 스크래치가 나 있다. 이런 걸 통해서도 영화의 의미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 박상현 감독이 바라본 채화자, 안정인 그리고 추인회

    화자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지만 누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화자가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마을 사람은 그런 화자를 향해 비수 같은 말을 던진다.

    미처 딸 정인을 향해 쏟아지는 남편의 유무형적 폭력을 막아주지 못했다. 견디지 못한 정인이 뛰쳐나간 후 홀로 가족을 챙겼다. 오랜만에 돌아온 딸을 마주하지만, 화자는 딸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의 아픈 손가락을 기억하지 못하게 한 건 과거의 진실 때문이다. 그 진실이 화자와 정인의 모든 걸 뒤바꿔 놓는다.

    "화자를 쓰면서 우리가 흔히 대상화하는 엄마지만, 엄마 이전에 각자 이름이 있는 여자로서의 엄마를 생각하고 그려냈어요. 모성애라는 큰 틀 안에서 화자는 전형적일 수 있죠. 극 중 '새끼는 비바람이 불고 날벼락이 쳐도 애미만 있으면 돼유'라는 대사가 화자를 드러내요."

    정인은 엄마가 엮인 사건이 간결한 이음새를 가진 줄 알았다. 그러나 긴 시간과 많은 인물이 얽히고설킨 일이었다. 이 복잡한 사건의 중심에는 엄마 화자가 있었고, 엄마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과정에서 정인도 그 중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실을 목격한 후 정인은 감정과 이성, 신념과 인정 사이에서 혼란과 고민에 빠진다. 결국 정인은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간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마지막에 정인은 엄마가 '꽃밭에서'를 하염없이 불렀던 과거를 떠올려요. 그리고 최후의 보루인 증거를 저수지에 던져요. 저는 이 장면을 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인의 선택이 관객에게 납득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최후변론 장면에서도 카메라를 뒤로 뺐죠. 카메라가 들어가는 순간 강요가 되지만, 이건 관객들과 같이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거든요."

    현 대천시장이자 차기 도지사 유력 후보 추인회는 인자하고 성실한 겉모습 뒤로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화자가 자신도, 기억도 놓아버리게 만든 '진실'의 중심에 있는 것도 추인회다. 그는 법적인 모호함 위에 선 인물이다. 죄를 저질렀지만, 직접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배후에서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그런 그가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다. 그걸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복잡함을 띠게 된다.

    "추인회는 정인의 아버지이자 화자의 남편인 안태수(최홍일)의 오른팔이었죠. 남자들은 절대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게 있어요. 영화에서 추인회가 태수를 파멸시키고 우두머리가 되는 순간, 그는 태수가 저질렀던 만행들을 봤기에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 하죠. 자기 손에는 피를 안 묻히고, 타인을 이용해 권력 구조의 상층부로 올라가요. 이런 인물을 허준호 선배님이 시나리오보다 조금 더 숨을 불어넣어서 명확하게 그려내셨어요."

    대천이라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추인회 시장. 그런 남성 중심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을 정인이 고군분투하며 끌어내리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좀처럼 보기 드문 여성 서사가 가져다주는 시원함이기도 하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 한 신, 한 컷에 공들인 영화, 영화계 정상화 물꼬 트길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종종 등장해 시각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하나의 커트가 완벽한 신을 이루는 원신 원컷(one scene-one cut)으로 이뤄진 오프닝에는 그 안에 모든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이 담겨 있다. 영화가 끝난 뒤 오프닝을 떠올리면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 초고 때부터 야심이 있었다. 꼭 한 번 찍어보고 싶었다. 사건의 시작인 동시에 등장인물의 관계, 설정, 권력 관계까지 다 설명된다"며 "무엇보다 관객이 집중하게끔 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하나 돋보이는 장면은 접견실에서 화자와 정인이 마주하는 장면이다. 서로 다른 기억을 달리던, 기억도 감정도 간극이 컸던 둘 사이가 좁혀지게 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 감정적인 순간을 창에 비친 두 사람의 얼굴이 겹쳐지는 효과를 통해 드러낸다.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감정적인 거리까지 좁혀진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그는 "엄마의 사연으로 인해 정인이 자기 신념을 버리게 되는 찰나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엄마와 딸의 서사가 완성되는 부분이기도 하다"며 "기술적으로 조명 세팅에도 오래 걸렸고, 배우들도 감정을 잡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완성된 장면"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는 '결백'이 개봉하기 전이었다. 그때 감독은 자신을 '감독 지망생'이라고 했는데, 영화가 개봉했으니 이제는 '감독'이다. 박상현 감독은 '결백'을 찾을 관객들에게 화자와 정인의 서사에 집중해주길 당부했다.

    "여성 캐릭터가 주축이 되는 무죄 추적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장르적 쾌감과 긴장감 등을 촘촘하게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모녀의 서사를 집중해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영화계가 많이 힘든데, 가능하다면 '결백'이 튼 물꼬가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다른 영화들로 이어지며 하루빨리 정상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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