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제공)
미중 무역전쟁의 협상 시한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리며 파상 공세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직접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중국 정부보다 화웨이와 ZTE(중싱·中興) 등 중국의 거대 통신기업들을 겨냥한 공세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 미중 고위급 협상 이틀 앞두고 화웨이와 멍완저우 부회장 기소
미국 사법 당국이 지난 달 28일 중국의 화웨이(華爲)와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을 기소키로 결정한 것은 최근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견제가 얼마나 전방위 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기소된 화웨이와 멍 부회장은 금융사기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세계 언론들은 화웨이와 멍 부회장에 대한 기소 방침이 워싱턴에서 예정된 양국 고위급 무역협상일을 불과 이틀 남겨놓고 전격 단행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날은 류허 중국 부총리가 협상단을 이끌고 워싱턴에 도착한 날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5~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를 앞두고 미국 무선통신망에 중국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하는등 '화웨이 죽이기'를 못박으려 하는 분위기다.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고든 손들랜드 EU 주재 미국 대사는 7일(현지시간) 한 인터뷰에서 서방국가들이 중국 장비를 사용하면 미국은 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거래하는 데 더 신중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손들랜드 대사는 "모든 정부와 모든 책임 있는 사람들이 (화웨이 제품에 대한) 위험도 평가를 매우 진지하게 해야 한다"며 화웨이를 노골적으로 겨냥했다.
전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압박은 효과를 보고 있다. 멍완저우 체포로 중국과 관계가 불편해진 캐나다가 차세대 이동통신망인 5세대(5G) 네트워크 장비 입찰에서 중국 화웨이를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미국의 우방인 호주, 뉴질랜드, 일본이 화웨이 장비 사용불가를 선언한 가운데 화웨이 제품 거부 국가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유럽에서도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 프랑스 최대 통신회사 오랑주, 독일 도이체 텔레콤, 세계 2위 이동통신 사업자 보다폰 등이 핵심 네트워크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중단하거나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노르웨이와 덴마크 폴란드 등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화웨이 제품 재검토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국에 대한 압박에는 미국 행정부 뿐만 아니라 의회도 거들고 있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지난 5일(현지시간) ZTE가 미국 법률이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한 합의를 어기면 제재를 다시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했다. 또 미국 공화당 소속 상원들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차이잉원(蔡英文) 타이완(臺灣) 총통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추진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미 정부의 부분폐쇄(셧다운)으로 여야가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지만 중국 때리기에서는 여야 구분이 없는 모습이다.
◇ 무역협상 엄청난 진전 이뤘다더니…거세게 中 몰아붙이는 美 속셈은?미국이 미중 무역협상의 사실상 데드라인인 3월 1일을 앞두고 이처럼 중국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는 이유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을 방문한 중국측 무역협상단을 만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보낸 친서를 전달받은 자리에서 "미중 무역협상이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며 "시 주석과 아마도 한 번 또는 두 번 만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시 주석과 만날 때는 모든 사항이 합의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콩 매체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에서 시 주석과 연쇄 회동을 갖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과 협상을 로우키 전략으로 일관한지 오래다. 미국이 지난 한해 2천5백억 달러(약 22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자 1천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맞관세를 부과하는 등 한 때 난타전도 감수하는 듯 했으나 현재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는 거의 유명무실화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 지지층인 미국 농가를 겨냥한 대두(콩) 수입 금지나 액화천연가스(LNG) 금수조치가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중미 외교수립 40주년 기념 2019 새해 리셉션'에서 "중미관계 40년의 역정이 증명하듯 양국 간 협력은 양측 모두에 이익이자 최선의 선택"이라며 "인문 교류를 강화하고, 민의를 바탕으로 상호 이견을 적절히 처리해 나가자"고 미국에 러브콜을 보냈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되자 중국의 캐나다인들을 억류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체포를 요구한 미국에 대해서는 극히 절제된 비판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달 안으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을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미중 무역협상 타결 시한 전에 시 주석과 만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협상 타결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여러 가지 화해의 몸짓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미중의 무역협상 타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이전 강제 금지와 이른바 '중국제조 2025'로 대변되는 '약탈적' 기술개발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대두와 액화천연가스 수입 증가 등 수입물량 확대 카드로 무마하려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협상 막바지까지 상대를 극한까지 몰고 가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전략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다음 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무역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터여서 베이징 협상 결과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극적으로 양국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한 차례 취소 선언을 한 뒤 북한의 전격적인 태도변화를 이끌어낸 전례가 있다"며 "베이징에서 열리는 고위급 회담에서 중국이 어떤 카드를 던지느냐에 따라 협상 타결의 불씨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