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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교육

    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획일적인 학교건축, 심폐소생이 필요하다①]
    학교시설 기준 획일화, 공사비는 교도소보다 낮아
    학교시설사업촉진법에 따라 교육청이 학교 인허가 독점
    학교 설계에 고작 4개월, 창의교육보다는 성적우선 경향

    ※건국이래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숱하게 바뀌었다. 사회변화와 시대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하지만 학교건축은 1940년대나 2019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네모 반듯한 교실, 바뀌지 않은 책걸상, 붉은색 계통의 외관 등 천편일률이다. 이유는 뭘까? 이로 인한 문제는 뭘까? 선진국과는 어떻게 다를까? 교육부는 앞으로 5년간 9조원을 학교공간 혁신에 투입한다. 학교건축 무엇이 문제인지 CBS노컷뉴스가 총 11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교실 옆에 좁고 긴 복도가 나 있는 모습

     

    네모난 교실·좁고 긴 복도·휑한 운동장. 시대·지역·학교 급(초·중·고)에 상관 없이 '학교'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교도소 또는 군대 막사가 연상된다.

    국가교육과정은 1945년 이후 총 10차례 바뀌었다. 가장 최근인 2015개정교육과정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학교시설도 교육과정 변화에 보폭을 맞춰야 하지만, 획일화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더디다.

    교육부가 칼을 빼들었다. 교육부는 지난 1월 ‘학교시설 환경개선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쾌적한 학교, 안전한 학교, 학교공간 혁신 3가지 목표도 제시했다.

    그래픽=강보현 PD 제작

     

    이중 학교공간 혁신(교실단위 1250개교+학교단위 500개교)에만 5년간 총 9조3천5백억원을 투입한다. 교실단위에 5천억원, 학교단위에 8조8천5백억원을 쏟아 붓는다.

    그렇다면 국내 학교건축은 왜 천편일률적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학교시설 기준이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학교 신축 절차는 이렇다. 먼저 교육부가 학교시설 예산 교부기준(면적기준+단가기준)을 책정한다. 즉 학급 수에 따라 학교 연면적(건축물 바닥면적의 합)을 정하고, 여기에 단위면적(m²)당 공사비를 곱한 금액을 각 시도 교육청으로 내려 보낸다. 교육청은 국고 80% 가량에 자체예산 20% 정도를 더해 절차를 진행한다.

    모 교육청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학교 급에 상관없이 교실 1개당 면적이 60~63m²(제곱미터)로 비슷하다.

     

    건축사들은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이 학교건축 획일화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교육청이 학교설계 발주 전 제시하는 신설학교 시설면적표다.

    실제 모 교육청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학교 급에 상관없이 교실 1개당 면적이 60~63m²(제곱미터)로 비슷하다. 다시 말하면 교실을 만들 때 학생의 신체치수와 학급당 인원수 차이를 반영할 수 없는 환경이다. 학교 연면적도 학급수에 따라 별 차이가 없다.

    김제형(이가건축) 소장은 "교육청에서 학교 설계하는데 4개월 정도밖에 안 준다. 획일화된 스페이스 프로그램에 따라 학교를 찍어내듯 지어서 가능한 일이다. 반면 선진국은 학교설계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획일적인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설계기간이 1년 이상 되고, 사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진일(한국교육개발원 교육시설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스페이스 프로그램이 교육청 예산 등을 고려해 매우 경직되어 있다보니 신설학교의 교육과정이나 학교 운영방식, 교수·학습 방법, 학생의 특성 등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스페이스 프로그램 내용을 정할 때 신설학교 구성원, 특히 교사와 학생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래픽=강보현 PD 제작

     

    낮은 공사비도 학교건축 획일화의 주요인이다.

    조달청이 발표한 '2017년 공공건축물 유형별 단위면적(m²)당 공사비 분석(20개 유형·총 67개 공사)'에 따르면, 전체 분석대상의 평균 단위면적당 공사비는 213만원이다.

    초등학교는 171만원~181만원, 중고등학교는 173만원~189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정시설(195만원)과 격납고(195만원)보다 낮은 금액이다. 단위면적당 공사비가 초중고보다 낮은 건축물 유형은 창고(112만원)와 공장(148만원~163만원) 뿐이다.

    낮은 공사비는 표준설계도의 잔재다. ‘남쪽에 운동장, 북쪽에 1자형 교사동, 가로 7.5m 세로 9m 교실’ 등을 명시한 표준설계도는 1992년 폐지됐다.그러나 학교 설계는 규격화된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용민(선기획건축) 대표는 "6.25 전쟁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급이 과밀화되자 정부는 1962년 표준설계도를 도입해 학교의 양적 확충에 힘썼다. 시대가 변했지만 '학교는 싸게 많이 지어야 한다'는 인식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학교시설사업촉진법(1982년 제정)도 학교시설 유연화의 걸림돌이다. 교육자치와 행정자치가 분리돼 있는 우리나라는 해당 법에 따라 학교를 지을 때 시군구청이 아닌 교육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학교 인허가를 독점하다보니 교육청이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 대학 건축과 교수는 "교육청 내부에 형성된 카르텔 때문에 학교시설이 틀 안에 갇혀 있다. 학교시설이 근본적으로 바뀌려면 학교시설사업촉진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신설은 대부분 택지개발사업으로 학생수요가 발생할 때 이뤄진다. 하지만 택지개발(지자체)과 학교 설립(교육청) 관할기관이 달라 두 기관의 충분한 사전 협의가 없으면 지역주민의 입주시기와 학교 개교 시점이 어긋나는 경우가 적잖다.

    조진일 연구위원은 "이런 구조에서는 특히 학교 신설 시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생길 경우 '늑장개교'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학교 신설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을 법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붉은 벽돌 외관의 한 고등학교 건물

     

    붉은 벽돌로 된 외관은 학교건물이 획일화된 느낌을 주는 또다른 요인이다.

    조도연(디엔비건축) 대표는 "우리나라는 건물 외관을 유지관리한다는 개념이 희박하다보니 관련 예산이 사실상 제로"라며 "세라믹 계통은 비싸고, 알루미늄 시트는 금방 얼룩진다. 가장 값싸고 유지관리가 용이하고 단열성이 좋고 시공이 편한 재료가 벽돌"이라고 설명했다.

    입시위주교육은 학교 내부공간 획일화에 한 몫 했다.

    조도연 대표는 "창의적인 학습방법이 중요시되면서 고등학교에 커뮤니티와 휴게공간을 만드는데, 성적향상이 우선이다보니 학교에서 이를 일반교실로 전용하거나 방치해서 유명무실해진다"고 지적했다.

    글 게재 순서
    ①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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