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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장은 나아졌지만, 표준계약서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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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현장은 나아졌지만, 표준계약서는 '시작'이다

    [좋은 노동환경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④·끝]
    하루 평균 12.3시간-주 5.33일 근무…여전히 긴 노동시간
    근무시간 유연하게 운용하는 '탄력근로제', 노사 이견 팽팽
    부서별 임금과 처우 차별, 스태프 경력인증제 필요성도 주요 과제로 언급돼
    표준계약서도 각 주체들의 오랜 논의와 합의 끝에 만들어졌다는 점 상기해야

    한 영화 촬영 현장의 모습 (사진=㈜CAC엔터테인먼트 제공)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 이 영화는 근로기준법을 바탕으로 한 표준근로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서는 장시간 노동-저임금-임금 체불의 악순환을 겪던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은 끝에 도입돼 '정착되는 중'이다. CBS노컷뉴스는 '표준근로계약서'가 탄생해 자리 잡기까지를 돌아보고, 어떤 변화를 불러왔으며, 앞으로 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

    총 825명의 스태프가 참여한 '2018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서 표준근로계약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60.1%였고 표준계약서를 쓴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74.8%였다.

    근로기준법을 바탕으로 하는 표준계약서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영화 현장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노동시간은 줄고 임금 수준은 나아졌으며 4대 보험과 실업급여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기준'과 '틀'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한 성과이지만, 당사자들이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이후, 각 위치에 따라 느끼는 온도 차도 존재한다.

    ◇ 노동시간 줄었다지만… 여전히 길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는 △1주 근로시간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 근로시간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근로시간 산정 시 작업을 위해 근로자가 작업을 위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나타나 있다.

    현장에서 쓰는 표준근로계약서에도 근로기준법 내용이 반영돼 '하루 8시간-1주 40시간' 원칙으로 하되, 합의하면 '하루 12시간-1주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과거 영화 촬영 현장의 장시간 노동은 악명 높았다. 아침 일찍 시작해 다음날 새벽에 촬영을 마쳤다는 무용담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 1일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이하 영화업)은 제59조(근로시간 계산의 특례) 업종에 포함돼 사실상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었다.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했을 때는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 근로가 가능했고, 근무 시간 도중 주어지는 휴식 시간(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도 바꿀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조금씩 환경 개선이 이뤄지고 있던 점, 하루 노동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법에 따른 '기준점'이 명확해진 점 등으로 노동시간은 줄어드는 추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태프들은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다.

    첫 번째 표는 영화 스태프들의 1주 평균 근로일, 두 번째 표는 영화 스태프들의 1주 평균 근로시간 (표='2018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앞서 인용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태프들의 1주 평균 근로일은 5.33일이며, 1일 근로시간은 평균 12.3시간이었다. 주 1회 정기 휴일 사용은 보통이라는 응답이 38.2%로 가장 높았고, 그렇다 26.2%, 아니다 20.2%, 매우 아니다 10.4%, 매우 그렇다 5.0% 순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근로조건 개선과 직업만족도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물었을 때 응답자들이 내놓은 주관식 답변을 보면 노동시간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았다.

    #1. "촬영 시간 이외에도 업무가 있는 것에 대한 부분을 인지해 주셨으면…"

    #2. "현재 참여한 영화는 아니지만 월 근로시간을 깎아서 계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 전체 스태프 월 420시간-기타 스태프 360시간,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동일) 이런 편법적인 계약 형태를 적극적으로 적발해서 발본색원해 주세요"

    #3. "보이지 않는 근로시간을 찾아서 해결해주세요"

    #4. "미술팀은 근로시간 자체가 너무 긴 팀인데 제작사에서 인원을 꾸릴 때 적게 꾸리게 하는데 인원 분배 조정이 필요합니다"

    #5. "너무 빨리 일어나고 늦게 자는 것 같아요. 일하는 시간 줄여주세요"

    #6. "휴일에는 쉬게! 다른 덜 필요한 스케줄을 잡지 마시오"

    스태프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원했다. 구체적으로 △정확한 노동시간 집계 △온전한 휴무 보장 △정해진(합의한) 노동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9년간의 추이를 보면, 1주 평균 근로일은 2009년 5.48일에서 2018년 5.33일로 바뀌어 줄어든 폭이 크진 않았다. 또,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9~12시간이라는 응답이 73.4%로 압도적이었으나, 13~16시간과 17시간 이상이라는 응답도 각각 13.5%, 5.0%를 차지했다.

    ◇ '유연근무제'를 둘러싼 이견

    영화업이 근로시간 계산 특례업종에서 빠지면서 '무제한 노동'은 법적으로 불가능해졌다. 2011년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근로시간 특례업종별 근로시간 운영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왜 영화업의 특례업종 유지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결론 내렸는지 배경이 나타나 있다.

    이 보고서는 "업무 특성상 장시간의 연장 근로가 불가피하게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의 제작사업에서의 프로듀서나 감독업무는 재량 근로의 대상 업무로 인정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도가 점차 확대되는 점을 근거로 특례업종에서 제외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영화 촬영 현장에는 적게는 수십, 많게는 백여 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투입된다. (사진=영화사집 제공)

     

    여기서 언급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이하 탄력근로제)는 유연근무제의 대표적인 한 종류로, 노사 견해가 크게 갈리는 부분 중 하나다. 탄력근로제는 근로기준법상 기준 근로시간에 예외를 인정한 것으로, 취업규칙으로 정해 시행하는 '2주 이내'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가 필요한 '3개월 이내' 두 가지 단위로 구분된다.

