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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오는 7일 개봉하는 영화 '봉오동 전투'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군의 심부름을 해 떡이 든 보자기를 받아낸 아이들. 그런데 보자기 안에는 폭탄도 함께 들어 있었다.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빨리 피하라며 자신은 보자기를 꼭 끌어안고 죽고 만다. 살아난 아이는 그때의 사고로 얼굴에 상처가 났고, 이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선명하다.

대한 독립군 황해철의 과거로부터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는 시작된다. 1919년 3월 1일 비폭력 만세운동이 일어나지만 이제는 무력으로 진압하고,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월강추격대를 편성한다.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거둔 독립군의 전투. '봉오동 전투'는 소재가 곧 제목인 작품이다. 하지만 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위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앞세운다. 어제는 염소를 키우다가, 밭을 매다가 독립군이 되어 일제에 맞선 이들을.

물론 '봉오동 전투'에도 중심인물은 있다. 항일대도라는 칼을 귀신 뺨치게 잘 쓰며, 아랫사람에게도 신망받는 리더 황해철(유해진 분). 과묵하지만 목표를 향해 불같이 달려드는, 가장 발이 빠른 명사수 이장하(류준열 분). 마적 출신으로 언어뿐 아니라 다양한 재주에 능하고 총도 잘 쏘는 마병구(조우진 분).

그러나 그들'에게만' 주목하지 않는다. 일본군이 마을을 못 쓰게 만들어버려 터전을 잃은 농민들을 포함해, 각자의 방식으로 싸움에 나선 이들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었음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전투'를 다루다 보니, 폭력의 수위가 높다. 임신부를 보고 새 생명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웬 떡이냐'며 낄낄대거나, 저 애는 내가 쏘겠다고 경쟁하고, 그 와중에 어린 소녀를 겁탈하려고 나서는 등 일제의 만행은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수틀리면 목이 베이는 건 일도 아니다.

초반에는 힘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는 양민들이 나온다. 해철 무리가 지략과 기술을 무기로 일본군을 반격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반전된다. 그 수많은 일본군의 총을 거의 한 발도 맞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영화적 수용'은 충분히 가능하다.

감독과 배우들은 '이름 모를 보통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싸웠다는 메시지가 중요한 영화라고 말했지만, 펄떡이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의 액션도 '봉오동 전투'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봉오동 전투'는 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위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주목한 영화다.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분노에 찬 해철이 한 번에 십수 명의 일본군을 차례차례 베는 장면은 압권이다. 더 실감 나는 장면을 위해 액션캠을 몸에 직접 부착한 유해진의 열연도 꼭 언급하고 싶다. 대사도 감정 표현도 절제했지만 독립군 중에서도 실력자인 이장하, 해철과 개그 콤비를 이룰 만큼 재담꾼이면서 목표를 족족 명중시키는 마병구. 류준열과 조우진이었기에 가능한 캐릭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름 끼치는 잔인함을 보여준 일본 배우들의 연기도 강렬하다. 월강추격대장 야스카와 지로 역의 키타무라 카즈키, 월강추격대 중위 쿠사나기 역의 이케우치 히로유키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펼친다. 해철 무리에게 포로로 잡힌 소년병 역의 다이고 코타로도 비중 있게 그려진다.

원신연 감독은 '국뽕'(애국심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영화가 아니냐는 우려에 본인도 많이 고민한 부분이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독립군을 얼마든지 더 근사한 영웅으로 묘사하고, 감정을 극단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겠지만, '봉오동 전투'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이 먼저 나오고, 이후 반격에 나서며,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독립군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본 정규군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는 서사 자체가 '벅차오름'을 선사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해철이 적을 무찌르고 나서 그들의 피로 쓰는 글자는 '대한 독립 만세'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식민지 상태를 한 집에 서방이 둘이어서 서방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묘사한 것이나, 언제나 침착한 장하에게 끔찍하게 소중한 존재를 누이로 둔 것 등은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134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도 호불호가 갈릴 만한 요소다.

'봉오동 전투'는 아픔과 울분의 역사뿐 아니라 저항과 승리의 역사도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다. 동시에 전쟁의 위험함과 돌이킬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해를 입힌 사람을 내가 똑같이 해친다고 해도, 이미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고, 손을 쓸 수 없게 누군가 다치거나 죽어버렸다면 그 또한 되돌릴 수 없다. 극중 등장하는 독립군의 공격과 승리에서 나오는 '쾌감'이 잠시뿐인 이유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일본에 대한 반발이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가 궁금해진다.

7일 개봉, 상영시간 134분 31초, 15세 이상 관람가, 사극/액션/드라마.

앞줄 왼쪽부터 이장하 역 류준열, 마병구 역 조우진, 황해철 역 유해진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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