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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방송시스템이 만든 故 박환성·김광일 PD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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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방송시스템이 만든 故 박환성·김광일 PD 죽음"

    [현장] 다큐멘터리스트 고(故) 박환성-김광일 PD 2주기 추모제 '멈춘 시간'

    지난 2017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김광일, 박환성 PD (사진=한국독립PD협회 제공)

     


    "고(故) 박환성-김광일 PD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던 분들이었습니다. 누구나 죽음은 맞이하지만, 너무나 갑자기, 너무나 일찍이 두 분께 찾아온 사고는 유가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되어 오늘 이 추모제를 엽니다. 아직도 큰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계시는 유가족들께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박환성-김광일 두 분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영혼은 죽지 않고 잠들이 있습니다. 훗날 두 분은 슬픔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환성-김광일 두 분의 유족들은 그런 믿음과 소망으로, 힘들지 모를 삶을 꿋꿋이 살아내길 바랍니다." (영화감독 배창호)

    EBS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 촬영차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던 두 명의 다큐멘터리스트 박환성-김광일 PD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2년. 두 독립 PD가 마지막까지 보여준 다큐멘터리에 대한 열정과 불공정 제작관행에 맞선 목소리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고 박환성-김광일 PD 2주기 추모제 '멈춘 시간'이 13일 오후 5시 40분 인천 부평구 갈산동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열렸다.

    배창호 영화감독이 13일 오후 5시 40분 인천 부평구 갈산동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열린 고 박환성-김광일 PD 2주기 추모제 ‘멈춘 시간’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 박환성-김광일 PD의 죽음은 사고 아닌 불공정 제작시스템이 만든 '인재'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제작하던 박환성, 김광일 PD는 현지시각으로 지난 2017년 7월 14일 저녁 남아공에서 프로그램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영화인총연합회 지상학 회장(시나리오협회이사장)은 추도사에서 박환성-김광일 PD를 죽음으로 내 몬 불공정한 제작환경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지 회장은 "그대들의 죽음은 잘못된 방송시스템이 만들어낸 타살이란 지적에 공감한다. 김영미 PD의 지적대로 다큐멘터리 PD는 시간과 제작비와 싸우며 언제든 부상과 죽음의 공포에 노출된 채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며 "그들의 죽음이 어찌 단순한 사고사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 회장은 "부족한 힘을 한데 모아, 그들이 카메라 하나로 세상을 바꾸려 했듯이 잘못된 방송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라며 "유가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모아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유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한 고 박환성 PD의 동생 박경준 씨는 "2년 전 당시 상황을 짚어보면, 두 분의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사고였지만, 그 사고가 발생하게끔 몰아간 게 EBS, 그리고 외주제작사 담당자였다"라며 "프로그램 제작 중에 정부 지원금을 지원받게 되고, 그렇게 되자 EBS는 기존에 제공한 제작비에서 일정 비율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시작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박경준 씨는 "그때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해서 형을 볼 낯이 없는 현실이다"라며 "다만 지금은 사고 당시 촉발된 독립 PD들, 방송 스태프에 대한 근무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다큐멘터리스트 고(故) 박환성-김광일 PD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 '멈춘 시간'(연출·감독 정관조, 시나리오 오영미, 음악감독 성용)의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영화 상영 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 두 다큐멘터리스트의 세상을 바꾸기 위한 마지막 목소리 '멈춘 시간'

    이날 추모제에서는 열악한 제작환경 속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무리한 스케줄을 강행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두 PD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 '멈춘 시간'(연출·감독 정관조, 시나리오 오영미, 음악감독 성용)이 상영됐다.

    '멈춘 시간'은 박환성, 김광일 두 PD가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출국하기 이틀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단편영화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고 김광일 PD의 아내이자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오영미 작가가 집필했다.

    영화는 홍대에 있는 박환성 PD의 사무실에서 김광일 PD와 방송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그날의 일'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그곳에서 있었던 일과 세상 밖에서 벌어지는 독립 PD들의 힘든 삶을 재조명했다.

    박환성 PD 역은 성우 겸 배우 이규화, 김광일 PD 역은 배우 주효준이 맡았다. 이 밖에도 김진우, 이기욱, 우혜민, 정현준 등이 출연했다. 또한 당시 박환성, 김광일 PD와 현장에 있었던 송규학 PD도 출연했다.

