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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얼굴이 파리하니 중국 분유 먹고 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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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중국 발 멜라민 파동으로 아직도 시끌벅적하다. 특히 아기들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 어머니들로서는 몹시 당혹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당국의 검사 결과 국내 분유제품들에서는 멜라민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

    ◈ 얼굴이 파리하니 중국 분유 먹고 컸냐?

    1950년대에 미국이 전쟁 후 무상지원한 전지분유가 우리나라 분유의 시작이다. 분유가루에 끓는 물을 부어 휘 저은 뒤 호호 불며 마시던 그 때의 꼬마들이 지금은 50대, 60대에 접어들었다. 아기용 조제분유가 생산된 것은 1965년, 아무나 먹던 것이 아니었다.

    얼굴 뽀얗고 살이 넉넉하면 분유 먹고 컸냐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으니까…. 사실 그 분유의 시작은 중국이다. 중국 몽골의 유목민 타타르 족이 우유를 햇볕에 말려 가루로 낸 뒤 그것을 반죽 형태로 가지고 다닌 것에 착안해 분유가 개발됐다.

    중국의 이번 멜라민 파동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에 스스로 흙을 끼얹은 셈이라 하겠다. 중국은 현재 분유뿐 아니라 과자, 채소, 사료 등 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먹을거리''와 관련된 제품에 대해 지구촌의 특별감사를 받고 있는 중. ''먹을거리''에 무엇이든 집어넣고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나라로 의심받고 있다.

    문명의 발상지이자 禮 와 恭敬의 정신문화를 갖고 있던 중국이 어찌 이런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걸까?

    중국은 21세기에 두 번의 변혁을 겪는데 그 하나는 공산당의 문화대혁명이다. 이 때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문화유산, 도덕 의식이 불태워져 버렸다고 역사가들은 분석한다. 그리고 그 혼돈 위에 서구 자본주의가 수입되며 급속한 산업화와 시장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돈을 벌고자 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이 되는 지경에 놓인 것.

    ◈ 로컬푸드- 기본은 처음이자 곧 끝이다

    [BestNocut_L]지금 우리에게 닥친 화급한 문제는 ''도대체 무얼 먹여야 하는가?''

    어찌 생각하면 무얼 먹여야 하는 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어머니들이라면 분유보다는 모유를 먹여야 하고, 병에 든 이유식보다는 집에서 유기농 식재료들을 사다가 정성껏 만들어 먹이면 된다.

    봉지 속 과자 대신 요것 저것 간식거리를 손으로 만들어 먹으면 되고 밥상에는 중국산 일체 없이 국내산으로 올리고, 중국산 사료를 쓰는 양식산은 피하고 자연산으로…. 그러니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사회경제적 여건 상 현실적으로 감당해 낼 수 없어서 못한다. 그렇다면 사회경제적 여건을 고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데 그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번에 한국이 멜라민을 무사히 피해간다고 쳐도 식탁이 안전한 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멜라민처럼 법으로 금지된 것도 있지만 광우병위험물질처럼 경고가 울리고 걱정이 되어도 법규에 의해 시장에 내놓는 것들이 있다.

    유전자 조작 식품들은 장차 어떤 소동을 벌일 지 아직 확실치 않지만 넘쳐 나고 있다. 오염된 먹을거리로 인해 모유 속에서도 살충제 잔류물질이 검출됐다는 사례까지 보고되는 마당에 피해 갈 곳은 없다.

    21세기에서 ''먹을거리''는 더 이상 식재료와 조리의 문제가 아님을 바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먹을거리''를 섭취한다는 것은 화학, 농학, 축산학, 유전학, 농경제학, 무역학, 지정학, 정치학, 생리학, 의학 등 온갖 학문분야가 얽힌 대단히 심각한 행위이다. 선진국은 과학기술로 유전이나 생태적으로 부적합한 것들을 만들어 내 광고와 로비, 외교력으로 우리 시장에 밀어 넣는다. 후진 강대국은 독한 화학약품으로 범벅을 만든 뒤 싼 값을 경쟁력으로 해 팔아먹는다. 우리의 식탁은 이렇게 이리 저리 치이고 있다.

    한국은 건강하고 매력적인 ''먹을거리''들로 따질 때 세계 속에서 주목받을 만한 나라이다. 김치, 된장, 청국장, 고추장, 각종 젓갈, 샐러드와 비교할 수도 없는 쌈과 겉절이…. 웰빙으로 치자면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할 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전쟁과 산업화로 ''먹을거리''와 ''먹을거리에 대한 문화적 의식''이 파괴된 게 문제이다. 그 결과 세계 제 1의 라면소비국가, 모유수유율 OECD 최하위 국가,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의 주요시장, 스스로의 김치 시장마저 중국에 내준 딱한 모습으로 전락했다.

    해결 방법은 우선 ''로컬푸드''이다. ''내 고장에서 기른 먹을거리를 내 고장에서 소비한다''는 원칙이다. ''먹을거리''를 길러내고 만드는 사람과 사먹는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알고 수시로 연락이 가능하면 형편은 훨씬 나아진다. 종종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널따란 땅덩어리 중국이 수출하는 것들과 다국적 기업이 만드는 글로벌 과자에서 멜라민이 나왔음에도 국내산 분유나 국내 생산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로컬푸드''의 이점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먹을거리''는 가능한 ''이동 거리''가 짧아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는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먹는 음식은 맛나야 하지만 깨끗해야 하고 또 공정해야 한다. 약을 치니 안 팔리더라, 수입해다 파니 외면하드라…. 생산판매자들에게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넓게는 어린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후진국 산업을 무너뜨리며 생산한 것은 불공정무역제품으로 거부해야 한다.

    올바른 건강한 ''먹을거리''는 이렇게 서로가 생산과 소비의 공동체로서 한 가족이거나 최소한 한 마을 사람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다. 병든 세상을 고쳐야 엄마가 건강하고, 건강한 엄마가 아이에게 건강한 세상을 열어 줄 수 있지 않겠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나무나 당연한 것을 외면하고 바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해 가니 해결은 멀어진다. 기본은 처음이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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