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례업종에서 보육교사가 제외되면서 정부가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일선 교사들은 이제껏 불법 점심시간 노동을 방치하던 정부가 '뒷북 대응'에 나선다며 싸늘한 반응이다.
◇政, 보육교사 특례업종 제외로 휴게시간 보장 대책에 허둥지둥지난 2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특례업종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제외되면서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에는 비상이 걸렸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이 4시간이면 30분, 8시간이면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이 반드시 주어진다.
예를 들어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낮 12시부터 점심시간을 이용해 쉬기 마련이다.
반면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상황이 다르다. 아이들에게 식사를 나누어주고, 음식을 먹는 과정을 보살피고, 다 먹은 식기를 정리하고, 양치질을 돕고, 도중에 화장실에 가거나 토하는 아이들까지 챙기면 정작 보육교사들은 자신의 끼니조차 제 때 챙기기 어렵다.
하지만 점심시간은 공식적으로 휴게시간으로 무급처리되기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수당도 받지 않고 1시간을 더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
대신 원장 재량으로 휴식 시간을 이동시켜 1시간 일찍 퇴근했는데, 이제는 보육교사들에게도 노동시간 도중에 휴게시간 1시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특례업종은 휴식시간을 재량껏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육교사들이 1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며 "예를 들어 아이들의 등원을 지도하기 위해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한 경우, 점심시간에도 근무하는 점을 고려해 오후 4시 30분이 아닌 3시 30분에 퇴근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일하는 도중에 쉬도록 바뀐 것이 핵심"이라며 "휴게시간을 포함해 9시간씩 일하는 대신 8시간 근무하고 일찍 퇴근하는 방식이 불가능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만약 대부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들의 휴게시간을 보장하면 쉬는 동안 아이들이 방치되기 때문에 보육교사들을 위한 맞춤 대책이 필요하다"며 "현재 우리 부처는 이번 일로 비상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어린이집 (사진=자료사진)
◇"1시간 빠른 퇴근? 별나라 얘기…불법 점심 노동은 관행"하지만 정작 일선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이러한 정부의 '호들갑'이 새삼스러울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7년차 보육교사 김모(30) 씨는 현재 일하는 충남의 한 어린이집에는 4년 넘게 근무했다.
근로계약서에는 낮 12시부터 1시간의 점심시간이 보장됐지만,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점심에 휴식을 갖기는커녕, 휴게시간에 맞춰 일찍 퇴근해 본 적도 없다.
매일 9시간 넘게 일하던 김씨는 결국 2016년 노동청에 신고한 뒤에야 어린이집 원장과 합의 끝에 밀린 수당을 일부 돌려받았다.
김씨는 "매일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6시 30분에 퇴근했고, 4주에 한 번은 당직을 맡아 1시간 더 일했다"며 "단 한 번도 점심시간에 일했다는 이유로 일찍 퇴근한 적도 없고, 수당을 받은 적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9시간 이상 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현재 일하는 어린이집은 물론, 주변의 거의 모든 보육교사들이 점심시간에 불법으로 일하고 있다"며 "도대체 정부 관계자는 어느 교사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나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보육교사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단 한 명도 일찍 퇴근하거나 수당을 받는 경우가 없을 것"고 주장했다.
10년차 어린이집 보육교사인 A(32)씨 역시 불법 점심시간 노동에 시달린 끝에 동료 교사들을 설득해 노동청에 신고해 밀린 임금 4천여만원을 돌려받았다.
A씨는 "틈을 내서 점심을 먹었으니 2, 30분이라도 쉬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일하는 곳에서 벗어나서 마음대로 쉴 수 있어야 휴식시간 아니겠느냐"며 "노동청을 통해 밀린 수당을 받았다는 뜻은 근로감독관이 감독해서 불법으로 점심시간에 일을 시킨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행사나 어린이집 인증 평가를 앞두면 밤을 새워 일할 때에도 교사들과 차 한 잔 마실 휴식시간 10분도 없었다"며 "하물며 점심시간에 쉬지 못했다고 1시간 일찍 퇴근하는 경우는 경험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도 어린이집 불법 장시간 노동 확인…정부 뒷북 대응은 책임 면피실제로 2013년 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보육교사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보육교사들은 평균 9~10시간씩 일하고 있고, 응답자 가운데 90.8%가 점심시간을 휴게시간으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휴게시간과 휴게문화에 대한 질문에서 30.3%는 실제로는 근무하는 점심시간을 어린이집은 휴게시간으로 취급한다고 답했고, 60.7%는 아예 점심시간도 휴게시간도 따로 없다고 답해 전체 응답자의 91.6%가 휴게시간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4년 내놓은 '어린이집 교사의 복지 실태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도 "초등학교와 공립유치원 교사는 점심시간도 근로시간으로 산정해 근무시간 내 휴식시간은 없지만, 다른 직장보다 1시간 일찍 퇴근한다"면서도 "반면 어린이집은 점심시간에도 보육하지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근로기준법 제59조에 따르면 특례업종 지정·제외 여부와 관계없이 8시간을 일하면 반드시 1시간을 쉬어야 하고, 다만 사용자가 휴식시간을 나누어 쓰는 등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동안 보육교사들이 법으로 정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에 수당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은 어린이집의 불법 관행이었을 뿐인데도, 정부는 마치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새로운 이슈가 불거진 양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이번 정부의 뒷북 대응은 그동안 어린이집에서 관행으로 이뤄진 불법 점심시간 노동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반증이자, 그동안의 불법 관행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정부 책임을 면피하려는 태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서진숙 의장은 "마치 정부는 특례업종 시절에는 점심시간에 돈을 받지 않고 일해도 됐던 것이 이번 법 개정으로 바뀌었다는 듯 말하고 있다"며 "노동계가 꾸준히 8시간 근무를 요구했는데 자연스럽게 이를 묻고 새로운 얘기인 양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는 8시간씩 2교대제로 일하되 5시간은 아이들 보육에, 3시간은 행정 등 잡무에 투자해 초과 근무까지 없애는 '8253'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며 "당장 보육교사를 늘릴 수 없다면 적어도 점심시간 불법 노동을 유급화해 수당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