    바쁠 때는 법정근로시간 이상 근무하고 한가할 때는 그 이하로 줄이며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일한 시간이 법정근로시간 기준을 넘지 않으면 초과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하루 근로시간은 지키되 업무 시작 및 종료(출퇴근) 시각을 조정하는 제도다.

    노사의 입장은 정반대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은 지난해 7월 24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탄력근로제를 "연장근로수당 미지급해도 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영화노조는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휴무일이 적극 활용돼 추가 근로일 발생 2가지를 지적하며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로시간제를 거부하는 것이 나의 임금을 지키는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제작사들은 영화업 특성상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등 유연근무제는 법 테두리 안에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정화 PGK(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현재 영화 노동자들이 (법상) '근로자'임을 부정하는 것은 (노사) 서로 원하지 않는다. 그럼 법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 이 문제가 남는다"며 "각 파트 업무 성격에 따라서 근로기준법의 여러 조항을 살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일반적인 근기법을 적용하면 되지만, 이 현장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미술 등 여러 팀은 소위 얘기하는 사용자의 지휘·감독 영역 밖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팀이 나가서 팀 리더 중심으로 준비를 하니까, 근로시간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 문제가 남는다. 이럴 때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를 쓰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특정 장소 협조를 구하고 촬영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2주에 한 번 쉬는 대형마트에서 촬영한다고 하면, 2주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때 8시간 찍었으니 철수하자고 할 순 없지 않나. 이럴 때 가능한 것이 탄력근로제이니, 적재적소에 쓰면 된다"라고 전했다.

    이어 "막상 현장에서 이런 법률적 부분을 명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부 사례만이 부각돼 현재 '탄력근로제=나쁜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영화라는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근로기준법의 여러 조항을 활용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차량 관련 장면을 찍는 한 영화 현장의 모습 (사진=사나이픽처스 제공) 확대이미지

     

    같은 '노동자' 안에서도 '불균형'은 일어난다. 임금 문제가 대표적이다. 앞서 인용한 '2018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의 주관식 응답을 보면, 임금과 관련해 부서간(기술/비기술) 차별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 스태프 시간급은 평균 9632원으로 전년도(2017년)의 9231원보다 4.3% 올랐고, 월 급여액 전체 평균은 월 304만 7873원으로 전년도(2017년) 평균 279만 원보다 25만 3114원 올랐다.

    하지만 부서별로 살펴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시간급이 가장 높은 촬영 부서는 평균 12,500원이었으나, 가장 낮은 소품 부서는 평균 7657원이었다. 촬영 부서 월 급여액은 평균 380만 2908원이었지만, 소품 부서 월 급여액은 평균 258만 650원이었다.

    공통으로 시급하다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다. 스태프들의 숙련도와 전문성 관련 시스템 마련에 대한 의견은 스태프와 제작사, 감독 등 여러 주체에게서 나왔다.

    스태프들은 앞서 인용한 보고서 주관식 응답에서 "경력에 따른 임금 기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경력 인증에 맞는 인건비 상승", "파트별로 경력자가 오랜 시간 영화를 지속할 시스템에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스태프와 처음 표준근로계약서를 쓴 첫 작품인 '관능의 법칙'(2014)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임금 상승에 따른 제작비 상승이 부담되다 보니, 더 능숙하고 경험 많고 훈련된 스태프들의 층이 더 두터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은 영화-방송을 오가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스태프의 숙련도 인프라 구축에 대한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에 소속된 감독 A 씨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스태프 등급제'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은 등급제를 시행해 같은 직급이어도 경력이 많을수록 더 많은 페이를 받는다. 제작비가 큰 영화는 경력 많은 사람을 쓰고 저예산 영화에는 경력이 적은 사람을 쓰는 식이다. 이것이 한국 실정에 맞는지, 다른 제도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16년 9월 발표한 '한국영화 스태프 경력인증 시스템 구축에 관한 소고'(최은화 주인기획 대표 작성)는 경력인증 시스템 업계 상용화까지 4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바라봤다. 노사정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내용을 확정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이유다.

    영화 스태프들의 부서별 평균 시급 (표='2018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확대이미지

     

    또한 보고서는 참여한 작품 수와 참여 연차 수를 바탕으로 스태프 경력 증명을 하는 방식이 좀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 영화의 규모와 장르·촬영 기간 및 참여 기간이 반영된 작품별 경력 증명을 기본 자료로 하고 △경력인증 내용을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며 △경력인증 시스템 시행 전 경력 소급 적용 여부와, 소급 적용 시 어떤 기준으로 실행할지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통한 '근로기준법 준수' 기조가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양보가 있었듯, 그 후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충분한 논의를 통한 '합의'와 '협력'으로 보인다. 각자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눠준 취재원들 모두 이 부분을 강조했다.

    "영화는 '흥행업'입니다. 잘 될지 여부를 만드는 우리조차 알 수 없어서 미래를 보장할 수 없죠. 그런데도 어떤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 오고 있어요. 그래야만 또 한 걸음 나아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과 주52시간제를 지키는 것, 노동 환경에 대한 '준법'이 더 이상 놀랄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직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단순하게 이쪽은 잘했고 저쪽은 못 했다는 식으로만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문제를 '정의'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법과 제도를 개선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디테일한 고민을 할 때라고 봐요." -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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