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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당시 광주엔, 투쟁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영화

    1980년 5.18 당시 광주엔, 투쟁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반짝반짝전 현장] 김경자 감독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GV
    김경자 감독 "광주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만 묶으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시작"
    오월 광주에 있던 윤청자 씨 "여전히 광주는 빨갱이 누명 쓰고 고립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들이 39주년 전야제에 참석하기 위해 5.18민주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1980년 5월 광주엔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밥도 못 먹고 싸우는 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빵과 우유를 모아다가 주고, 도청에서 시민군을 위한 밥을 짓고, 널브러진 시신 냄새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마스크를 만들고, 광주 시내와 외곽을 밤새도록 돌며 시민들에게 투쟁에 참여해 달라고 독려 방송을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계엄군에 맞서고자 거리로 나온.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사례로 꼽힌다. 그동안 '5.18'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가 줄곧 만들어졌으나, 80년 5월을 함께했던 '여성'들은 저항 세력의 주체로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다.

    '억압에 순응하지 않는 삶', '저항하는 삶'을 담고자 카메라를 든 김경자 감독은 전남 광주광역시에 산다. 자연히 그 '5월'을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웬일인지 5.18을 언급할 때 여성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것 같아서 만든 작품이 바로 다큐멘터리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39주기였던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에서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선정작 '외롭고 높고 쓸쓸한'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김영희 연세대 젠더연구소장이 진행한 이 행사에는 김경자 감독과 당시 5월 광주에 있었던 윤청자 씨가 참석했다.

    가톨릭노동청년위원회 JOC 회원으로 광주에서 5.18을 겪은 윤청자 씨는 "작품을 만들기까지 우리들이 너무 힘든 여정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출연하는 분들이 너무 힘들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신 김 선생님(김경자 감독)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윤청자 씨는 "특히 (5월 광주) 여성들 얘기에는 한 번도,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김 감독님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쫓아다니면서 (완성)했다. 두 번째 보는데 너무 훌륭한 작품이구나 하고 또 한 번 느꼈다"고 부연했다.

    윤청자 씨는 오월민주여성회가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까닭에 대해서도 밝혔다.

    "초대는 계속 받았는데 우리가 갈 수 없었어요. 37년 될 때 처음 갔죠. 내년이면 40년인데 여전히 역사는 왜곡돼 있고 광주는 여전히 빨갱이의 누명을 뒤집어 쓰고 고립돼 있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성찰해야 될 부분이에요. 민주주의라고 말을 하지만… (울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잖아요. 여전히 광주는 이런데, 행사를 하는 것은 다 위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적으로 그 행사에 참여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 들어서 그때 처음 참석했어요. 함께 마지막 밤을 보냈던 동지들한테 (후대에 와서)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 아름다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든 것은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용기 내서 후대에 이 역사를 잊지 않도록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18일 열린 제39주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5.18 때 당시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방송을 했던 박영순 씨(왼쪽)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박영순 씨는 다큐멘터리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진=윤창원 기자)

     

    사회자로 나선 김영희 교수는 "5.18 광주는 굉장히 많이 이야기된 것 같지만, 아직 우리가 듣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고 생각한다. 폭력 피해자로서의 여성, 가족을 잃은 유가족으로서의 여성은 그래도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저항의 주체'로서 (5.18에) 참여했던 여성 목소리는 듣기 어려워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그 점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김경자 감독은 "2012년에 (작업) 시작할 즈음에 광주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느낌으로 시작했다"라며 "'오월愛'라는 작품도 있지만 여성들의 목소리와 여성들의 경험만 묶었을 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게 다큐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내가 그 순간에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게, 카메라를 들기를 너무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면서도 "아직도 선생님들이 상처와 아픔을 갖고 계시는데 저는 막연히 (다큐를) 시작한 것이라, 정말 내가 이걸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윤청자 씨는 "결혼하고도 말을 못 했다. 남편도 모르고 자식도 몰랐다. '5.18'은 늘 주홍글씨 같았다"면서 "누군가가 '쟤들은 5.18을 왜 저렇게 짊어지고 가려고 할까, 이해를 못 하겠다' 이런다. 그러니 이걸 카메라에 담는다고 생각해 봐라. 거기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들을 다 까발리게 되지 않나"라며 작업 과정 중의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최근에까지 '홍어 배달 왔다'고, (5.18 때 희생된) 시체에다가 홍어 썩은 냄새 난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개만도 못한 이들이 그렇게 우리를 농단하고 능욕하고 경멸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계속 상처를 주는데, 카메라를 든 감독도 당연히 너무 힘들지 않았겠나"라고 반문했다.

    또한 독특한 영화 제목이 탄생한 배경도 나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백석의 시 제목이자, 2012년 백석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음반에 실린 노래(작곡가 김현성) 제목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제목 때문에 너무나 고민이 많았다. 2017년 편집 때부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 김현성 작곡가님 노래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 제목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딱 왔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제가 우리 선생님들을 오랜 시간 옆에서 뒤에서 따라다녔을 때 느낌은 외롭고 쓸쓸하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그때 80년 광주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삶을 사시더라. 이런 부분이 너무 좋아서 이 제목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김현성 작곡가가) 허락해 주셔서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영화를 관람하고 관객과의 대화 때도 자리를 지킨 김현성 작곡가는 "영화 등장하시는 분들의 삶이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높게 솟아 빛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객석의 빈자리를 보며 "오늘 빈 자리엔 아마 영혼들이 와서 앉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경자 감독은 "귀한 시간 내 주시고 봐 주셔서 감사하다. 제가 더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잘 알리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독립영화 미개봉작 중 우수 작품을 더 많은 관객과 나누기 위해 마련된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은 5월 9일부터 6월 5일까지 광주독립영화관 GIFT·대구 오오극장·서울 아리랑시네센터·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의 선정작인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오늘(19일) 오후 2시 30분 대구 오오극장에서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돼 있다. 이후, 27일(오후 3시-서울 인디스페이스, 오후 5시-광주독립영화관 GIFT)과 6월 2일(오후 2시 30분-서울 아리랑시네센터), 6월 3일(오후 4시 30분-대구 오오극장)에 상영된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경자 감독, 윤청자 씨, 김영희 교수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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