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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 공표' 덫에 걸린 경찰, 범죄예방 정보조차 '쉬쉬'



사건/사고

    '피의사실 공표' 덫에 걸린 경찰, 범죄예방 정보조차 '쉬쉬'

    범죄 예방 차원서 사건 공개할 수 있지만…
    '피의사실 공표' 우려해 움츠러든 경찰 공보
    '생활밀착형' 범죄조차 알리지 못해 속앓이
    "공표 가능한 사건 범위 명확히 해야"

    (사진=연합뉴스)

     

    피의사실 공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일반인이 알아야 할 범죄 정보마저 차단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생활밀착형 범죄의 경우 예방 차원에서 국민에게 알리는 일이 중요한데, 경찰은 이마저도 긁어 부스럼이 될까 과도하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찰 내부에서도 사건의 성격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쉬쉬하는 건 공보 준칙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피의사실 공표의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범죄 예방 기능은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울산 검·경 충돌 후폭풍…경찰 공보 대응 '일률 자제'

    18일 경찰청 훈령 '경찰 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범죄 유형과 수법을 국민들에게 알려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사건 내용을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이밖에 ▲신속한 범인 검거 등 인적·물적 증거의 확보를 위해 국민들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경우 ▲공공의 안전에 급박한 위협이나 대응 조치를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의 우려가 있는 경우 등도 마찬가지다.

    예외 조항을 명시하고 있지만 최근 경찰 상황은 이조차도 극도로 꺼리는 눈치다. 지난 6월 울산지검이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입건하면서 촉발된 이 같은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점차 굳어가는 추세다.

    당시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약사면허증 위조 혐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수사 결과를 보도 자료로 언론에 배포했는데, 검찰은 이를 두고 재판에 넘기기에 앞서 피의사실을 알렸다며 문제 삼았다.

    사건을 마무리하고 송치하는 단계에서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보도 자료를 배포하던 경찰의 일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경찰 지휘부부터 '입단속'을 주문했고, 그 여파로 현재 일선 경찰의 공보 창구는 사실상 꽉 막힌 상태다.

    여기에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싸고 피의사실 공표가 다시 한 번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안 그래도 위축된 경찰의 공보 대응은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어떤 정보든지 괜히 발설했다가 본보기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경찰 내부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피의사실 공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 일선뿐만 아니라 지방청 간부들까지도 매우 경직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한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꽉 막힌 공보 창구에 '생활밀착형 범죄'마저 쉬쉬

    문제는 사건 설명을 일률적으로 자제하면서 일반에 알려야 예방 가능한 범죄 정보마저 묻히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이웃간 범죄·부동산 사기·인터넷 물품 사기 등 생활밀착형 범죄가 그렇다.

    실제로 일선 한 경찰에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하고도 수개월째 보도 자료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수사기관 로고를 이용한 신종 수법에 넘어간 피해자만 1000명이 넘는데도 피의사실 공표를 우려해 그저 쉬쉬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처럼 끊임없이 진화하는 신종 수법의 사기 사건은 국민들도 알고 있어야 예방이 가능하다. 알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피해자만 키우는 셈"이라며 "피의사실 공표가 신경 쓰여 마냥 덮어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범인을 잡는 게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이지만 이를 토대로 동종 범죄를 뿌리 뽑는 게 수사기관으로서 가져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며 "지금처럼 보도 자료도 못 내는 분위기는 경찰관으로서도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생활밀착형 범죄뿐만 아니라 강력 사건도 경찰 수사 때부터 알리는 게 공익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발생 지역과 범인 인상착의, 범죄 유형 등 주요 정보가 공개돼야 추가 피해를 방지하고 제보를 통한 범인 검거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강력 범죄의 경우 범인이 재판에 넘겨져 어떤 형량을 받는지는 예방과 큰 상관이 없다"며 "공보규칙 예외조항이 피의사실 공표 엄단 분위기 탓에 앞으로도 무용지물이 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흠집내기식 피의사실 공표는 막으면서 범죄 예방 목적의 정보 제공을 위한 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는 "현재 수준의 공보준칙에서는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가 빈번할 수 있다"며 "범죄를 예방하고 형사사법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잣대 아래 공표가 가능한 사건의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서도 유관기관·시민사회 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피의사실 공표 관련 법(형법 126조)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법 개정을 통해 꼭 필요한 범죄 정보는 알릴 수 있도록 명문화해야 논란과 내부 불안을 차단할 수 있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는 이날 당정 협의회를 열고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공보준칙 개정 방향을 논의한다. 같은 날 민갑룡 경찰청장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되는 피의사실 공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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