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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되셨어요" "검사입니다" 교묘해진 보이스피싱



사건/사고

    "결제되셨어요" "검사입니다" 교묘해진 보이스피싱

    접근법 다양하지만 결국 금전 요구
    '원격제어 앱 설치' 등 신종 범죄 수법 숙지해야

    (사진=연합뉴스)

     

    "A○○님 557,000원 결제완료, 상품주문번호(33591) 출고대기 중"

    대구에 사는 50대 중반 남성 A 씨는 지난달 50만 원 상당의 상품 대금이 결제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물건을 주문한 적이 없던 A 씨는 깜짝 놀라 문자를 보내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결제가 잘못됐다고 알리자 상담원은 A 씨의 명의가 도용된 것 같다며 상담 매뉴얼대로 경찰청에 사건을 접수시켜 주겠다고 했다.

    잠시 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B 경위'라고 소속을 밝힌 한 남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A 씨 명의로 된 통장이 자금 세탁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휴대전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즉시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앱을 설치한 뒤 서울중앙지검에 전화해 C 검사와 통화하라고 요구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A 씨는 그의 지시대로 해당 앱을 설치해 원격제어를 승인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서울중앙지검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보이스피싱 일당의 번호로 연결됐다.

    범인이 원격제어 앱으로 A 씨의 휴대전화에 악성코드를 심은 것이었다.

    ◇ 어설픈 조선족 말투는 옛말…세련된 말씨로 검사 사칭

    검사를 사칭한 범인이 피해자에게 문자로 보낸 가짜 공문서. (사진=대구지방경찰청 제공)

     

    전화를 받은 이는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 소속 C 검사라고 밝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30대 정도의 젊은 남성으로 서울 말씨를 또박또박 구사했다.

    보이스피싱은 조선족이 한국말을 어눌하게 흉내 내는 것이라 여겨온 A 씨는 통화 상대방이 보이스피싱 범인이라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C 검사는 범행 관련성 조사를 위해 A 씨의 통장거래내역과 카드내역 확인이 필요하다며 금융감독원 담당자와 연결시켜주겠다고 했다.

    이어 A 씨와 연결된 금감원 D 과장은 "협조를 하면 무혐의를 입증하고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어 통장 잔고 금전을 모두 출금해 '금감원 보안계좌'에 예치하고 검사와 통화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범인들은 검찰과 금감원 담당자를 바꿔가며 통화를 유도해 A 씨를 혼란에 빠뜨렸다.

    불안해진 A 씨는 무작정 검사의 말을 따랐다.

    범인의 지시대로 은행을 찾아가 '중고차 구매 자금' 용도라며 4000만 원을 인출한 뒤 접선 장소인 대전으로 향했다.

    범인들은 피해자가 눈치를 채고 신고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A 씨와 통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받았다.

    '모든 과정이 녹취돼 증거로 사용될 수 있으니 전화를 끊지 말아라. 전화를 끊으면 혐의를 인정하고 도주한 것으로 간주해 구속하겠다'며 압박했고 가짜 공문서 등을 문자로 보내 현혹시키기도 했다.

    ◇ 원격제어 앱으로 악성코드 심고 지워…뒤늦게 '아차'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대전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검사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A 씨는 약속한 장소에서 한 남성을 만났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20대 젊은 남성은 자신을 금감원 대전지부 직원이라고 밝히고 A 씨가 인출한 돈을 건네받았다.

    A 씨는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그거 사건이 잘 처리되길 바랐다.

    오히려 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어 홀가분하다고 느꼈다.

    그 남성은 "인출한 돈은 금감원 불법자금 확인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후 환급해주겠다"고 했다.

    대구로 오는 기차 안에서 검사는 A 씨에게 "마지막으로 원격제어 앱을 통해 대화 내용을 백업해가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범인은 백업을 명목으로 원격제어를 실행해 A 씨의 휴대전화에 설치했던 악성코드를 지웠다.

    이튿날 검사에게서 연락이 없자 A 씨는 그간 검사와 통화했던 검찰청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악성코드가 풀리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전화가 연결됐다.

    A 씨는 실제 검찰청 안내 직원에게서 "그런 이름의 검사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오랜 시간 힘들게 모은 4000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 접근 방식은 바뀌지만 범행 틀은 그대로

    보이스피싱 범죄가 등장한 지 10년을 훨씬 넘기면서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피해자도 따라 증가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를 깜빡 속게 만드는 접근 방식이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핵심 수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족을 납치했다며 불안을 유도하는 △납치빙자형, 경찰·검찰·금감원 등 공공기관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은행·캐피탈·대부업체를 사칭하는 △대출빙자형의 유형으로 결국 금품을 요구하고 가로채는 것이다.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많은 이들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초창기 수법 수준으로 기억한다"며 "위 세 가지 틀 안에서 진화된 수법을 숙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앱 설치를 요구하는 전화는 악성코드 감염을 의심해야 한다. 또 공공·금융기관이 전화로 금전을 요구한다면 절대 응하지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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