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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가 키우고 정현이 끊은 '평화-평양' 실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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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가 키우고 정현이 끊은 '평화-평양' 실검전쟁

    '평화올림픽' '평양올림픽' 실시간 검색어 다툼에 얽힌 불편한 이야기

    지난 15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설치된 문재인 대통령 생일축하 광고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지난 24일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이른바 '실검전쟁'으로 시끌벅적했다. 이날 새벽부터 실시간 검색어 란에서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이라는 문구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1, 2위를 다툰 이야기다.

    코앞에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각각 '평화' '평양'과 연결지은 실검전쟁은 이날 정오 무렵, 테니스 선수 정현의 호주오픈대회 8강 경기가 무르익고 '정현 경기' '정현 중계' 등의 검색어에 밀리면서 잦아들었다.

    사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이미 누리꾼들의 놀이터처럼 활용된지 오래다. TV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오늘 실시간 검색어에 000를 올리자"고 제안하면 그 단어가 실제로 순위권에 드는 것을 우리는 익히 봐 왔다.

    초반에 특정 집단이 마중물처럼 한 단어를 집중 검색해 순위권에 올리고, 그것을 접한 불특정 다수의 누리꾼들이 호기심에 클릭하면서 그 검색어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쉽다.

    사회학자인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실검이라는 플랫폼이 사회적·법적으로 사람들의 객관적인 의식 동향을 보기로 약속한 공간이라면 거기에 어떤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는 행위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범이 있을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의 도구로서 인터넷을 장난감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실검 플랫폼을 두고 '대중심리의 방향성을 볼 수 있는 공신력 지닌 지표로 삼자'고 약속한 상태가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원재 교수는 "다만, 특정 세력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선동할 목적으로 실시간 검색어를 이용하는 경향이 강화된다면, '내가 혹시 놓친 것이 있나'라며 그 플랫폼을 활용해 온 다수에게는 신뢰를 잃고 자연스레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文대통령 지지자들 이벤트에 '反문재인' 세력이 지핀 맞불

    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평양올림픽' 실시간 검색어 노출 관련 글들(사진=일베 사이트 화면 갈무리)

     

    이번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의 대결이 펼쳐진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실검전쟁이 벌어진 24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65번째 생일이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앞서 23일 SNS를 중심으로 "문 대통령 생일인 24일에 선물로 '평화올림픽'을 실시간 검색어에 올리자"는 취지의 이벤트를 공유했다.

    그런데 이를 접한 '반(反) 문재인 세력'이 맞불을 지폈다. '평화올림픽'에 맞서 '평양올림픽'을 실시간 검색어에 함께 올리며 경쟁을 벌인 것이다.

    실제로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24일 새벽 2시께부터 "네이버 실검 현재 상황…평양올림픽 맹추격 중" "어르신들 잠 오시면 네이버 들어가셔서 평양올림픽 좀 검색해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서 평양올림픽 한 번씩 클릭합시다" "실시간 검색어에 평양올림픽 검색하자. 10:30~10:40 사이 집중검색"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일베 회원은 "네이버 평양올림픽 실검 1위 이렇게 하면 간다"며 "1. 평양올림픽 검색한다. 2. 데이터를 껐다가 켠다. 3. 다시 평양올림픽 검색한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일베 사이트에서는 포털사이트에 노출되는 뉴스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는 법이 담긴 글도 눈에 띄었다.

    또 다른 회원은 '네이버 기사 찬성 반대 누를 때 주의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부 비판 기사는 그것(찬성)만 누르지 말고 '그 기사를 메인으로'라는 란이 있다"며 "댓글 맨 위에 있으니까 이거 한 번씩 클릭해라. 그래야 네이버 메인 화면에 뜬다"고 적었다.

    ◇ "대중의 거리두기…의도치 않은 반작용 돌아볼 필요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단일팀으로 출전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지난 25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훈련장에 도착해 환영식을 갖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꽃다발을 주고있다. (진천=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평화올림픽'에 대응해, 일베 회원들이 '평양올림픽'을 들고 나온 데서는 자유한국당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앞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8일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의 방남을 두고 "우리가 유치한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이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비난했고, 이후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평창올림픽=평양올림픽'이라는 프레임이 강화됐다.

    이에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23일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고, 평양올림픽이라는 낡은 딱지를 붙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평화올림픽', 일베 회원들의 '평양올림픽' 싸움은 이러한 두 진영의 대립에 근거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는 "당내 세력이 약한 홍준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활용했던 '아스팔트 보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며 "(실시간 검색어 순위 다툼에서) '평화올림픽'의 반대말로 '평양올림픽'이 올라왔다는 데는 자유한국당과 메시지를 공유하는 연결지점이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베 사이트에서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목적으로 홍준표 대표 등 자유한국당측의 입장을 전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는 "문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 준비했던 지지자들의 이벤트가 어떠한 반작용을 가져 왔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결국 대중들은 문 대통령 지지자들과 그 반대편이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을 내세워 싸우는 것만 인지할 뿐, 그 이벤트 자체의 메시지 전달 효과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령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50%의 사람들은 양쪽에 대해 동시에 거리 두기를 함으로써 소외되고, 두 진영은 물론 그(실시간 검색어) 플랫폼 자체에 대한 불신도 함께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한국 사회 언론이나 정보 환경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러한 다툼이 더욱 빈번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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