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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 누나가 수놓고 간 빛바랜 자수, 이제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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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북한

    "70년전 누나가 수놓고 간 빛바랜 자수, 이제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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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차 이산가족 상봉도 안타까운 사연 봇물…월북자 가족들 가슴에만 숨겨왔던 아픔 풀어내
    "우리 정화는 아직도 17살인데…" 여동생 만나는 100세 언니
    "청진에 돈 벌러 간다던 언니였는데…" 자매들의 감격적 상봉
    "기적같은 일, 로또 맞았다"
    "서신으로라도 서로 왕래하면 소원이 없겠다"
    "14년 전에 살아있다는 소식 들었지만 이제야…"
    "누님이 돈 벌러 간다며 놓고 간 이 자수 전해드려야죠"
    "북측 언니도 오빠 소식을 모르는 구나"
    "오빠 발등에 흉터 확인해볼래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일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최고령 상봉예정자 강정옥(100)할머니와 김옥순(89)씨가 남북출입사무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4일부터 금강산에서는 다시 이산가족들의 애틋한 만남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북측 이산가족들이 남측의 가족들을 찾아 만나는 순서라 1회차와는 또다른 안타까운 사연들이 쏟아졌다.

    인민군으로 징용됐다 돌아오지 못한 형님과 공무원으로 일하다 북으로 끌려간 누나, 돈 벌러 이북으로 갔다가 전쟁 때문에 생이별한 가족들의 아픔이 사전 취재를 통해 전해졌다.

    특히 월북자 가정이라고 낙인찍힐까봐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북측에서 먼저 찾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용기를 낸 가족들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가슴에만 묻어놨던 아픔을 풀어냈다.

    "우리 정화는 아직도 17살인데…"

    올해 100세로 남측 방문단 중 최고령인 강정옥 할머니는 24일 오후에 드디어 전쟁 통에 소식이 끊겼던 넷째 여동생(강정화‧85)을 만났다.

    여동생은 서울 영등포 방직공장에 취직했다고 상경한 뒤 이듬해 6‧25가 터지고 나서부터 소식이 아예 끊겼었다.

    태풍 때문에 제주도에서 하루 먼저 서울에 왔다는 강 할머니는 사전 인터뷰에서 약간의 멀미 기운만 있을 뿐 아주 정정하다며 동생을 만나면 "반가운 말만 해야죠. 기쁜 말 해야죠. 눈물이 나서 말을 못할 것만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강원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남측 상봉단이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기적같은 일, 로또 맞았다"

    이번에 북측 언니(강호례‧89)를 만나는 강두리(87) 할머니는 '언니가 북한에 살아있고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은 뒤 가족들에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기적같은 일, 로또 맞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경북 영덕이 고향이었는데 인근 마을로 시집간 언니만 시댁에서 살다보니 같이 피난을 하지 못했고, 돌아와보니 이미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여태껏 언니가 죽은 줄로만 알고 북쪽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 한번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 정신이 아니라 아직도 얼떨떨"

    북측 형(권혁만‧86)을 상봉하는 권혁빈(81) 할아버지도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당시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잡아간 형이 죽은 줄 알고 지금까지 이산가족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연락을 받고 제정신이 아니라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권 할아버지의 아버님은 당시 마포경찰서에서 근무한 터라 경찰관 가족은 위험하다고 해서 포천으로 피난 갔었는데, 뒷산에 숨어있던 형과 6촌 형이 인민군에 붙잡혀 이북으로 간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런 형을 위해 동생들은 부모님이 젊었을 때 찍은 사진과 부모님 산소가 있는 선산의 사진까지 인화해서 챙겨왔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 설악에서 우리측 상봉단이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돈 벌러 간다던 언니였는데…"

    북측 언니(김정옥‧85)와 만나는 김정자(83)‧김정숙(81) 자매가 기억하는 언니의 모습은 1949년이 마지막이다. 김정자 할머니는 "당시 16살이던 언니가 청진 제철공장에 돈벌러 간다고 간 이후 몇 번 서신을 주고받았지만 이듬해 전쟁으로 연락이 두절되고 생사도 몰랐다"며 "사진 한 장도 없고 죽은 줄 알고 살았다"고 말했다.

    언니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연락받은 막내 동생이 그 사흘 뒤에 척추경색으로 마비 증상이 와 입원하는 바람에 이번 상봉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했다.

    김정자 할머니는 "금강산에서 언니와 하룻밤 잠이라도 같이 잤으면 좋겠는데…"라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측 김형인(85) 할머니는 이번에 남측의 세 동생을 만난다. 남동생 김학수(66)씨는 "당시 동덕여고 빙상부였던 누님이 인민군에 협력했다고 누가 고발하는 바람에 거제 수용소에 잡혀간 것으로 안다"며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남측 가족들이 김형인 할머니를 만난 것은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유엔군 통역관을 하던 사촌이 1번 면회를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남북 철도도 만나야"

    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오세영 전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번에 북측 사촌(라종주‧72‧여)을 만난다. 오 전 교수와 동행하는 김상암(51)씨는 "고향이 전라도 장성인데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 둘째 고모와 딸(라종주)이 같이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김상암씨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신교통혁신연구소 철도안전연구팀에서 연구단장을 맡고 있는데 "철도인들은 남북 철도 연결사업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며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듯 남북 철도도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8.15 계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 설악에서 우리측 상봉단이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4년 전에 살아있다는 소식 들었지만 이제야…"

    북측 언니(량차옥‧82)를 만나는 양계옥(79) 할머니는 언니가 지난 1951년 3월 당시 서울대병원 앞 코너에서 납치돼 이북으로 끌려갔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양 할머니는 “이산가족 찾기가 시작될때부터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90살까지 사셔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돌아가신 지가 벌써 18년이 됐다”며 “아버지는 ‘우리 딸은 결코 잘 있을 거다’라는 믿음이 있으셨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는 “2004년쯤 언니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해외 소식을 통해서 이미 전해 들었는데,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렘을 표시했다. 언니가 북한에서 4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는 얘기도 전했다.

