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민이 내달 1일부터 시내버스 운행노선이 폐쇄·통합 된다는 안내문을 보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지역에서 근무하려면 자가용은 필수"
기자가 합격 통보를 받고 강릉지역에 왔을 때 선배에게서 들은 첫마디는 "운전을 할 줄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강원지역은 대도시와 달리 지하철도 없는 상황에서 시내버스로는 이동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강릉에서 유일한 대중교통은 시내버스뿐이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노선도 많지 않은 탓에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자가용이 필요하다는 말이 지역 내에서 '통용'되고 있을 정도다.
선배는 수습기자 월급을 택시비로 다 쓸 수 없으니 직접 자동차를 구매해 몰고 다니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데 '효율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6년 전 취득한 운전면허를 꺼내 서툰 운전을 한 지 3개월. 기자는 지난 24일 직접 시내버스를 타고 강릉지역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들쭉날쭉 배차 간격에 안내부실···불편한 시내버스 탑승기
강릉지역의 한 정류장에는 버스 도착안내나 시간표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지 않다. (사진=유선희 기자)
이날 오전 6시쯤 집에서 출입처인 경찰서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 도착 안내에 대한 정보는 물론 시간표도 찾아보기 어려워 탑승부터 난관이었다.
부랴부랴 스마트폰으로 '강릉버스정보' 앱을 내려받아 살펴보니 8분 후에 경찰서 방면으로 가는 '206번 버스'가 온다는 알림이 떴다.
하지만 8분 후 도착한다는 버스는 5분이 더 지난 오전 6시 45분이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내린 시간은 6시 55분. 이후 10분을 더 걸은 뒤에야 최종 목적지인 경찰서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집에서 경찰서까지 차를 타면 10분 남짓한 거리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결과 대기시간을 포함해 30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마저도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대기시간이 더 늘어난다. 취재를 마친 지점인 강릉시 성산면에서 회사로 복귀하기 위해 버스를 직접 기다려 보기로 했다.
20분이 지나서도 501번 버스가 '약 13분 후 도착'한다는 알림이 멈춰있다. (사진='강릉버스정보' 앱 캡쳐)
역시 버스 도착 안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강릉버스정보' 앱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13분 후 도착'이라는 알림은 10분, 20분이 지나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렇게 대기시간만 30분. 찬바람을 견디며 기다린 '501번 버스'를 보니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 찾은 사람처럼 반가움이 물밑 듯 쏟아졌다. 혹시나 버스가 그냥 지나쳐 버릴까 봐 앞으로 바짝 나가 손을 열심히 흔들어 버스를 세운 후 올라탈 수 있었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15분 거리였지만, 대기시간만 30분인 탓에 이동시간 50분을 더하니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노선 폐지와 통합에 이어 요금 인상까지···"자동차 없으면 안 돼"
한 시민이 시내버스 요금 인상 안내문을 읽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이런 가운데 최근 지자체가 시내버스 일부 노선을 폐지·통합하고 요금까지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지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강릉시는 현재 운행노선 111개 중 13개를 폐지·통합해 다음 달 1일부터 108개 노선으로 줄이기로 했다.
또 강릉을 포함한 춘천, 원주, 삼척 등 4개 통합시는 오는 26일부터 현행 성인 기준 1300원에서 1400원으로 요금이 인상되며, 나머지 14개 시군은 1200원에서 1400원 오른다.
지역주민 송미숙(여.56)씨는 "필요한 시간에 버스가 오지 않고 시골이라 택시도 들어오지 않는 탓에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다"며 "외곽지역에 필요한 대중교통이 도리어 없어진다고 하니 문제"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 김성연(64)씨는 "강릉은 지하철도 없어 대중교통은 시내버스가 전부인데 활성화가 안 돼 있어 아쉽다"며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자동차가 꼭 필수"라고 말했다.
시내버스 운행노선이 많지 않고 배차 간격이 너무 긴 탓에 애초부터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대다수 지역민은 한목소리로 "시내버스가 대중교통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강릉시 관계자는 "이번 버스 정책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며 "근로시간도 줄이고 사람도 줄이려면 어쩔 수 없이 승객이 한두 명만 타는 외곽지역의 운행 노선부터 폐지·통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시내버스가 운행되지 않는 곳에는 희망택시를 운영해 시민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