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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손 놓는 복지사들 '버틸 수가 없다'



전북

    성폭력 피해자 손 놓는 복지사들 '버틸 수가 없다'

    사진=자료사진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늘 긴장 상태다. 언제 어떤 식의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범죄 트라우마나 단체생활에서 비롯한 스트레스를 감당치 못해 가출하거나 심지어 자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원들의 처우는 업계 바닥 수준이다.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추가 근무는 일상이다. 상당수 시설 직원들은 사명감과 현실적 여건 속에서 퇴사를 고민한다. 여성 관련 시설은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직장으로 손꼽힌다.

    ◇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보호시설 직원들

    지난달 12일 오전 전주시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직원 A씨는 상담 치료를 위해 B양을 외부 기관으로 데려갔다. 전날 오전 9시에 출근한 A씨에게 퇴근은 사치였다. 곧바로 B양 등 입소자 2명을 각각 심리치료센터와 고용지원센터로 데려가야 했다. 그날, A씨는 왜 퇴근하지 못했을까.

    여성가족부 운영지침에 따라 B양이 입소한 곳처럼 정원이 10명 이하인 보호시설의 직원 수는 시설장 1명과 상담원 2명, 보조원 1명 등 총 4명으로 고정돼 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운영하려면 넷 중 한 사람은 24시간 당직근무를 서고 이튿날 쉬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상시 근무 인원은 이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2~3명으로 10명을 '제대로' 돌보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식사부터 수사 지원, 등하교 동행, 치료 등 직원들이 챙겨야 할 일이 산더미다. 장애나 사건 후유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들도 많다. 전주시에 따르면 사건 당시 시설에 입소한 피해자 중 절반이 장애가 있거나 깁스를 한 상태였다. A씨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초과근무에 나선 건 그래서다.

    과거 시설 운영을 지원했던 한 여성운동활동가는 "쉼터는 아동·청소년, 장애인, 국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다양한 처지의 입소자들이 서로 다른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곳"이라며 "각자 사정에 맞게 꼼꼼히 지원하려면 직원들이 1:1로 붙어도 모자랄 지경이다"고 강조했다.

    ◇ "최저임금 못 줘서 채용공고 못 올려요"

    여성가족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올해부터 보호시설마다 한 명씩 종사자를 증원하도록 했다. 1인당 인건비는 기관부담금(4대보험 등) 포함 총 2490만 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지침에 따라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당직근무를 해야 하는 근무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전주시 성폭력 피해여성 보호시설 관계자는 "4월부터 추가인력을 써야 해서 '워크넷'에 채용 공고를 내려고 했더니 행정당국에서 '보수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등 처우가 불법이라 게시해줄 수 없다'고 했다"며 "별수 없이 자체 홈페이지와 사회복지사 커뮤니티 사이트에 공고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겨우 공고는 올렸지만 처우나 근무 여건이 워낙 열악해 지원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며 "그 어렵다는 사회복지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여성 관련 시설은 손꼽히는 지옥이다"고 덧붙였다.

    워크넷은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다. 정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정부 지원 일자리 공고를 올릴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인건비) 예산 확보 노력은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고 밝혔다.

    ◇ 빨리 그만둘수록 이득? 등 돌리는 종사자들

    종사자들은 노인, 장애인복지관 등 다른 사회복지시설에 비해 낮은 처우를 받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폭력방지시설 종사자 근로조건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여성 보호시설 시설장과 상담원의 평균임금은 노인시설 등 다른 사회복지시설 시설장과 상담원의 평균임금에 비해 지난해 기준 각각 55%, 68% 수준에 그친다.

    오래 일할수록 손해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상담원 1호봉은 일반 사회복지시설 상담원 1호봉의 96.5%로 나타났다. 그러나 21호봉으로 올라가면 57.2%에 불과하다. 2019년 운영지침에 따라 성폭력 피해여성 보호시설 역시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준하여 종사자 호봉 책정을 할 수 있지만 구호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이직이 잦다. 2017년 기준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종사자들의 이직률은 평균 31.8%였고, 일부 시설의 이직률은 75%나 됐다. 반면 2014년 서울 조사 기준 일반 사회복지시설의 평균 이직률은 9.6%에 불과했다.

    직원들이 전문역량을 쌓을 새도 없이 보호시설을 떠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노현진 전국성폭력보호시설협의회 대표는 "상당수가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떠나버려 경험이 부족한 신규직원들이 피해자들을 돌보게 되고, 이로 인해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입소한 지적장애 고등학생이 불과 일주일도 안돼 재차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학생은 심리치료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24시간가량 실종돼, 경찰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범죄에 노출된 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건을 취재한 전북CBS가 베일에 가려진 보호시설의 실태를 점검해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시설 보호중 방치된 성폭력 피해자 '재차 성폭행'
    ② 성폭력 피해자 손 놓는 복지사들 '버틸 수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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