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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독일·일본에 '전관예우'란 없다



법조

    미국·독일·일본에 '전관예우'란 없다

    해외선 퇴직 판사의 개업·수임 '강력 규제'
    "한국 전관예우, 국가가 용인·이용해와"
    전관예우 규제, 5단계 강화 필요

    [법원 떠나는 판사들②] 법정에 판사가 들어서면 피고인과 변호인, 또는 원고와 피고, 방청객까지 모두 일어서 엄숙히 인사를 한다. 우리 사회가 축적한 법과 그것을 토대로 판단하는 법원에 대한 존중의 의미다. 법대 위에서 판사는 한 개인이 아닌 법원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런데 어제까지 '초인적' 존재로 신뢰를 받던 판사가 오늘은 법복을 벗고 '새 뜻'을 펼치겠다고 한다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행정부로, 국회로, 시장(market)으로 나간 전직 법관들이 그 존재만으로 사법 신뢰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고질적인 '재판거래'라고 할 수 있는 전관예우에 대한 방대한 논문이 나왔다. 사법정책연구원에서 근무 중인 차성안 판사가 여러 해외 사례와 국내 실태를 직접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논문의 서두는 한국에선 너무나 익숙한 '전관예우'라는 단어를 다른 나라에선 특별히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외선 찾기 어려운 전관예우 개념…왜?
    세계 각국의 법률가들에게도 법관의 변호사 개업과 소송 수임 문제는 고민거리다. 그러나 차 판사가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의 사례를 검토한 결과 한국처럼 퇴직 법관이 변호사시장에서 특수한 인기를 보이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처럼 40~50대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사표를 내고 개업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의 경우 한국만큼 대량의 정기사직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사직이나 은퇴 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사례가 있다. 특히 주(州)법관은 선출·임기제여서 주기적으로 변호사로 재개업 하는 법관들이 생긴다. 그런데 이들은 개업 후 사건을 수임해 소송을 대리하기보다는 주로 중재인이나 시간제 판사, 기타 비영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은 판사가 퇴직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대부분 연금생활자로 남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퇴직 법관이 로펌에 취업한 것 자체만으로도 큰 사회적 논란이 되는 분위기다. 일본의 경우 오히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의뢰인에 대한 '영업 마인드'가 없어 그리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소개한다.

    미국은 제도상 퇴직 법관의 개업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제도로 변호사 개업이나 소송대리를 엄하게 금지하진 않는다. 다만 판사로 일하는 동안 로펌에 고용과 관련한 교섭을 하는 것은 규제하고 있다. 또 번관 출신 변호사가 친분이 있는 판사에게 전화하거나 기일 외 변론하는 것도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 만약 다른 판사나 변호사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신고해야할 의무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 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퇴직 법관 출신 변호사의 개업활동을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직접 규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일랜드는 퇴직 전 근무했던 법원 등에 대한 소송대리를 영구 제한한다. 홍콩도 종심법원(상고심) 법관의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이 영구 금지다. 싱가포르도 상급법원 판사는 3년 이상 근무 후 퇴직하면 모든 법원에서 소송대리가 영구제한된다.

    캐나다에서는 기존에도 법관 퇴직 후 3년간은 그간 재직한 법원과 하급의 모든 법원에서 소송대리를 금지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각 주법원들 사이 법관인사교류가 없어 이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제한이 걸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모든 퇴직 법관에 대해 모든 캐나다 지역에서 소송대리를 전면적·영구적으로 제한'하는 식으로 규제 강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법관이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해 기존 법원 선후배들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위의 국가들에선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전관예우'는 신기루 아냐…개념 확장해야
    최근 국내 법조계에서는 "이제 전관예우 같은 것은 옛말"이라고 하는 판사·검사·변호사들이 늘었다. 전관예우보다는 로펌을 거쳐 법관이 된 경우의 '후관예우'가 더 문제라고 하거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상상이 오히려 사법 신뢰를 해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 판사는 "전관예우 현상은 국가가 용인하고 이용해온 것"이라며 그 존재를 드러낸다. 15~20년간 법원과 검찰 조직에 헌신한 판사에 대한 조기 퇴직 위로금이나 연금 등을 비 공식적 형태로 제도화했다는 것이다.

    이에 전관예우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관이라는 이유로 유리한 재판 결과를 받아내는 정형화된 그림을 넘어, 판사들이 일정 시기에 대규모 조기 사직을 감행하는 관행까지 포함해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재판결과 외의 심증을 교류하거나 증인이나 증거신청 등과 관련된 절차 편의 봐주기, 판사가 기록을 읽는 강도와 신경을 쓰는 정도 등까지 전관예우의 범주에 포섭된다. 전관예우의 실현 방식은 과거 '법조비리' 사건들에서 목격된 불법 브로커와 초고액 수임 등에서 대형로펌의 맞춤형 변호사 서비스 식으로 합법적 탈을 쓰게 됐다는 점도 언급한다.

    차 판사는 "40~50대 법관의 정기적인 대량 조기 사직을 필수 요소로 하는 전관예우 현상을 줄이고 평생법관제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이야 말로 국가가 전관예우 생태계의 '조성자'에서 '해체자'로 입장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화는 곧 정기퇴직자가 극소수인 한국 법관들 스스로가 정체성을 전환해야 함을 말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법관은 공정하고 성실한 재판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언제 개업할 지를 고민하는 '잠재적 전관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앞서 해외 국가들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부분이 '정년은퇴 판사'에 그친 것과 비교해도 매우 차이가 크다.

    차 판사는 "해외 어느 사례보다 심각하고 체계화된 전관 변호사의 개업과 소송대리 활동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사법불신이 고착화 돼 있는데도 한국은 1년짜리 수임제한 규제를 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비교해 봐도 너무 약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차 판사는 해외 사례들을 바탕으로 5단계의 대응책을 제시한다. △1단계: 개업·로펌취업제한 등 진입 사전봉쇄 △2단계: 수임·소송대리 제한, 이익충돌, 연고관계 선전 금지 △3단계: 기피·회피·연고관계 재배당 등 활성화 △4단계: 비정상적 변론 규제 △5단계: 전관 변호사의 수임·사건처리 등 정보공개 순이다.

    특히 현재 최종 근무한 법원을 기준으로 1년간 수임을 제한하는 규정은 최대 7년 이내 근무했던 모든 법원을 기준으로 2~6년간 사건 수임을 못하도록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규제형 대책과 더불어, 평생법관제가 정착된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인 퇴직연금 등 법관의 처우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인다.

    차 판사는 "이러한 변화에는 법원 뿐 아니라 국회와 이해단체들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며 "우선 법원은 대법원 규칙이나 내규, 법관 임용절차, 인사제도 등을 고쳐 1단계 개업제한과 2단계 소송대리 금지 관련 서약 등은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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