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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뒷돈 파문' KBO 아픈 역사의 필연적 산물



야구

    '넥센 뒷돈 파문' KBO 아픈 역사의 필연적 산물

    2008년 3월 24일 프로야구 제8구단 우리 히어로즈의 창단식에서 이광환 감독 이하 70여 명의 선수단이 모인 가운데 박노준 단장이 구단 기를 흔들고 있다. 당시 히어로즈는 우리담배의 후원을 받았다.(윤창원 기자)

     

    '국민 스포츠'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 지난해 세운 역대 최다 관중 840만여 명을 넘어 올해 879만 명 신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넥센 히어로즈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장석 전 구단대표의 횡령, 배임과 조상우, 박동원의 성폭행 혐의, 폭행 징계를 받은 안우진의 복귀, 여기에 지난 수년 동안 트레이드들에 뒷돈이 끼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또 다른 의혹들이 커지면서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넥센의 트레이드 뒷돈 거래 의혹들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특조위는 법률, 금융, 수사, 회계 등 전문가들로 구성돼 넥센 구단의 트레이드와 관련된 서류 등에 야구규약에 위배되는 허위 금전 거래가 없었는지 집중 점검한다.

    화살은 넥센 구단에 집중되고 있다. 선수들을 팔아 운영비를 충당했다는 비난이다. 겉으로는 현금이 포함되지 않은 트레이드로 포장했지만 뒷돈이 오갔고, 결과적으로 팬들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NC와 kt 등 넥센에 현금을 줬던 구단들은 "넥센이 요구했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 뒷돈 파문이 온전히 넥센만의 책임일까. 이는 KBO는 물론 10개 구단까지 책임을 져야 할 리그 전체의 문제다.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히어로즈 구단과 리그 체제 유지를 위해 이를 어느 정도 눈감아줬던 KBO, 전력 보강을 위해 곶감 빼먹듯 넥센 선수들을 영입했던 구단들과 그저 바라봤던 다른 구단들까지 모두의 책임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도록 제대로 막지 못한 야구계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난세에 탄생한 KBO의 자식 '히어로즈'

    이번 히어로즈 사태는 구단 수뇌부의 운영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로야구의 아픈 역사에서 비롯됐기에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단순히 개별 사안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사태가 왜 이렇게까지 왔는지에 대한 서사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사실 히어로즈 구단은 탄생부터 일련의 트레이드 파문을 잠재적으로 안고 있었다. 거대 모기업을 둔 다른 구단들과 달리 맨땅에서 일어난 구단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8구단 체제 유지 자체가 흔들거렸던 KBO는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히어로즈 구단을 승인해야 했다.

    KBO 리그는 10여 년 전 8구단 체제에 위기가 왔다. 당시 현대 구단이 모그룹의 경영난으로 해체 위기를 맞은 것. 2006시즌 뒤 KBO가 구단 매각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당시 농협이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농민들의 반발로 철회했고, 조선기업 STX도 관심을 보였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KBO의 130억 원 지원 등으로 현대가 2007시즌을 마친 뒤에는 kt가 창단을 선언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당시 KBO는 신상우 총재 체제였다. 신 총재는 정치인 출신으로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많았다. KBO의 마지막 정치인 수장, 공보다는 과가 많았던 총재로 어떻게 보면 이 역시도 한국 프로야구의 아픈 역사였다. 신 총재는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임에도 각종 인터뷰에서 현대 구단이 마치 인수된 것처럼 앞서나가는 발언으로 대사를 그르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까지 겹쳐 현대 구단을 인수하려는 기업이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2008년 1월 제 8구단 창단 기자회견에서 신상우 당시 KBO 총재(왼쪽)와 이장석 센테니얼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악수를 나누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이런 가운데 2008년 1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 구단을 흡수 창단한다고 발표했다. 농협과 STX, kt 등 대기업과 달리 생소한 인수합병 기업이었다. 구단 운영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많았지만 8구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KBO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업 대표가 바로 이장석 전 히어로즈 대표이사다.

    예상대로 센테니얼은 KBO 가입금 120억 원을 제때 마련하지 못했다. 2008년 2월 가입금의 10%인 12억 원만 냈다. 사상 초유의 가입금 미납 사태였지만 KBO는 결국 히어로즈 구단의 창단을 승인했고, 나머지 가입금 108억 원은 2년 동안 4회에 걸쳐 받기로 했다.

    이 전 대표는 이후 가입금을 구하려고 전방위적으로 뛰었다. 이 전 대표가 지분 분쟁을 벌이게 된 재미동포 사업가 홍성은 레이니어 그룹 회장으로부터 돈을 빌린 것도 이때였다. 홍 회장은 지분 40%를 받는 조건으로 20억 원을 투자했지만 받지 못했다며 이 전 대표를 고소했고, 대법원 판결 끝에 승소했다.

    ▲KBO의 묵인 속에 성사된 대형 트레이드

    가입금과 구단 운영비 등 자금 압박을 받던 히어로즈는 2009년 말 집중적으로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이택근을 LG로 보내며 선수 3명과 25억 원을 받았고, 이현승을 두산으로 보내며 금민철과 10억 원을, 장원삼을 삼성으로 보내며 김상수, 박성훈과 20억 원을 받았다.

    당시 유영구 KBO 총재가 "더 이상 히어로즈에 현금 트레이드는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이듬해 3월에도 마일영을 한화로 보내고 마정길과 3억 원을 받았다. 4건의 트레이드로 무려 60억 원 가까운 돈이 히어로즈에 들어왔다.

