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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여름철도 무사히 넘겼는데"…주민들 '망연자실'



영동

    [르포]"여름철도 무사히 넘겼는데"…주민들 '망연자실'

    가을철 태풍에 동해안 지역 '속수무책' 피해
    상습 침수지역 경포 진안상가 일대 '물 바다'
    태풍피해, 포남동 일대 상가 유리창 산산조각
    주민들 "전쟁통도 이런 전쟁통이 없다" 눈물

    3일 커피축제가 열리고 있는 강릉아레나 입구에 마련된 수십 동의 행사부스들이 강풍에 나뒹굴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강원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시간당 80mm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면서 올해 여름은 무사히 보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 주민들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하고 있다.

    하늘 전체가 뚫린 듯 쉴새 없이 퍼붓는 '물 폭탄'에 강원 강릉시 일부 지역과 집, 승용차들이 속수무책으로 빗물에 잠겼다.

    취재진이 홀로 서서 사진을 찍기 힘들 정도로 세차게 휘몰아 치는 바람 탓에 들고 있던 우산은 찢겨나가고, 옷은 금세 빗물에 흠뻑 젖었다.

    3일 오전 찾은 강릉 경포호수 인근 진안상가 일대는 호수에서부터 차오른 물이 결국 넘치면서 주변이 침수됐다. 상인들과 주민들이 겨우 빠져나온 진안상가 일대는 의자와 테이블 등만이 길을 잃고 둥둥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강릉 경포호수 인근 진안상가 뒤쪽까지 물이 들어차 침수됐다. (사진=유선희 기자)

     

    인근에서 만난 주민 권오철(64)씨는 "비가 내리니까 가족들이 다 동원돼 물을 퍼 날랐는데 새벽 4시 30분부터 호수가 넘치면서 다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40년 동안 이곳에 살았는데 저희는 200mm 이상 비가 온다고 하면 다 비상이고, 이제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고 푸념했다.

    진안상가는 지대가 낮아 강릉지역에서 상습 침수지역으로 꼽힌다. 권씨는 "호수 근처에 차수막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렇게 또 잠기는 것을 보는 것을 보니 소용이 없는 것 같다"며 "제대로 대책 마련을 해주지 않으면,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가 일대는 언젠가 무너져 인명피해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모(62)씨는 취재진과 만나 "안 그래도 여름을 무사히 지나 안심하고 있었는데 가을 태풍이 이렇게 치명적으로 올 줄 몰랐다"며 "매년 침수피해를 겪으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도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제는 정말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성토했다.

    한 시민이 침수된 차를 세워두고 급히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경포호수는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한 채 점점 차올라 도로 인근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또 물살은 무서운 속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경포호수로 가는 길목 중간중간에는 일부 차들이 침수된 채 그대로 방치된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강릉시 초당동의 한 대로변에는 승용차들이 빗물을 그대로 머금은 채 멈춰있었다. 차 안에서 급히 중요 물품만 꺼내든 한 운전자는 "시골집에 가는 길에 빗물이 계속 불어나 차량을 세워두고 일단 빠져나왔다"며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강릉시 포남동 일대 수십 개 상가는 태풍 피해로 유리창이 산산이 조각나고 지하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취재진이 만난 상가 주인들은 강릉시의 관리 소홀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주인 최송자(여.55)씨는 "잠긴 문 틈새로 빗물이 쉴새 없이 들어와 이미 침수가 된 상태인데 트럭 등 큰 차들이 마구 지나가면서 파도가 생겨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유리창이 다 부서졌다"며 "큰 차만 지나가지 않도록 통제해줬으면 이런 피해가 없었을 텐데, 시청에서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분노했다.

    강릉시 포남동의 한 자전거 상가 앞 유리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사진=유선희 기자)

     

    이어 "미용실 앞에 설치한 데크며 발판이 다 날아간 데다 화분은 다 깨지는 등 정말 전쟁통이나 다름없다"며 "몇백만 원짜리 하는 기계가 다 빗물에 젖어 사용할 수도 없게 됐는데, 정말 기가 막히고 눈물밖에 안 나온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바로 옆에서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는 최혁(32)씨는 "핸드폰 가게를 운영한 지 5개월도 안 됐는데 이런 피해를 보게 돼 정말 당황스럽다"며 "핸드폰기기가 60~70대 정도 있었는데 다 침수돼 판매할 수 없게 돼 금전적 손실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 상가 상인들은 모두 한숨을 내뱉고 눈물을 훔치면서도 바닥에 흥건한 빗물을 쓸어내고, 지하로 들어온 물을 빼내는 등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강릉아레나 입구로 향하는 길목에 토사물이 어지럽게 쏟아져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한편 이날 강릉커피축제가 열리는 강릉아레나 입구 앞에는 수십 동의 행사부스들이 강풍이 뒤집어진 채 위태롭게 나뒹굴고 있었다. 주변 도로 곳곳도 나뭇가지가 쓰러지고 토사물로 뒤덮여 온통 진흙과 모랫바닥이었다.

    강릉커피축제는 이날 야외행사는 모두 취소된 상태이며, 실내 행사만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동해안 지역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5명으로 늘었다. 이날 오후 12시 11분쯤 강릉 옥계면 북동리의 한 양어장 인근에서 최모(49. 조선족)씨가 실종된 지 3시간 20분여 만에 숨진 채 마을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앞서 이날 00시 56분쯤 삼척시 오분동의 한 개인주택이 산사태로 인해 매몰되면서 자택에서 잠자고 있던 김모(78) 할머니가 다쳐 인근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이외에도 삼척지역에서는 70대 할머니와 80대 노부부 등 모두 3명이 고립돼 구조됐고, 통증을 호소해 인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강릉시 경포호수 인근 진안상가 일대가 물에 잠겼다. (사진=유선희 기자)

     

    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이날 오후 3시까지 누적강수량은 삼척 궁촌 486.5mm, 삼척 390mm, 강릉 옥계 378.5mm, 삼척 원덕 377mm, 강릉 371mm, 동해 368.6mm 등을 기록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강릉, 양양, 속초 등 강원영동을 중심으로 시간당 5mm 내외의 비와 함께 순간 최대풍속 15~20m/s의 매우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이 있겠다"며 "오늘 밤까지 비가 내리고, 내일 새벽까지 강한 바람이 불 예정이니 시설물 관리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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