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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배우 윤안나 "작품 속 이주 여성의 삶, 공감돼서 슬펐죠"



공연/전시

    독일인 배우 윤안나 "작품 속 이주 여성의 삶, 공감돼서 슬펐죠"

    [노컷 인터뷰] 연극 '텍사스 고모' 배우 윤안나.

    배우 윤안나.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36년 전 주한미군을 따라 텍사스로 떠났던 고모. 그리고 지금 환갑이 넘은 한국남자에게 시집 온 키르기스스탄 여인.

    시대와 국적이 다른 두 인물이지만 삶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고모는 가난이 힘들어서 텍사스로 떠났다. 키르기스스탄 여인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한국을 찾았다.

    두 사람 모두 그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녹록치 않았다. 차별과 멸시 그리고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폭력.

    2일부터 25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텍사스 고모'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현실을 세밀하게 그려 다문화 시대에 우리 사회가 다시금 생각해야 할 문제를 제기한다.

    이 연극에서 환갑 넘은 한국남자와 결혼한 키르기스스탄 여인은 독일인 출신 배우 윤안나(Anna Rihlmann, 92년생)가 맡았다.

    그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외국에서 온 내가 이 역할을 맡아 감사하다"며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 여성으로서 한국에 사는 것에 대한 공감을 많이 얻었다"고 전했다.

    외국인 여성 배우 윤안나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에 공감했고,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31일 오후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연습을 한 시간여 앞둔 윤안나를 만났다.

    다음은 1문 1답.

    배우 윤안나.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 한국엔 언제 왔나.
    = 한국에 정착한 건 5년 전인 2014년이다. 지금은 한예종에서 연기 공부 중이다. 지금은 휴학하고 외부활동 중이다.

    ▶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14살 때였다. 독일 남서쪽 카이저슬라우테른(Kaiserslauter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았는데 동네 극장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을 보고 한국에 빠졌다. 한국영화를 찾아 보기 시작했고, 친한 베트남 친구 집에 가서 아리랑TV로 한국영화 소개 프로그램이랑 한국 뮤직비디오도 많이 봤다.

    개인적으로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데, 15살 생일 때 부모님께 한글 공부 책을 선물받아, 한글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아버지가 아는 목사님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고, 그 후 여행, 교환학생 등으로 다시 방문했다.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과 한국학을 공부한 다음 졸업하고 바로 한국에 온 게 2014년이다.

    ▶ 한국이 왜 좋았나.
    = 처음 한국 알게 된 게 사춘기 때인데, 그때 한국은 회피할 수 있는 곳으로 느껴졌다.

    ▶ 5년째 살고 있는 지금도 한국은 좋은 나라인가.
    = 좋다. 사실 나는 큰 환상을 갖고 오지는 않았다. 김기덕 감독 영화로 먼저 접해서, 한국은 영화에 나오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와서 보니 한국 사람들 의외로 착하고 안 무섭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거겠지.

    한국에서 같이 수업 듣던 다른 외국인 친구들 보면 70%는 실망하고 돌아간다. 케이팝, 케이드라마 본 뒤 환상을 갖고 온 친구들이다. 그들은 그 실망을 한국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일 대학에서 한국학공부하면서 한국 역사와 문화를 많이 배웠다. 한국사회 문제점 등에도 관심이 있었다. 물론 살면서 안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의 잘못이라기보다 사회적인 문제이다. 나는 힘들어도 잘 참고 이해하려는 면이 있다.

    ▶ 연기 경력이 상당하다. 첫 데뷔는 무슨 작품이었나.
    = 연극에 데뷔한 건 2014년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 내 안의 김수영을 찾아서'(연출 김재엽)였다.첫 연기라 참 많이 떨었는데,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때 연기를 제대로 배워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엔 한국의 테레사로 불리는 독일계 미국인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서서평', 파독간호사 이야기를 다룬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에도 출연했다. 내가 역사와 사회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다큐멘터리 장르 좋아한다.