    이후 트레이드에도 돈이 끼었다는 의혹이 짙었다. 2010년 각광받던 3루수 황재균과 우완 고원준이 롯데가 갔다. 이들의 트레이드 대상은 각각 김민성, 김수화와 박정준, 이정훈. 당시 KBO는 황재균 트레이드를 이틀 동안 보류하며 돈 거래 정황을 조사했지만 밝혀지지 않아 승인했다. LG로 송신영, 김성현을 보내며 박병호, 심수창을 받은 트레이드에는 15억 원이 끼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트레이드들에 돈이 끼었다는 발표는 없었다. 트레이드는 절대 밑지는 쪽이 없는 게 상식이다. 급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저울이 엇비슷한 선에서 성사된다. 때문에 히어로즈의 트레이드는 뒷말이 많았고, 현금이 얹혀진 거래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황재균은 2009년 18홈런 30도루를 때리며 차세대 3루수로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당시 황재균이 SK와 홈 경기에서 안타를 때린 뒤 홍원기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KBO 관계자는 "황재균의 경우 의혹이 워낙 짙어 이틀 동안 승인을 보류하고 조사했다"면서 "그러나 해당 구단들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통장을 살펴볼 수사권 등이 없는 한계 때문에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 야구인은 "KBO나 다른 구단들도 히어로즈의 트레이드들의 속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리그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눈감아준 부분도 있다"고 귀띔했다.

    물론 현금이 섞인 트레이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KBO 규약에도 이를 막는 조항은 없다. 다만 현금 거래는 없었다고 한 부분이 문제다. 양도·양수의 허위 보고는 명백한 규약 위반이기 때문이다.

    사실 히어로즈 구단의 초창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구단의 존립 위기에 어쩔 수 없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트레이드 성격이 짙었다. 때문에 KBO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승인한 모양새였다. 태생적 한계를 가진 히어로즈를 안고 가야 했던 한국 프로야구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예전 쌍방울 역시 IMF 위기에 선수를 팔아 운영 자금을 충당해야 했다.

    ▲왜 지금도 '비공개 현금 트레이드'를?

    하지만 최근의 히어로즈는 다르다. 그동안 선전을 펼친 선수들과 구단 프런트의 노력으로 연간 100억 원대를 후원하는 넥센 등 안정적인 스폰서를 확보했고, 관중 수입 등 수익성도 호전됐다.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적료가 붙긴 했지만 2016년에는 창단 최초로 흑자 190억 원을 내기도 했다. 연간 400억 원이 넘는 운영 자금에는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히어로즈는 지난해 역시 현금이 낀 트레이드를 했다. kt로부터 5억 원과 정대현, 서의태를 받고 거포 윤석민을 보냈고, 1억원과 김한별을 받고 NC에 강윤구를 보냈다. SK에 김택형을 보내고, 김성민을 받은 것과 김세현, 유재신을 보내고 손동욱, 이승호를 받은 트레이드도 의혹 대상이다.

    윤석민, 강윤구 트레이드에 낀 돈은 그리 크지 않는 액수다. KBO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KBO 관계자는 "이 정도 금액은 이전 사례와 비교해 큰 액수가 아니어서 KBO가 승인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런데 이를 비공개로 한 것은 정말 난해하고, 누가 이득을 봤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이런 트레이드는 구단 수뇌부의 운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는 "투자금을 편취하고, 장기간 다양한 방식으로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피해 회사에 대한 배임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남궁종환 부사장과 함께 정관을 어기고 인센티브 17억 원을 받는 등 80억 원에 이르는 횡령을 했다는 혐의다.

    수십억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피소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이장석 대표가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물론 이 전 대표의 공로도 적잖다. 자금 압박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2013년부터 4년 연속 팀을 가을야구로 이끈 리더십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주축 선수들이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도 강팀의 전력을 유지하도록 유망주들을 길러내는 이 전 대표의 안목은 야구계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빌리 장석'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런 점에서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이 전 대표다.

    하지만 화려한 성과 뒤의 그늘도 너무 짙다. 특히 수십억 원의 회삿돈을 개인 비자금으로 사용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등 사욕을 채운 정황이 드러났다. 홍 회장과 분쟁에서도 패소했지만 끝까지 40%의 지분을 내놓지 않고 버티고 있는 점도 이 전 대표의 욕심이라는 지적이다.

    히어로즈 구단은 한국 프로야구의 위기와 아픔 속에 탄생해 온갖 고충을 겪으며 리그의 어엿한 강호로 거듭났다. 모기업 없이도 훌륭하게 선수단을 운영해온 히어로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KBO 리그 역사에 남을 팀이다.

    그러나 그런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구단 수뇌부, 특히 이 전 대표의 탈법적 행태가 자리잡고 있었다. '빌리 장석'의 성공 신화에는 팬들을 기만했던 탐욕의 사업가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히어로즈를 어느 정도 지켜봤던 KBO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지경까지 이른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이 전 대표에 대해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KBO가 영구제명 등의 징계까지 내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KBO 관계자는 "규약에 따라 검토할 수는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그러나 시즌이 진행 중이고 지분 관계 등 법적으로 얽힌 문제가 많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특조위 조사 방침을 정한 KBO는 시즌 뒤 히어로즈 구단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팠던 프로야구의 역사 속에 나름 보살핌을 받으며 커온 애증의 히어로즈 구단. 환부를 도려내고 새로운 영웅 군단으로 도약할 계기가 마련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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