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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독재 끝장낸 60년 전 그날 '피의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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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자료사진

     

    1960년 4월 19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대통령 하야하라"를 외치며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은 무차별 발포를 자행했다. 186명이 죽고 6천여 명이 다친 '피의 화요일'이었다.

    무자비한 진압에도 시민들의 항거는 들불처럼 번졌다. 결국 대통령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한다. '피의 화요일'이 일어난 지 일주일 만이었다.

    14일(화) 밤 10시 10분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2년간 이어진 이승만 독재정권을 끝장낸 4·19혁명 60주년을 맞아 정의와 민주주의를 지켜 온 한국 사회 시민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1960년 4월 11일 당시 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주검은 마산상고 진학을 앞둔 열일곱 살 김주열군이었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애타게 아들을 찾아 나선 어머니의 노력으로 이미 마산 시민들까지 한마음으로 김군 찾기에 동참한 상황이었다. 시신을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김군의 눈에 박힌 포탄은 군사용으로 당시 경찰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최루탄과는 모양이나 기능이 달라 의혹을 더욱 키웠다.

    앞서 그해 3월 15일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소 곳곳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깡패를 동원해 회유와 협박을 하고, 사람들을 3~5명씩 짝짓게 해 공개투표를 지시했다. 개표 현장에서도 거침없는 부정이 자행됐다. '쌍가락지표' '피아노표'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개표 조작이 이뤄진 것이다.

    심지어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여 상대 진영 관계자들을 재운 뒤 투표용지를 바꿔치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급사하면서 대통령 선거는 자유당 이승만 단독 후보로 진행됐다.

    4·19혁명이 시작되기 직전 가장 앞서 시위에 나선 무리는 10대 청소년·학생들이었다. 특히 그해 2월 28일 대구에서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마산에서 이어진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 시위에는 열일 곱살 김주열군도 동참했다.

    '역사저널 그날' 제작진은 "1960년대 정치 상황을 통해 투표권 없는 학생들이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생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본다"며 "'대한민국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한민국 헌법에 또렷이 담긴 4·19 민주이념과 4·19혁명의 가치를 이날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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