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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 지위 포기…수입 농축산물이 식탁 점령하나?



경제정책

    개도국 지위 포기…수입 농축산물이 식탁 점령하나?

    미국은 자국 농민 보호를 위해 50년간 준비해 왔다.
    우리나라도 농업과 농민 보호를 위한 충격완화 정책 마련 필요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WTO 개발도상국 특혜 관련 정부입장 및 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정부가 WTO(세계무역기구)내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되, 미래 협상에선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상 개발도상국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정부는 그러면서, 우선 당장은 개발도상국 당시 적용됐던 관세와 보조금이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추후 또 다른 다자간 무역협상이 진행돼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정부의 이번 개도국지위 포기는 국내 농업과 농민들에게 머지않아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정부 "개발도상국 지위 폐지돼도 농업에 영향 없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 출범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은 이후'1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계기로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에서만 개도국 특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말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 WTO가 90일 안에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 차원에서 개도국 대우를 일방 중단하겠다고 밝힌 뒤 고심해왔다.

    실제로 미국측이 거론한 4가지 '개도국 제외' 기준은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G20(주요20개국)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 국가 △세계 무역량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으로, 한국은 모든 조건에 부합한다.

    결국 우리 정부는 지난 25일 개도국 지위를 사실상 포기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WTO 개발도상국 특혜 관련 정부입장 및 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사진=박종민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최근 들어 선진국뿐 아니라 개도국들도 한국의 개도국 특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와 위상이 비슷하거나 낮은 싱가포르, 브라질, 대만 등 다수 국가들도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특히 "새로운 협상이 시작돼 타결되기 전까지는 기존 협상을 통해 이미 확보한 특혜는 변동없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며 "당장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미래 협상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영향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예산안에 공익형 직불제로의 전환을 전제로 올해 1조 4천억원 규모이던 직불금 예산안을 내년엔 2조 2천억원으로 대폭 증액 반영했다. 재해를 입은 농업인의 경영안정을 위한 농업재해보험 품목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청년ㆍ후계농 육성책도 마련된다. 최대 3년간 월 80만~1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영농정착지원금' 제도, 농지은행 등 관련 대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1995년 WTO 출범 이후 6년 뒤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이 출범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정했던 관세를 더 낮추는 협상이다.

    DDA협상은 2008년 이후 10년 넘게 교착상태다. 정부가 우선 당장 농업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바로 DDA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DDA 협상 외에 또 다른 협상이 진행돼 급물살을 타면 언제라도 농업분야에 새로운 무역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4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WTO개도국지위 유지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관계자 등이 정부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농업전문연구기관인 GS&J 이정환 이사장은 "당장은 영향은 안 미치지만 새로운 농산물 협상이 타결될 때 이행계획서를 낼 거냐의 문제가 있다"며 "현재 미국이 새로운 틀을 만들기에 앞서 중국에 대해 개도국 특혜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며 "최근 WTO를 둘로 쪼개서 중국을 제외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만큼 (새로운 농업협상이) 전격적으로 합의될 수도 있어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DDA 협상이 재개되든 새로운 농업협상이 마련되든 현재 우리나라가 적용하고 있는 쌀 관세율 513%는 더 이상 유지하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지난 2008년 제시된 DDA협상 수정안에 따르면, 그동안 쌀은 우리나라가 선정한 대표적인 개도국 '특별품목'으로 지정돼 보호됐으나 선진국이 되면 이같은 '특별품목' 혜택이 사라진다. 심지어 정부 계획대로 쌀을 민감품목으로 지정해 보호한다고 해도 관세율은 393%로 조정된다.

    또한, 신선과일의 경우 현재 관세율이 45%이지만, 개도국 지위를 잃고 선진국이 되는 순간 민감품목으로 지정해도 관세율이 36.5%로 떨어지고 일반품목이 되면 19.4%로 크게 낮아진다.

    쇠고기의 경우도 현재 관세율이 40%이지만 선진국 기준이 적용되면 일반품목 17.2%, 민감품목은 32.4%로 관세율이 떨어진다.

    이처럼 개도국 지위가 사라지면 거의 모든 농축산물의 관세율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우리나라처럼 농업 경쟁력이 떨어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로써, 관세율이 낮아져 저가의 수입농축산물이 들어온다면 국내 농업과 농민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농업보조금의 한도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농업보조총액(AMS)을 연간 1조4900억원까지 쓸 수 있지만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농업경제단체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면 AMS 지급 한도가 7천억원 이하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정환 이사장은 "농민들은 그동안 FTA 등 각종 협상을 지켜보면서 트라우마가 있다"며 "농축산물 가격이 상대적으로 계속해 하락해 왔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미국이 지난 50년간 자국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충격 완화 정책을 마련해 왔다며, 우리나라도 국내 농업과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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