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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복 씨 아들 김승필 "5.18, 그날의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

    김사복 씨 아들 김승필 "5.18, 그날의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 방송 : [CBS매거진] 광주 표준FM 103.1MHz (17:05~18:00)
    ■ 제작 : 조성우PD, 구성 : 박소윤 작가
    ■ 진행 : 김희송 연구교수
    ■ 방송 일자 : 5월 8일 수요일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존 인물 고 김사복 씨의 큰아들 김승필 씨 (사진출처=한겨레)

     


    [다음은 고 김사복 씨의 큰아들 김승필 씨 인터뷰 전문]

    ◇김희송> 청취자 여러분, 영화 '택시운전사'를 기억하시죠? 2017년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목숨을 걸고 힌츠페터의 광주 취재를 도운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이야기를 담아 큰 감동을 줬는데요, 어느덧 김사복 씨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 9개월이 됐고, 다음 주면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이 돌아옵니다. 그동안 누구보다 바쁜 세월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사복 씨의 큰아들 김승필 씨와 이야기 나눠봅니다. 나와 계시죠?

     


    ◆김승필> 네, 안녕하세요.

    ◇김희송> 방금 말씀드렸듯이, 부친인 김사복 선생님이 세상에 알려진 후 바빠지셨을 거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김승필> 네, 바쁘게 지냈습니다. 일 년 전에 김사복 추모사업회가 생겨 그 곳에서 추진위원으로 활동 중에 있고요. 아울러 영화에서 비춰진 부친과 다른 점을 알리면서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리는 강의도 하고 글도 쓰고 얼마 전부터는 광주를 폄훼한 사람들 규탄대회도 다니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진 전시회 준비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김희송> 네, '택시운전사'가 정말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안타까운 점은 5.18을 왜곡, 폄훼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서도 정치적 시비를 제기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김승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거리의 현수막을 통해 부친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 씨를 반국가 단체와 내통한 불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만행이 있었고요. 급기야는 몇 명의 국회의원들이 선동해서 공청회를 가지는 지경에도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거기서도 힌츠페터 씨가 북한 공작으로부터 필름을 받아 국민에게 유포하였으며 그를 도운 김사복 씨는 간첩 빨갱이라고 말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인데요. 그로인해 저는 지만원 씨를 사자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까지 해놓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된 상태입니다. 참으로 진실에 눈과 귀를 닫은 일부 사람들과 집단들이 무지막지한 욕심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신 저희 아버님의 명예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뿐더러 저희 유족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고 생각합니다.

    ◇김희송> 이미 많이 말씀 하셨겠지만, 부친 김사복 선생님이 힌츠페터의 취재를 도운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잖습니까. 그래서 일각에서는 민주화의 숨은 은인이다. 이런 평가도 있는데요. 아버님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승필> 저희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장준하 선생님의 사상계와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를 접하시면서 민주의식을 고취시키셨습니다. 일제치하에서 배운 일어와 독학으로 쌓은 영어 실력 덕분에 통역 없이 외신기자들로부터 사실만을 전해 들으시고요. 그 당시 신군부로부터 마비된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사실들을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전하면서 함께 역할을 수행하시기도 하셨죠.

    ◇김희송> 1980년 당시 김승필 씨도 당시 성인이었잖아요? 당시 상황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김승필> 광주를 다녀오신 부친 김사복 씨로부터 많은 말씀을 전해 들었던 당시 제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그려진 송강호 씨의 배역인 만석 씨의 어린 딸로 인해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아이로 둔갑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민족을 정권쟁취 욕심으로 무지막지하게 죽일 수 있냐며 분통을 터트렸던 부친의 모습을 지금도 저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는지 저를 광화문 외신센터로 데려가서 힌츠페터 씨가 찍은 광주의 잔혹성을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

    ◇김희송> 벌써 다음 주면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이 돌아옵니다. '택시운전사' 후, 삶의 어떤 것들이 변했을까요?

    ◆김승필> 영화의 어떤 역할이나 저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5.18민주화운동은 참으로 슬프고 심각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사실을 많은 대중들에게 전하게 됐잖습니까. 그로인해 5.18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고요. 제 생각으로는 부친 김사복 씨의 부분이 영화에서 잘 표현되지 않은 관계로 자식 된 도리를 다 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체성의 자극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울러 숨어있는 그들의 어두운 면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보고요. 그걸 본 5.18동지들이 격렬히 저항하고 지금은 많은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중대한 시간을 갖는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희송> 저희들이 5.18 39주년을 맞이해서 드는 생각은 80년 당시 만약 힌츠페터의 취재, 그리고 취재를 가능케 했던 김사복 씨의 노력이 없었다면 광주의 진실은 신군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왜곡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5.18 문제를 보면 답답한 부분이 너무 많아요, 듣기로는 지금 김사복 선생님의 이장 문제도 여러 난관에 부딪혀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상황 설명해 주시죠.

    ◆김승필> 네, 사실 이장문제 전에 하나 밝히고 싶은 게 오래 전 사자명예훼손으로 지만원 씨를 고소한 사건이 중앙지검으로 송치 돼 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요.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진전이 없습니다. 지만원 씨는 아직까지도 언론에 거짓을 진짜인 양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조속히 검찰에 수사 될 수 있길 바라고요. 말씀하셨던 이장의 경우는 광주시와 5.18단체로부터 승인이 됐다고 작년 12월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힌츠페터 씨가 있는 옆에 화장실이 있고 묘비 바로 뒤 정화조 세 개가 묻혀 있는 관계로, 물론 힌츠페터 씨는 머리카락과 발톱만 모셨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부친의 경우 유골을 모셔야 하는 경우로 매우 적당하지 않은 장소라고 제의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힌츠페터 씨와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것으로 했으면 하고 어제 힌츠페터 씨 측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는 광주시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이장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김희송> 많은 분들이 두 분의 정신을 기리고 추모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광주, 전남 청취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김승필> 참 그야말로 5.18민주화운동이 39주년을 맞은 지금도 그날의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세월을 겪고 있습니다. 비록 더디게 실상이 밝혀지고 있지만 조만간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저는 나름의 방식으로 광주항쟁이 무엇 때문에 발생했으며 그 사건이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는지 잘 전하도록 할 겁니다. 그것이 저희 부친의 소신을 전하는 아들의 도리이면서 제가 이 민족의 한 일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는 빛고을 아닙니까. 그 빛이 세상을 밝힐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모두 힘내시기 바라고요. 광주시민들과 5.18민주항쟁에 헌신한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희송> 네, 지금까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김사복 씨의 큰아들 김승필씨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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