    가족들은 특이하게 '김부각'을 선물로 준비했다. 양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의 특별한 솜씨, 친정의 그리움을 전하고 싶어서 전라도의 계절음식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누님이 돈 벌러 간다며 놓고 간 이 자수…"

    북측의 이부누님(리근숙‧84)을 만나는 황보우영(69)씨는 "누님이 북한에서 간호장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잘 살았던 것 같아서)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황보씨는 "그때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으니까 누나가 70년전 원산 봉직공장에 돈 벌러 간다고 집을 떠나면서 자수를 두고 갔다"며 낡아서 누렇게 변한 자수를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황보씨는 "큰 누이 생일이 칠월 칠석이라 어머님은 늘 칠월 칠석이면 정한수 한 그릇에 촛불을 켜두고 북쪽을 향해 기도를 드렸다”며 "91세에 돌아가셨는데 '통일이 되면 누나에게 꼭 주라'하면서 유언과 함께 자수를 남겼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회차 상봉 행사 첫 날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 설악에서 우리측 상봉단이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형을 기다리며 이사를 한 번도 안갔는데…"

    북측 형(리상윤‧86)을 만나는 이상준(84)‧이상근(74) 형제도 헤어질 당시 형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8살 이었던 형 리상윤은 다른 동네사람 13명과 함께 의용군에 입대한 뒤 이북으로 훈련을 받으러 간 이후 소식이 끊겼다. 동생들은 혹시라도 형이 돌아올 수 있게 경기도 부천 소사본동에 있는 고향 집에서 한번도 이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보이스 피싱 인줄 알았는데…"

    북측에서 이모(리현숙‧86)가 가족을 찾고 있다는 전화에 조카 맹용하(55)씨는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줄 알았다. 가족들이 전부 반신반의 했었다”며 “어머니는 그 연락을 받은 뒤에 떨리고 하셔서 잠을 잘 못이루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전쟁 당시 리현숙 할머니가 서울 중부세무서에서 근무하다 인민군에 끌려갔다고 전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 설악에서 우리측 상봉단이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북측 언니도 오빠 소식을 모르는 구나"

    언니와 오빠가 모두 북측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살았던 박은서(79) 할머니는 이번에 언니(박경희‧87)가 자신과 오빠를 모두 찾고 있었다며 “언니도 오빠 소식을 모르는 구나 싶어 언니를 찾은 것은 기쁘지만 오빠 소식을 듣지 못해 실망이 크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북측 동생(송유철‧70)을 만나는 송유진(75) 할아버지의 사연도 기구했다.

    송 할아버지는 1990년대 초에 태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다 당시 통일원과 안기부를 통해 평양에가서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을 만났는데, 이번에 20여년 만에 다시 북측 가족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북 하고 5년이 지난 1997년 7월에 갑자기 체포당해 간첩 혐의로 취조를 받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하다 98년 8‧15 특사때 사면을 받았다. 송 할아버지는 "북쪽 가족들의 신청으로 다시 20여년 만에 형제들을 만나는 것은 다시 삶을 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총을 든 경제학자'로 불리는 안병렬의 딸인 안세민(80) 할머니도 이번에 남측 가족을 만난다.

    안병렬은 일본 북해도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해방 후 1946년까지 경성경제전문학교(서울대 상대) 교수로 재직하다 부인, 아이 셋과 함께 월북했고, 1951년 빨치산 활동을 하다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북자 가정이라 신청을 못했었는데…"

    북측 유재숙(79) 할머니는 이번에 남측의 사촌과 5촌, 6촌 등을 만난다. 직계가족은 한명도 없는데, 알고보니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어쩔 수 없이 북한군에 협조한 이후 빨갱이로 몰릴까봐 부인과 딸을 데리고 북으로 올라갔고, 남아 있던 아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사촌들은 "월북자 가정이라 그동안 이산가족 신청을 못했다”며 “유재숙씨 아버지가 대종손인데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 게 안타깝지만 대신 살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기뻐했다.

    "형님을 기다리며 계속 속초에 살고 있어요"

    북측 형(장운봉‧84)을 만나는 장구봉(82) 할아버지는 형과 헤어졌던 고향인 속초에서 계속 살고 있다. 어머니가 "혹시 운봉(형님)이가 찾아오면 어떡하냐"고 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사를 일부러 가지 않았고 계속 눌러 앉게 됐다"는 것. 장 할아버지는 "며칠을 잠을 못잤다"며 "70년이 넘도록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착잡하다“고 말했다.

    "오빠 발등에 흉터 확인해볼래요"

    한춘자(79) 할머니가 이번에 만나는 북측 오빠(한석구‧84)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양말 20켤레다. 왜 하필 양말일까. 한 할머니의 가족들은 전쟁 당시 서울 창신동에 살았는데 인민군이 갑자기 들이닥쳐 밥을 먹고 있던 오빠를 끌고 갔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는 큰 오빠에게 아침밥도 못먹이고, 맨발로 나가게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됐고, 그래서 양말을 선물로 준비하게 됐다는 것.

    한 할머니는 "오빠가 철공소에서 일하다 발등에 아주 큰 상처가 났는데, 아마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을 것 같다"며 "확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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