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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의미 일깨워준 조정석의 아픈 손가락 '녹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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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 의미 일깨워준 조정석의 아픈 손가락 '녹두꽃'

    [노컷 인터뷰]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백이강 역 배우 조정석

    배우 조정석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제공)

     


    "경계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저들은 그걸 뛰어넘었네." (드라마 '녹두꽃' 중 전봉준의 대사)

    자신의 과거를 향해, 과거의 죗값을 치르고 새 세상을 열이 위해 봉기한 동학농민군 별동대장이 된 백이강(조정석 분). '얼자'(천인 출신 첩의 아들)이자 '거시기'라는 자신을 향한, 자신 안에 있는 '경계'를 뛰어넘은 백이강은 이어 민초들을 향한 세상의 경계조차 뛰어넘고자 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말이다.

    '미완의 혁명', '실패한 혁명'이라 불리지만 민중혁명의 시작이자 뿌리가 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는 '실패'라 불렸던 그날의 정신은 남아 항일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고, 2016년에 이르러서는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한 혁명이 아닌 '시작'이 됐다. '미완'의 혁명은 '현재진행형'이 됐다. 이 같은 동학농민혁명의 의의,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새 세상을 향한 목소리, 민중의 눈으로 본 혁명을 담은 SBS 드라마 '녹두꽃'이 지난 13일 종영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통해 만난 배우 조정석은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한마음 한뜻으로 '녹두꽃'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면서 열심히 촬영했다"라며 "예전에는 필모그래피 중 어떤 작품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 물었을 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감히 고를 수 있을 정도로 '녹두꽃'은 내겐 뜻깊은 작품"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우 조정석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제공)

     


    ◇ 배우 조정석에게 '행운'처럼 찾아온 드라마 '녹두꽃'

    극 중 백이강 역을 맡은 조정석은 드라마 '녹두꽃'에 대해 "행운이나 다름없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작품이 가진 힘과 메시지, 의미,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행운'이라고 이야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전에 동학혁명이라는 소재를 다룬 드라마도 없었고요. 보통 동학혁명이라고 하면 '혁명', '전봉준 장군', 이 정도만 배웠던 기억에 머물러 있어요. 그러나 동학혁명은 중요한 역사이고, 그러한 소재로 다뤘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우리나라의 큼직한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굉장히 뿌듯하고 영광이에요. 그런 데다 그 시대를 다루면서 정봉준 장군이 아닌 '형제'가 주인공이라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죠."

    '동학농민혁명'은 당시의 민중이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며 일어난 '민주주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는 기존 사극에서처럼 권력의 한 축이나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기존 사극 문법에 따랐다면, '녹두꽃'의 주인공은 백이강-백이현(윤시윤 분) 형제가 아닌 전봉준 장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런 틀에서 벗어나 신념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삶을 바친 '민중'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마음으로 그 시대를 살아갔을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과 말을 통해 전봉준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들려준다.

    백이강이 본 전봉준(최무성 분)은 '아주 뜨거운 심지' 같은 사람이었다. 조정석은 "백이강을 연기한 나로서, 제삼자의 눈으로 전봉준 장군을 뵈었지만, 전봉준은 꺼지지 않는 심지 같은 분이었다"라며 "최무성 선배가 워낙 묵직한 존재감을 갖고 있고, 대사도 강력하지만, 현장에서 볼 때 뒷모습조차도 든든한 느낌이었다.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든든하다 느낄 정도로 강렬했고, 꺼지지 않을 것 같은 곧은 심지 같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SBS 드라마 '녹두꽃' (사진=SBS 제공)

     


    ◇ 알아야 하는 역사 '동학농민혁명', 그 역사를 조정석에게 알려준 '녹두꽃'

    "우덜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소?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은 개, 돼지와 다름없었잖소. 그래서 우리가 싸웠잖애. 죽자고 싸워서 만들었잖애. 양반도 접장, 백정도 접장, 나 같은 얼장 놈도 접장, 그 대궐의 잘나빠진 임금도 접장. 해산을 혀서 목숨은 부지헐지 몰러도 더 이상 접장은 아니겄재. 양반 있던 자리에 왜놈이 올라타 갔고 다시… 다시 개, 돼지로 살아야겠재. 그래서 난 싸울라고. 그래서 난 싸울라고. 겨우 몇 달이었지만…. 사람이 동등허니 대접하는 세상 속에서 살다본께, 아따, 기깔 나서 다른 세상에서 못 살겠더랑께. 그래서 난 싸운다고. 찰나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는다 이말이여." ('녹두꽃' 21화 백이강 대사 중)

    전봉준이 '곧은 심지'와 같은 인물이었다면, 그 심지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뜨겁게 타오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민중'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그 찰나의 세상을 본 백이강, 그 찰나의 세상을 영원으로 만들고 싶은 민중들. 그런 현실의 사람들이 모여 심지를 더 굳건하게, 더 뜨겁게 타오르게 했다.

    "동학농민혁명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기반이었다"라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의 말처럼, 동학혁명은 민중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시민의 정신적 근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드라마가 주는 시사점도 명확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만큼 드라마의 결말도 명확하다. 바로 당시만 놓고 봤을 때는 '실패', '미완'의 혁명이라는 점이다.

