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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신 심장 쐈다"던 김재규 변호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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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인터뷰]"유신 심장 쐈다"던 김재규 변호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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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변호인 안동일 변호사 인터뷰
    "김재규, 계획적 범행했다고 생각"
    "전두환 신군부가 재판 철저히 개입" 증언
    "영화 속 사실 아닌 것들 많아" 우려도
    "좌우에서 미움…역사적 사실 알리는 것은 책무"

    '김재규의 변호인' 안동일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시내 한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태헌 기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10·26 사태는 계획적 범행이었을까 우발적 살인이었을까. 김재규는 민주주의 혁명가인가, 아니면 권력을 좇아 방아쇠를 당긴 살인자인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0·26 직후 김재규가 육군본부로 향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이들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문득 '영화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법정에서 김재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CBS노컷뉴스는 지난달 말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김재규의 변호인 안동일 변호사(80)를 만났다. 안 변호사는 10·26 직후부터 이듬해(1980년) 5월20일 대법원 선고까지 김재규의 모든 재판 과정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김재규 혁명 가담 안 해…'김형욱 청문회'는 10·26 사태 2년 전"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픽션'이라는 전제로 시작하지만, 안동일 변호사는 자칫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팩트'로 인식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영화 속 대사나 장면 중 실제와 다른 것들이 많아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왜 혁명을 했느냐"는 영화 속 김규평(김재규)의 대사가 있다. 안 변호사는 "김재규는 박정희 군사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되레 중정에 가기 전 김재규는 '재야 세력'을 도와 반(反)혁명 세력으로 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고향(경북 구미) 후배로 육군사관학교 동기(2기)이다. 1973년 중장으로 예편한 뒤 국회의원과 건설부 장관을 거쳐 1976년 '2인자' 중앙정보부장이 됐다.

    차지철(영화 속 박용각)과의 권력 다툼은 팩트다. 두 사람의 갈등은 '부마 항쟁'을 두고 극으로 치달았다. 김재규는 심복 박흥주 대령과 단둘이 부산에 직접 내려갔다고 한다. 두 사람은 평복을 입고 시위에 뛰어들어 참가자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안 변호사는 "김재규도 처음에는 용공분자들이 일으킨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시민·학생이 대다수였고, 이런 상황을 박통(박정희)에게도 그대로 말했다"며 "그런데 차지철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고 탱크로 밀어버린다는 말을 하니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재규가 김형욱(영화 속 곽상천)을 살해했다는 것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안 변호사는 "김재규에게 여러 번 김형욱을 살해했는지 물었지만 '중정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다"며 "되레 김형욱 실종 이후 조사팀을 만들어서 조사를 벌이던 중 10·26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10·26 사태 40일 전 김형욱 청문회가 있던 것처럼 그린 것도 영화적 연출이다. "남산의 부장이 아니라 '부장들'을 만들기 위해 김형욱을 끼워 넣어야 했던 것 같다. 김형욱이 박정희 정권을 폭로한 미국 하원 청문회는 (10·26 사태) 2년 전인 1977년 일"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 1월 28일 육군본부 대법정에서 열린 10·26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재규가 두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계획적 범행이었나, 우발적 살인이었나

    법정에서 김재규는 10·26을 민주 혁명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혁명을 일으킨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회복 △무고한 국민 희생 방지 △적화통일 방지 △한미관계 회복 △30년 독재로 떨어진 국가 명예 회복 등 5가지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부마 항쟁은 10·26을 앞당긴 결정적 사건이었다. 안 변호사는 "부마 항쟁을 눈으로 보고 온 뒤 결행 시기를 앞당긴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1972년 유신헌법을 선포하며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썼다. 김재규는 이 한국적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봤다. 중앙정보부장이 되기 전부터 시해를 계획했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김재규가 3군단장으로 있을 때 찾아온 대통령을 관사에 가둬놓고 담판을 하려고 준비까지 했었어요. 이것은 내가 확인한 사실입니다. 자신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말도 했습니다. 박정희가 쓰러지면 유신체제가 무너진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재판이 아니라 개판…전두환 신군부가 실시간 조종했다"

    김재규 재판은 1979년 12월4일 시작했다. 불과 5개월 뒤 1980년 5월20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나흘 뒤 24일 형이 집행됐다. 안 변호사는 "그야말로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며 "1심은 2주 만에 졸속으로 끝났고 사형 선고가 나자마자 바로 집행됐다"고 말했다.

    1980년 5월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시기다. 안 변호사는 "전두환 신군부가 5·18이 일어나자 김재규 일당이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 같다"며 "세력이 되기 이전에 빨리 사형 집행을 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신군부는 공공연하게 재판에 개입했다.

    "어느 날 재판이 갑자기 휴정됐어요. 나를 육군본부 법무감실이 찾는다고 해서 갔더니 합수부(신군부가 조직한 합동수사본부) 판검사들이랑 서울본부장, 보안사령부 서울분실장, 법무감이 줄지어 있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너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손 좀 봐야겠어'라고 반말을 했어요."

    보안사 대공분실에 끌고 가 고문을 하겠다는 위협이었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는데 구석에서 "재판을 개정합니다"라는 재판장 목소리가 방송됐다. 신군부가 재판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던 것이다. 합수부는 재판 중 수시로 쪽지를 보내 재판장을 조종했다고 한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사진=연합뉴스)
    ◇"좌우에서 모두 미움받았지만…역사적 사실 알리고 싶었다"

    안 변호사는 10·26에 관해 2권의 책을 썼다. 변호사인 그는 170일간의 재판 기록을 낱낱이 남긴 이유에 대해 "김재규의 재평가나 명예회복보다는 내가 직접 목도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기록하는 것은 나의 책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미움 받은' 변호사다. 김재규와 김현희. 그가 변호를 맡았던 두 명의 역사적 인물 탓이다. 김재규에 관한 책을 발표할 때 '왜 김재규를 민주 혁명가로 비춰지도록 하느냐'라는 정치적 보수 우파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반대로 노무현 정부 시절 김현희를 다룬 책을 내자, 김현희를 가짜라고 주장했던 진보 좌파세력들은 안 변호사를 '안기부의 똥개'라면서 비판했다.

    "좌우 양쪽에서 욕을 엄청 먹었어요. 전화로 협박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기록은 제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생각하는 10·26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최근 검찰 인사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며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영화 속 대사는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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