    연극 '텍사스 고모' 연습 장면. (사진=국립극단 제공)

     

    ▶ 이번 작품 '텍사스 고모'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지원한 건가, 아니면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나.
    = 아는 연출이 국립극단에서 이런 작품 한다니까 한번 보라고 해서, 홈페이지 들어가서 보고 지원했다. 서류 심사를 통과한 뒤 1차 오디션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지정 대본, 자유연기, 움직임 3개를 봤다. 난 움직임이 춤인 줄 알고 키르기스스탄 춤을 준비했다. 움직임은 그냥 감정만 표현하는 연기를 보고자 한 거였는데, 생각이 짧았다.

    오디션장에서 춤을 준비했다고 하니까, 춤 추겠다고 한 사람은 나뿐이라고 하더라. 내가 준비한 키르기스스탄 춤이 유튜브로 급히 배운 건데 좀 웃긴 동작이다. 그런데 오디션장에는 스피커도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 틀어놓고 혼자 막 췄다. 그때 연출님이랑 작가님이 너무 무표정해서, '아! 망했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합격했다.(웃음)

    ▶ 작품 속 키르기스스탄 여인의 삶과 한국에 사는 외국인 윤안나가 다르면서도 같은 지점이 있을 것 같다.
    = 대본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됐고, 그래서 슬펐다.

    키르기스스탄 여인은 19살이었고, 한국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내가 키르기스스탄에 대해 공부하려고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신부 납치라는 전통이 있다. 길거리에서 납치해서 강제로 결혼하는 거다. 돌아가려 해도 여자 집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그런 일상이, 그런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도망쳐 한국에 온 거다. 그 여성은 한국에 오면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 밭일만 해야 했다. 그래도 자기가 선택해서 온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참고 버틴다. 그 모습이 슬펐다.

    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이 마냥 좋아서 왔다. 살다 보니 안 좋은 점도 보인다. 그런 과정은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바꿔주었다. 그래서 그 여성에게 조심하라고 조언도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지 않나. 아까 내가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든 점도 있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고 한 게, 내가 선택한 거니까. 그 선택을 바꾸고 싶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키르기스스탄 여인도 자신의 선택을 지키려고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버틴다.

    연극 '텍사스 고모' 연습 장면. (사진=국립극단 제공)

     

    ▶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겪은 편견 같은 게 있나. 독일인이고 백인이라 어떤 부분에서는 덜 차별받았을 것도 같다.
    = 일단 유럽인이니까 개방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 또 내가 러시아 사람처럼 생겼다. 지금은 염색했는데 금발머리일 때.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얼마냐고 묻기도 하고 그랬다. 밤도 아니었는데. 그 일을 한국인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자신이 독일 베를린에서 겪은 일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을 보는 그런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잘 모르면서 그 나라와 그 나라 사람에 대해 평가를 쉽게 하는 것도 같다. 내가 몽골 친구랑 인도 친구가 있다. 생김새 때문에 받는 차별이나 편견으로 그 친구들 너무 힘들어한다. 백인이고 독일인인 나에게 대하는 것과 그 친구들 대하는 게 너무 다르다.

    '텍사스 고모'에도 나오지만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지고 쉽게 평가하는 것 같다. 36년 전 텍사스 고모가 미국 갔을 때 미국인들이 아시아 사람이라고 무시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람이 파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등 못 사는 나라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게 많다.
    이런 거 보면 화가 난다.

    ▶ 한국에 비하면 독일이 더 살기 좋은 나라 아닌가. 가고 싶지는 않았나.
    = 내 외할아버지가 라트비아 사람이었다. 어릴 때 라트비아로 안 가고 싶냐 물었는데, 여기가 내 집이라 하셨다. 내가 행복한 곳에서 살면, 그곳이 고향이라는 거다. 마음이 중요한 거 같다. 독일 복지가 좋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 살아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 소용없지 않나. 난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든 점도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그리고 외국인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

    ▶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 처음 왔을 때 비하면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한국은 유럽만큼 다문화 사회는 아니지 않았나. 지하철 같은 걸 타면 외국인이 나뿐이라 시선을 많이 느끼곤 했다. 이제는 외국인들도 많아졌고 그런 시선도 많이 줄었다. 앞으로 5~10년 지나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변화를 만드는 과정 속에 외국인 배우인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이주민 영화제 지원을 받아 단편영화를 찍어서 내년에 출품할 계획이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산 이방인 아이 이야기이다. 사실 한국인인데, 사람들은 이 아이를 한 인간으로서 보지 않고 외모와 국적만 보고 쉽게 판단하는 내용이다. 그런 편견과 시선이 바뀌길 바라면서 만들 계획이다. 나는 실제로 바뀔 거라고 희망을 갖고 있으니까.

