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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이경호 감독이 줄곧 '여성 이야기'를 하는 까닭



영화

    허지은-이경호 감독이 줄곧 '여성 이야기'를 하는 까닭

    [반짝반짝전 현장] 허지은-이경호 감독의 '광주단편'
    '오늘의 자리'-'돌아가는 길'-'신기록' 3편으로 구성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과 여성이 마주한 차별·위험 담아내
    이경호 감독 "'나도 당신도 공감할 수 있는 바로 그 문제야'란 생각 들었다"
    허지은 감독 "영화로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해소였다"

    허지은-이경호 감독의 단편영화 '신기록'

     

    지난 9일부터 내달 5일까지 이어지는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은 한국 독립영화 미개봉작 중 고유한 반짝임을 지닌 우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다. 서울(아리랑시네센터·인디스페이스)뿐 아니라 광주(광주독립영화관 GIFT)와 대구(오오극장)를 아우르며 진행되는 이번 기획전에서 눈에 띄는 점은 각각 광주, 대구에 근거지를 둔 영화인들의 작품이 선정됐다는 것이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된 '광주단편'은 광주에서 영화 작업을 해 오고 있는 허지은-이경호 감독의 단편 세 작품을 묶은 것이다. 두 사람은 '오늘의 자리'(17분), '돌아가는 길'(24분), '신기록'(23분)의 각본을 같이 썼다. '오늘의 자리'와 '돌아가는 길' 연출은 허 감독이 맡았고, '신기록'은 허 감독과 이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광주단편' 상영 후,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진행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우선, 허 감독은 세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오늘의 자리'는 허 감독이 20대 후반일 때인 2016년 12월부터 찍은 작품이다. 본인의 자리와 앞날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변 친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다고.

    영어 제목 'REPLACEABLE'(대체 가능한)에서 알 수 있듯 잠시 빈자리를 메우며 떠도는 기간제 교사 지원의 이야기다. 허 감독의 친구가 비정규직 교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담겼다. 아이들이 '내년에 우리 담임 선생님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장면도 실제 경험이라고.

    허 감독은 "여성들이 다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위치에 있지만 자기 위치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성 일자리는 위태로운 상황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돌아가는 길'은 광주여성영화제의 여성 감독 발굴·제작 지원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허 감독은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자로서의 얘기를 그려봤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걸 발전시켜서 만든 것이다. 이경호 감독과 공동 각본을 썼는데 (서로) 맞는 지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에서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에 선정된 '광주단편' 3편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허지은 감독, 이경호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신기록'은 이경호 감독이 짧은 소설 형태로 써 놓은 이야기를 초고로 해서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허지은-이경호 감독이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반짝반짝전] '광주단편', 한국 사회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 2019. 5. 16.)에서도 밝힌 바 있듯 세 작품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과 고민에 대한 영화다."

    '돌아가는 길'에는 서비스직을 수행하는 여성, 가정과 일 두 가지에 놓인 여성, 여성의 노동 가치가 평가절하당하는 상황이 두루 나온다. '신기록'은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계속해서 연락하고 집에 우편물까지 보내는 남자의 스토킹 때문에 곤란해하는 여성, 아마도 가정 폭력을 겪고 있을 게 분명한 여성이 나온다.

    이 같은 주제에 집중하면서 확장하는 이유를 묻자, 이 감독은 "시대가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이게(여성 이야기) 영화의 소재인가 하고 고민할 이유가 생각보다 좀 없어져서, '이게 이 시대의 문제야. 이게 내가 공감할 수 있고 당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바로 그 문제야. 그러니까 별 게 아닌 게 아니야'란 생각이 들어서 저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허 감독은 사회에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일이나 부당함에 대해 작은 부분은 조금씩 느끼고 있었으나, '이건 너무 부당하고, 그래서 나는 너무 힘들어'라고 확실히 느낀 지는 5년이 좀 안 된 것 같다고 전했다.

    20대 후반부터 결혼, 출산 등에 대한 집에서의 압박과 사회적 시선이 느껴졌다는 허 감독은 "당시 사회 흐름에서 페미니즘 이슈가 나왔고, 저도 관심 갖게 되면서 내 생활과 주변을 돌아보니까 안 보이던 문제도 보이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계약직 여성 교사가 겪는 하루 동안의 모멸을 담은 영화 '오늘의 자리'

     

    허 감독은 "이야기의 소재를 외부적인 데서 찾고 있었는데 내 이야기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영화 작업으로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저한테는 해소이기도 했고, 공감을 요구하는 어떤 표출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주단편'의 세 작품 모두 괴로운 상황을 직접 보여주거나 세밀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 이유에 관해 허 감독은 "영화 시작하자마자 여자들이 강간당하거나 죽거나 이런 걸 보면 스트레스받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공감일까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 쓸 때도 남편이든 스토킹하는 남자가 직접 (피해자에게) 가해를 하는 장면은 최대한 넣지 않고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우리는 공포를 느낄 수 있고, 그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게 인간의 능력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 감독은 각 작품이 독립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앞으로 더 나아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오늘의 자리'는 (주인공이) 슬퍼하면서 끝나지 않나. 지켜보는 사람을 한 명 더 만들어주고 싶더라. '돌아가는 길'은 지켜보는 게 아니라 같이 싸우는 동료가 탄생했다"며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연대의 향기라도 품자 싶었다. 그래서 '신기록'에선 손이라도 잡자고 해서 손을 잡지 않나. 상징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는 연대의 소중함을 생각했다. 최근 페미니즘 경향도 나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소통하고 한 발씩 더 나아가지 않나"라며 "단독 작품(들)이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하는 방향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결말을 만들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느냐는 질문에는 허 감독은 "아주 희망차고 밝아지고 이렇지는 않을지언정 (극중) 인물들에게 조금씩의 용기와 희망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방식으로 결말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일터와 가정에서 여성의 노동이 무시당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 '돌아가는 길'

     

    결말이 딱 떨어지지 않는 편인 것 같다는 평에 이 감독은 "아마 제가 그런 결말의 단편소설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장편이라면 시간을 투자할 텐데… 저는 메시지가 딱 하나다. '신기록'의 경우 '멀리서 지켜보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 같은? 단편이니까 딱 메시지만 전하고 도망하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광주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고 있다. 지역에서 작업하는 것의 장단점도 들려줬다. 허 감독은 "새로운 변화에 처하는 것을 조금 두려워하는 편이어서 제게 가능한 기회 안에서 작업해 왔다"며 "그 안에서 동료들이 많이 생기고 좋은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게 장점 같다. 지역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작업하는 분들과 계속 다시 만나서 이어가다 보니 끈끈해지고 서로 이해하는 게 장점이지 않을까"라고 바라봤다.

    이 감독은 "집값이 싸서… 알바할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생각할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컨디션 안 좋으면 한 달 쉴 수도 있고. 광주는 집값이 싸서 그 점이 제일 좋은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허 감독은 "열악한 부분이 있다. 영화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전문 교육 하는 곳이 없고 그러다 보니 (영화 인력이) 외부로 많이 가시더라. 그래도 광주에 독립영화관도 생기고, 거기를 기반으로 계속 노력해오셨던 분들이 있어서 지원도 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해미를 찾아서'라는 신작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올 여름 열리는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사회적 관점을 다룬 영화)에 진출한 상태다.

    한편, 허지은-이경호 감독의 '오늘의 자리', '돌아가는 길', '신기록'은 오는 6월 4일 오후 3시 광주독립영화관 GIFT에서,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서울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상영된다.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겪을 수 있는 폭력과 불안에 대해, 그들에게 용기와 힘이 되고 싶어 만든 영화 '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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