    상영이 끝난 후 가진 무대인사에서 제작사 대표 이진우 역을 맡은 배우 이기욱 씨는 "저는 배우라는 직업을 하다 보니, 이 작품을 만난 후 어떤 사건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 여러 자료를 수집했다"라며 "자료를 찾아보고 방송사의 횡포와 이 사건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많이 분개했다"라고 말했다.

    이기욱 씨는 "나는 (두 분의 죽음이) 인재라고 생각한다"라며 "고인을 추모하면서 추모제가 이렇게 모여서 끝나는 게 아니라, (두 분의 일이) 널리 알려지고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자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영화에는 3시 45분에 멈춰진 시계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작가는 "두 분이 돌아가신 시간이 새벽 3시 45분이다. 그래서 '멈춘 시간'이었다"라며 "멈췄지만 멈추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두 분이 마지막으로 (불공정한 제작시스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날이기도 하고, 독립 PD와 마지막으로 마주한 날이기도 해서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 작가는 "1주기가 지나고 2주기가 되기까지, 관심이 점점 사그라들더라. 그러면서 독립 PD들의 열악한 환경은 지속되고 있다"라고 꼬집으며 "2017년 그날, 김광일 PD가 집에 오더니 여태까지 자기가 방송하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선배들에게 힘들었다고, 괜히 토로했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봤다. 그게 돌이켜보면 마지막으로 본인이 목소리 높일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오 작가는 "2주기를 맞아서 두 분들의 뜻과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우리 옆에 살고 있고, 다른 독립 PD들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으니 그런 것에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제작을 계획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기타리스트 박창곤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를 연주하는 가운데,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생전 모습이 영상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 생전 고인들이 좋아한 음악으로 추모공연…"잊지 않고 그들의 뜻 이어가길"

    이날 추모제는 고인들이 좋아했던 노래로 구성된 추모공연으로 마무리됐다.

    그룹 4월과5월의 백순진 씨가 김광일 PD가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 '등불'과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노래로 '장미'를 열창했다. 그는 "노래 '등불'의 가사처럼, 세상에는 모순된 게 너무 많은데, 추모제를 통해서 강을 건너간 두 PD님들의 뜻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활 8대 보컬 정단은 박환성 PD가 좋아했던 딥퍼플(Deep Purple)의 '솔져 오브 포츈(Soldier Of Fortune)', 그리고 부활의 '아름다운 사실'을 불렀다.

    두 PD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가수 하림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추모제에도 참석했다. 그는 1주기 추모제를 기점으로 두 PD를 위해 만든 곡 '모두 다 잘 있겠지'와 '가을이 오면', '연어의 노래'를 불러 박환성-김광일 PD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하림 씨는 "지난해에도 추모제에 참석을 했는데, 지난해 노래를 하나 만들었다. 올해는 그 노래 부르러 왔다"라며 "여러분들께서 잊지 않고 두 분의 생각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룹 비쥬는 '가시리'와 '괜찮아', 가수 윤태규는 '나 그대에게', '마이웨이'를, 추모제 총연출이자 가수인 성용과 이태무, '멈춘 시간' 출연자이자 래퍼 유본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기억이 분다', '붉은 노을'을 부르며 각자 고인을 추모했다.

    기타리스트 박창곤은 박환성-김광일 PD의 생전 모습이 나오는 가운데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와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삽입곡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를 연주해 두 명의 다큐멘터리스트를 기렸다.

    2017년 7월 14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박환성-김광일 PD (사진=한국독립PD협회 제공)

     


    ◇ 추모시_개밥바라기/시인 정세훈

    (전략)

    하잘 것 없어 보이고 천박스럽게까지 보이던 개밥바라기라는 이름이
    눈물겹도록 고귀하게 보이고 찬란하게 보이는
    샛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기까지에는,
    저물어가던 서쪽하늘에서 떠오르는 동쪽하늘로 다시 나타나기까지에는,
    어두어가던 초저녁에서 밝아오는 새벽으로 다시 나타나기까지에는,
    그 어느 곳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모진 곳에서
    쉽사리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모진 일들을
    저 홀로 감당해낸 용기와 아픔이 있었지 않았나 싶은 거야.

    어찌했던 간에,
    이 세상에 개밥바라기만큼 확실한 샛별도 없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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