    조정석은 "사실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지만,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아야 할 걸 슬퍼서 못 보겠다, 원래 알고 있던 결말 아니냐, 그래서 나는 안 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배운 동학혁명은 '전봉준 장군'이 끝이다. 어떻게 고부에서 일어났으며, 전주화약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공부하면서 촬영했다"라고 말했다.

    SBS 드라마 '녹두꽃' (사진=SBS 제공) 확대이미지

     


    조정석은 "물론 개인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교훈들이 다 다를 것"이라며 "그러나 자주적인 목소리는 지금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상호 형님 대사 중 인상 깊었던 게 동학에서 말하는 '인즉천'이라는 데 대해 동의는 못 하겠지만, 내 나라 내 땅을 밟고 들어오는 건 참지 못하겠다고 한다. 내가 만약 그 당시 참혹한 우리나라의 현실로 돌아간다면 아마 나도 백이강처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백이강은 전라도 고부 관아의 악명 높은 이방이자 만석꾼인 백가의 장남이다. 백가네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밥값을 해야 했고, 이를 위해 거죽밖에 남지 않은 백성들의 몸에 몽둥이질을 해야 했다. 남의 것을 빼앗고 죄 없는 자들을 가둬야 했다. 그런 백이강은 세상에 눈을 뜨고, 백성의 분노에 눈을 떴다. 그리고 '거시기' 백이강은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백이강'을 발견했다. 그렇게 전봉준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조정석도 동학농민혁명의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공부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그는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슬퍼서 못 보겠다, 원래 알고 있던 결말 아니냐, 그래서 나는 안 보겠다, 못 보겠다는 것보다 나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역사를 알고 나서 그다음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게 다를 거다. 그런 깨달음과 교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배우 조정석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제공)

     


    ◇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녹두꽃'으로 기억되길

    한 시대의 굴곡을, 그것도 가장 밑바닥에서 직접적으로 마주 본 민중이 되어 매 장면을 소화하다 보니 감정적으로도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동생이지만 동생이라 제대로 부르기도 힘들었던 백이현이 백이강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때, 엄마 유월이(서영희 분)에게 울면서 생전 처음으로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 함께 싸우던 동료들이 죽었을 때, 민중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밝힐 때, 전봉준 장군이 죽을 때 등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조정석은 "계속 힘들었네요"라며 "목이 메고, 눈물이 터지면 대사를 못 하니까. 그런 건 배우로서 정말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운이 길다. 장면들을 생각하면, 울컥울컥한다. 아직도 그런 거 같다"라고 덧붙였다.

    매 순간이 명장면이고, 매 대사가 명대사였다. 그 가운데 조정석은 마지막 회(47-48회)의 장면과 대사를 떠올렸다.

    처형에 앞서 태인 주산리의 접주이자 '전봉준의 그림자'로 불리는 최측근 최경선(민성욱 분)은 "형님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같은 날 같이 죽게 되어서 더 영광입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인즉천 세상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이에 전봉준은 "우리는 갑오년에 이미 보았다. 눈을 감아보게. 그럼 보일 것이야"라고 말했고, 그의 이야기에 동학군들은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났다.

    조정석은 "사실 마음에 있는 거다.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라며 "안 보이고 안 들린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고, 실패한 게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녹두꽃'은 의미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SBS 드라마 '녹두꽃' (사진=방송화면 캡처)

     


    "이건 그냥 잊힌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 뜨거웠던 갑오년 사람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향해 달려갔던 위대한 백성들. 역사는 그들을 '무명전사'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안다. 녹두꽃. 그들이 있어 우리가 있다."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회 송자인의 내레이션)

    또 조정석은 마지막 송자인(한예리 분)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되는 드라마 엔딩을 마음에 든다고 꼽았다. 그는 "손자인과 백이강이 멀리서 마주보는 것 같은 장면도 마음에 들었다. 장군의 뜻을 만천하에 알리면서 의병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백이강이 '진격'을 외치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라며 "이러한 장면들, 그리고 자인이 내레이션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지만, 알고 있었던 역사인데 희망이 느껴지더라. 그런 게 작은 교훈이 아닌가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드라마 '녹두꽃'을 마친, 백이강을 연기한 조정석의 인터뷰는 그 어느 때보다 묵직했다. 그리고 다른 때보다 큰 울림을 전했다. 사람을 위해 사람으로서 살아간 이들, 미완의 혁명 '동학농민혁명'이 지닌 의미를 누구보다 마음으로 느끼며 연기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조정석은 '녹두꽃'의 의미를, 백이강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진실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미완의 혁명을 '완성'시킬 몫은 현재의 우리에게 이르렀다는 걸 드라마가 일깨워줬기에 여운이 진하게 남을 수 있다. 현재 우리의 혁명도 동학혁명과 같이 '미완'으로 남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혁명과 그 정신은 시대를 넘어 민중에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김구 선생님을 만나서 그런지, 바로 이어서 그 다음 시대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립운동의 시초나 다름없는 그런 시대의 이야기 말이에요. '녹두꽃'을 해보니 그 시대가 궁금해지긴 했어요. 드라마 '녹두꽃'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녹두꽃'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배우 조정석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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