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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해자면 넌 창녀"…n번방에 당당한 남성들



사회 일반

    "내가 가해자면 넌 창녀"…n번방에 당당한 남성들

    n번방 성착취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여성들 '창녀' 조롱
    전문가 "n번방 유지시켰던 젠더 권력 과시욕 연장선"
    "여전히 여성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 안하려는 몸부림"

    25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n번방 강력 처벌을 위한 해시태그 운동이 SNS에 확산되자 일부 남성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가 피해자와 공감·연대하는 여성들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미성년자·여성 성착취의 온상, 텔레그램 n번방이 세상에 드러난 뒤로 대다수 네티즌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SNS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N번방_전원처벌하라_전부_가해자다' '#N번방_박사포토라인_공개소환' 등의 해시태그를 이용해 주범들뿐만 아니라 구매자·소지자들까지 강력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결과는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숫자로 나타났다.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요구·n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n번방 운영자들과 가입자 전원 처벌 등 n번방 관련 주요 청원 동의자 숫자는 500만 명을 넘어섰다.

    현재까지 '갓갓'의 n번방·'박사'의 박사방 등을 포함해 파생방들까지 따지면 가입자는 2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70만원에서 150만원까지 고액의 입장료를 요구했던 n번방은 여러명이 돈을 모으기도 해 실제로 이보다 많은 인원이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다.

    올해 2월 기준 텔레그램 n번방 접근이 가능했을 남성 생산가능인구(15~64세) 1904만 8121명 대비 26만 명을 계산해보면 남성 73명 중 1명은 n번방에 가담했다는 수치가 나온다. 통계만 보더라도 더 이상 다수의 남성들이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n번방 사건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가학적 성범죄를 모의·실행한 n번방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일탈 행위가 아니다.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왜곡된 남성문화 속에서 이 같은 디지털성범죄는 유흥거리로 취급되거나 방조·묵인돼왔다. 각계에서는 지금껏 침묵으로 동조했던 남성들까지 함께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숙명여대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는 23일 성명서를 통해 "텔레그램 성착취는 한 개인이 '악마'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강간문화,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현, 젠더 권력에서 비롯되었다"며 "텔레그램 성착취에 대한 처벌과 대책 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범죄는 더욱 은밀하고 잔혹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YWCA연합회도 24일 성명서를 내고 "계속해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유희를 위한 도구로 여기며 사고파는 '강간문화'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며 "디지털 성착취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살인 범죄'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사진=SNS 캡처)

     

    그럼에도 일부 남성들은 n번방 사건 탓에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로 일반화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러링'을 이유로 피해자와 공감·연대하는 여성들을 '창녀'(성매매 종사자 여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에 비유했다.

    자칭 'n번방 안 본 남자들 일동'이라는 이들 네티즌은 인스타그램 등 SNS를 중심으로 '#내가 가해자면 너는 창녀'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국내 성매매 종사자 여성 인구가 27만 명이니 일반 여성들도 사실상 '창녀'로 일반화 하겠다는 논리다.

    뮤지컬 아역배우로 활동한 김유빈 역시 동일한 내용의 게시물을 SNS에 올려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거세지자 김유빈은 현재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성산업 속에서 착취당한 성매매 여성들과 성범죄는 그 무게를 동일선상에 놓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과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외면한 채, 이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향한 공격은 공감 능력의 상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유승민 사무국장은 25일 CBS노컷뉴스에 "성매매와 성착취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남성문화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으니 온라인 성착취를 하면 안된다는 인식개선 운동을 해왔지만 오히려 n번방은 생존한 사람을 가학하고 모욕했을 때 얻는 쾌감으로 유지됐다"라고 일침했다.

    이 같은 비상식적인 반발이 나오는 것은 결국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누리던 남성문화를 공고히 유지하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유 사무국장은 "n번방 가담자들은 단순한 성적 욕구만으로 이를 즐긴 게 아니다. 그 본질은 권력 관계의 우위를 명확히 하고 여성을 물건 취급하고 짓밟으면서 자신의 권력욕을 과시했던 것"이라며 "저런 운동을 벌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적 존재로 인정할 수 없고, 젠더 권력이 전복되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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