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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판사 "檢 수사 받아보니…재판 바뀔 것 같다"



법조

    부장판사 "檢 수사 받아보니…재판 바뀔 것 같다"

    [사법부 수사 그 후③]"나한테 유리한 증거를 봐도 기억이 안나더라"
    압수수색·구속영장 발부 엄격하게 바뀔듯
    일각에선 "판사가 매 맞아야만 바뀌는 거냐" 지적도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헌정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수사는 '재판 거래' 등 법원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지만 동시에 검찰 수사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사법농단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100여명에 달하는 판사가 검찰에 불려가 직접 조사를 받아보니 느낀게 많다는 것이다.

    이들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형사재판이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는 이유다.

    ◇ 판사들 "검찰 조서 증거능력 제한해야"

    "솔직하게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법농단 사태의 참고인으로 조사받은 A부장판사의 말이다. 검찰 조사실에 앉으니, 검사가 수천개에 달하는 메일과 서류들을 들이밀었다고 한다.

    문제는 해당 자료들이 매일매일 처리하는 '일상업무'의 일환이다보니 당시 상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A부장판사는 "대부분 한번 보고 넘기는 자료들이었는데 자꾸 왜 그랬냐고 물으니 당황스러웠다"며 "심지어 나에게 유리한 자료조차 기억이 안 나더라"고 설명했다.

    조사를 받은 다른 B부장판사는 생각보다 고압적인 검사의 태도에 놀랐다고 했다.

    폭언이나 욕설은 없었지만, 순순히 협조하지 않으면 자칫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는 게 B부장판사의 설명이다.

    검사가 "이러려던 거 아니었느냐"는 식의 다그치는 말에 '정말 내가 그랬나?' 싶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없는 플리바겐(plea bargain.형량 감경을 조건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이뤄지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B부장판사는 "헌법 제12조 2항의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조사받을 때가 되니 머리가 하얘질 뿐이었다"며 "고위공무원에 해당하는 판사한테 이 정도면 일반 국민들에겐 얼마나 큰 압박이겠나"고 전했다.

    판사들의 이같은 경험은 검찰 조서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형사재판에서 검찰 조서가 갖는 지위는 특별하다.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의하면 검찰 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그런데 A부장판사가 주로 질문을 받았던 문건은 1~2년이 지난 일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더 오래된 일은 기억이 더 희박할 수밖에 없고, 이를 기반으로 한 조서는 불완전할 수 있다.

    실제로 법정에선 자신의 진술이 담긴 조서 내용을 부정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 때문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난 뒤 10시간 가까이 조서를 열람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조서가 작성됐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박종민 기자)

     

    그는 지난달 보석심문에선 "내가 내가 말하는 취지하고 얼마나 달리 이해될 수 있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내 진술이 조서에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됐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고 검찰 조서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선 재판에서의 '검찰조서 중심주의'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경찰의 것과 마찬가지로 제한해야 한다"며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있어서 이 문제가 법적으로 꼭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지법의 다른 부장판사도 "앞으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검찰조서를 좀 더 꼼꼼히 보게 될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 제 식구 감싸기 '영장', 앞으로도 엄격할까

    지난해 본격적인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은 영장발부를 두고 대립했다.

    특히 압수수색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90%가 기각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영장을 기각한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며 여론으로부터 '방탄법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쏟아지는 비판 사이에서도 법원 일각에선 "그동안 영장이 너무 남발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최인석 전 울산지방법원장은 법원 내부 전산망에 '압수수색의 홍수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라는 글을 올리며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를 비판했다.

    최 전 법원장은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압수수색영장 청구건수가 1998년(1만5,463건)에 비해 20년 동안 10배 이상 늘었다"고 지적했다. 2001년부터는 발부율이 88~97%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검찰을 무소불위의 '빅브라더'로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법원"이라며 "법원이 그동안 검사의 업무(영장 청구)에 협조하는 데만 몰두했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데 소홀했다"고 반성의 뜻을 보였다.

    일선 법원에서도 그동안 영장이 남발한 것은 사실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왜 하필 너희(판사들)가 매 맞고 나니까 반성하냐는 비판에 대해선 부끄럽지만 그동안 영장을 너무 후하게 내준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농단 수사로 특히 영장 문제에 대해선 많은 판사들이 공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법원 안팎에선 향후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대한 발부율이 점차 낮아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발부율만 따질 게 아니라 영장 발부에 대한 신뢰 가능한 기준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9월 사법농단 관련 검찰의 첫 구속시도였던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유 전 연구관이 반출한 문건이 기밀이 아니라 죄가 되지 않는다"는 등 장문의 기각 사유를 설명하며 검찰의 청구 내용을 반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기각을 위한 기각"이라고 비판했다. 유 전 연구관이 반출한 문건들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을 땐 '기밀이라 안된다'고 했다가, 구속영장을 기각할 땐 '기밀이 아니라 죄가 안 된다'는 모순된 논리를 폈다는 것이다.

    영장전담판사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판단은 최소한으로만 공개하는 관행에 대한 지적이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을 내주는 기준이 제각각인 건 사실"이라며 "심지어 영장 대상자의 사회적 지위나 중요도에 따라 발부 이유를 설명하는 정도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1심 법원에서 발부하는 영장을 상급심에서 다시 따질 수 있게 하는 '영장항고제'가 향후 일종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며 "당사자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영장에 대한 기준이 정립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여름 시작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기소하며 8개월 끝에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재판 관여' 등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검찰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에 '사법 불신'의 그림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초유의 사태도 너무 쉽게 잊혀 진다는 건데요. 사법농단 사태를 취재했던 CBS법조팀이 '사법부 수사 이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할 부분들을 정리해봤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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