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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진실은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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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진실은 없을지도

    [노컷 리뷰]

    지난 5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된 외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사진=㈜티캐스트 제공)

     

    여성 배우인 엄마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가 회고록을 내자, 딸 뤼미에르(줄리엣 비노쉬)가 오랜만에 찾아온다. 이 설정을 들었을 때부터 두 사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엄마를 향한 딸의 감정은 여러 해 묵어 더 질기고 강했다. 자신이 알고, 기억하고, 겪은 엄마 이야기가 아닌 딴 세상이 회고록에 펼쳐져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파비안느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명성 있는 개인이 내는 회고록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듯, 있었던 일은 조금씩 수정되거나 윤색되곤 한다. 그런데 딸은 책 내용이 실제와는 다르다며, 무작정 의심하고 딴죽을 건다. 파비안느는 떳떳하다.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진실은 전혀 재미없거든."

    회고록의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파비안느의 일을 봐준 뤼크 경도 일을 그만두겠다고 나선 것이다. 회고록에 내 얘기는 한 줄도 없더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뤼크 경의 부재 때문에, 사사건건 으르렁거리는 모녀는 이렇게 뜻하지 않은 '함께하는' 일주일을 보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초반은 뤼미에르 시점에 가깝다. 과거 자신을 돌보는 것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가정에 소홀했던 엄마를 맹렬히 원망하고 따지는 딸 뤼미에르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뤼미에르가 대하는 파비안느가 관객들에게도 또렷이 각인된다. 유난스러운 구석이 있고 여전히 자존심이 세고 자기중심적인 노년의 여성 배우라는.

    그런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있는 힘껏 비꼬았을 것 같은 뤼미에르에게도 허점은 있다. 뤼미에르의 언행으로만 보자면 그의 유년기는 불평과 불만, 원망과 애정 결핍으로 얼룩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린 뤼미에르는 엄마의 촬영장에 다녀온 날 종일 엄마 연기를 따라 했다. 물론 타인이 짚어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알지 못했을 부분이다.

    기억이 엇갈리는 부분도 당연히 존재한다. 뤼미에르는 자기를 지하실에 가둬 놓고 엄마는 놀러 나갔다고 투덜대지만, 파비안느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놀러 간 게 아니라고 한다. 어쩐지 어설퍼 보이는 파비안느의 반응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뤼미에르의 주장이 과장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역시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기억은 믿을 만한 게 못 돼"라는 대사는 어떤 전조와도 같이 느껴진다. 당시 벌어진 일이 내킬 때마다 꺼내 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히 보존되는 것이 아닌 만큼, 결국 어떤 사람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대부분은 기억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진실'의 뿌리이자 바탕부터가 흔들릴 수 있으므로, 내가 보고 듣고 겪었다고 여기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할머니이자 어머니, 여배우이자 딸인 파비안느의 모습을 다층적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각자 자기 자신을 속인-진실이라고 불릴 수 없는- 과거의 역사가 있으므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가 도달하고 싶었던 진실에 더 다가가길 바랐다고도 부연했다. 그의 의도는 잘 도착했다, 적어도 내게는.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본인' 삶의 시나리오조차 아귀가 착착 맞지 않는 이유다. 그 새삼스러운 '진실'을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게, 예상보다는 더 경쾌한 톤으로 전하는 영화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었다. 아,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생각지도 못하게 날것의 감정이 튀어나오는 때였다.

    12월 개봉 예정, 상영시간 106분, 프랑스·일본, 드라마.

    까뜨린느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모녀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티캐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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