    ▶ 이번 작품 하면서 공감 안 되는 점도 있을 것 같다.
    = 남편에게 폭력을 겪으면서도 계속 살겠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됐다.'얘 바보 아냐. 나이가 21살인데. 한국이라는 나라 넓으니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고, 어디로든 가면 보호받을 수 있는데 바보같이 왜 맞고 있지'. 그런 점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이건 문화 차이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작품 준비하면서 내가 이 여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도망치지 않고 마늘밭에서 계속 일을 하는 장면)은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었다.

    배우 윤안나.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 연극 '텍사스 고모'가 전하는 메시지는 뭐라고 생각하나.
    = 두 가지 같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라는 것. 외국인에 대해 무시하는 사람 많으니까. 예를 들어 러시아 사람, 키르기스스탄 사람이 다 똑같지라고 말하는데. 그건 마치 유럽 사람이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 똑같지라고 하는 거랑 같다. 기분 나쁜 일이다. 각자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데. 그러니 말을 조심하고,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해달라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

    두 번째 메시지는 한국에서 이주민 여성 많은 걸 인지하라는 거다. 사실 결혼 이주 여성은 시골에 많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이거 우리 얘기 아닌데 하며 공감하지 못하면 좀 아쉬울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 어떤 사람들이 보러 오면 좋겠나.
    = 이주민 여성들이 많이 보러 오면 좋겠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주민 여성 모임 같은 게 있다. 팔로우도 하고 응원하는 흔적 남기곤 한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와서 힘든 게 많더라. 그 사람들 모임에 가고 싶은데, 사실 난 독일에서 왔고 석사로 와서 어쩌면 그들에게 불편할 수 있을까봐 염려돼서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어. 그래서 내가 하는 이 연기가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이주민 여성에게 우리가 지금 당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라고 알려주고 싶다. 한국 사회 많이 바뀌고 있으니까, 서로 힘을 모으고 좋은 쪽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이주민 방송 같은 데에 이런 작품 있다고 알리기도 하고 그랬다. 많이 보러 오면 좋겠다.

    ▶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
    ='세상은 달라지지가 않거든. 늘 그래 왔거든.' 내가 맡은 키르기스스탄 여인이 아닌 텍사스 고모의 대사다. 텍사스 고모가 미국에서 이주민으로 살며 겪었던 일을, 지금 한국에서 키르기스스탄 여성이 똑같이 겪는 것에 대한 한탄하며 하는 대사이다. 나라도 문화도 다른데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약자를 무시하는 게 똑같다고 생각하는 거다. 계속 당하기만 하고 바뀌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슬펐다.

    ▶ 안나 배우는 계속 연극을 할 계획인가.
    = 그럴 것 같다. 나는 연극이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회적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에도 관심이 많아서 이쪽 일을 계속 할 것 같다. 내가 계속 하는 게 또 다른 외국인 배우 지망자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외국 나가서 배우를 하는 것에도 용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꼭 하고 싶다 하는 작품이 있나.
    = 한국 작품 '춘향전'을 외국인 배우와 하려고 한다. 인도 출신인 남자 배우와 같이 하려고 구상 중이다. 외국인 배우가 한국 전통 작품 속 배역을 연기하면 이상하다며 웃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사람들이 셰익스피어나 체홉 작품 속 외국인들 역할을 하지 않나. 최근에 황정민 배우도 리차드 3세를 연기했고. 이건 연극적인 약속이니까 이상하지 않은 거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외국인들이 보면 웃긴 걸 수도 있다. 누가 내 아이디어를 베끼지 않으면 좋겠는데, 지금 '안나전'(가제)으로 쓰고 있다. 나는 한국 사람들에게 내가 5년간 깨달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보면 좋겠나.
    = 많은 사람이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공연이 되면 좋겠다. 독일에는 공연을 마치면 로비에 모여 토론을 한다. 이 연극 주제가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예민한 소재이니까, 그럴수록 더 많이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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