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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이란 남성중심 언론문화가 만든 '기자 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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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행'이란 남성중심 언론문화가 만든 '기자 단톡방'

    긴급토론회 '강간문화의 카르텔: 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 개최
    "직업문화로 용인되는 와중에 '관행'으로 굳어진 언론사 내부 강간문화"
    "성인지 감수성·기자윤리 부재는 곧 언론사 신뢰도 하락으로 직결"
    "기자 개인의 일탈이 아닌 '언론사'의 문제로 인식하고 성찰해야"
    언론사의 지속적인 기자 교육 중요…개인정보 보호 교육 필요성도 제기

    기자 등 언론인이 만든 익명의 단톡방 내용 중 일부. (사진=제보자 제공)

     

    '클럽 버닝썬 사건'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정준영 단톡방' 등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에 대한 범죄를 놀이처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남성 카르텔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언론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언론이 남성중심 문화의 민낯을 조명한 뒤로 언론인은 김학의 전 차관 동영상을 공유해 달라 요청하는 등 남성들만의 문화를 반복했다.

    이른바 '기자 단톡방' 사건은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과 윤리의식 부재를 드러냈다. 남성중심 언론문화의 그림자는 그렇게 드러났다. 그리고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다시금 제기됐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로 '강간문화 카르텔 : 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강간문화가 직업문화로 용인되는 언론의 남성중심주의 문화가 여전한 현실을 지적하며, 언론의 자성과 언론 윤리 회복을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로 '강간문화 카르텔 : 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 '관행'으로 포장되고 직업문화로 용인된 '강간문화'

    발제자로 나선 최이숙 동아대 교수(사회학)는 관행처럼 굳어진 언론의 '강간문화'(강간과 여성에 대한 성적 공격이 용인되거나 정당화되는 것)의 문제점을 짚었다. 오래된 남성중심의 언론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 '기자 단톡방'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1969년 서울신문 사보에 실린 만평을 예로 들었다. 만평 속에는 교정 기자가 여성의 모습을 이곳저곳 수정한 것을 두고 '직업의식'이라 표현한다. 여성이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여겨졌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취재를 이유로 유흥업소를 다니거나 술 접대 등을 받는 문화가 '관행'처럼 이어져 오는 것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자 사회에 이런 문화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강간문화가 직업문화로 용인되고, 남성 유대 유지에 중요한 매개체이자 접착제로 존재했다"라며 "언론은 옛날부터 강간문화의 방조자이자 동조자였다"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기자는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주체인 만큼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중요성이 있다. 기자윤리의 중요성은 언론에 대한 신뢰도와 직결되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젠더 감수성이 정말 떨어지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뉴스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라며 "저널리즘 위기는 더욱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진단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는 '기레기'로 불리며 신뢰를 한 번 잃었고,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기자사회는 원래 그런 거 아니냐'라는 냉소가 만연한 상황에서 '기자 단톡방'은 이 같은 냉소를 더욱더 키우고, 신뢰를 더욱더 떨어뜨렸다.

    최 교수는 "독점적 정보 생산자로서 기자의 사회적 지위가 부도덕한 행위의 공유 및 이를 통한 유대 형성의 원인 아니었나"라며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혐오적 문화가 유지되던 언론사 편집국과 강간문화에 대한 약했던 비판, 내부 성찰성이 약했던 기자문화 등이 지금에 이르게 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언론노동·미디어 조직의 성 편향성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기자들과 언론사의 강력한 성찰과 이에 뒤따르는 '성인지 감수성' '윤리의식' 등 언론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기자 단톡방' 문제는 기자 개인의 일탈이 아닌 언론 전체의 성찰이 필요한 만큼 언론과 언론을 둘러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기자 등 언론인이 만든 익명의 단톡방 내용 중 일부. 보라색 배경과 붉은색 배경은 서로 다른 단톡방이다. (사진=제보자 제공)

     

    ◇ 기자 개인 일탈 아닌 '언론사'의 문제…성찰과 교육 필요

    토론회 참석자들도 최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기자 개인 단위의 반성이 아닌 언론사의 성찰을 요구하며 적극적이며 지속적인 교육은 물론 내부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효실 한겨레 기자는 이번 '기자 단톡방' 사태에 대해 "일어나 왔고 일어나고 있고 예고된 참사"라며 "수용자(독자)들은 언론과 기자의 전문성, 능력이라는 것을 윤리 문제와 젠더랑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의 준칙과 가이드라인만 다 지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여성주의 디지털 저널리즘 윤리가 현 시대에 맞춰서 구체적으로 나오면 좋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부소장은 "기자 단톡방 사건을 처음 봤을 때 놀라지 않았던 것은, 기자라는 그룹이라서 벌어지는 특수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점은 기자라는 직업의 특수성에서 온다. 정보를 독점하고, 독점한 정보가 디지털 성범죄에 사용됐다"라며 "이제 누가 언론을 믿고 이런 사건을 제보할 수 있을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부소장은 "내부에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미 기준은 많이 마련되어 있고 참고가 될 자료도 많은 상황이다. 일회성 교육을 받는 것보다 내부 합의 과정을 통해 성폭력 보도 기준을 세워야 한다"라며 "조직 문화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경희 한림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이 사건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기자들이 인지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라며 "기자직이나 언론사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이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필요성에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크게 느껴야 한다. 전문직과 비전문직 나누는 게 윤리의식"이라고 강조했다.

    고이경 DSO(디지털 성범죄 아웃) 활동가는 기자들이 직업상의 이유로 개인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취득할 수 있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교육 역시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고 활동가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 기술에 비해, 과학 기술 원리에 무관심하고, 개인 사회 구성원의 윤리의식이 부족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라며 "개인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고, 그걸 공공연하게 기사화하고 콘텐츠로 만들어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해당 정보가 아주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개인정보 보호 교육을 이수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언론사에서 개인정보에 대한 교육을 꼭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번 사건에 대한 엄정 수사와 처벌은 물론 언론사 내에서도 강력하게 징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설명했다. 오 위원장은 "기자 활동을 통해 취득한 정보를 보도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은 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이다. 회사에서 엄정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라며 "또한 취재 목적으로 획득한 범죄 영상물이라 할지라도 개인 관심사로 이용하려고 공유를 요청한 행위는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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