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역 로데오거리의 한 뽑기방에서 학생들이 인형뽑기를 하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인형뽑기를 할 때 갑자기 '필'이 꽂혔고, '하나만 더 뽑자'는 생각에 한 번에 25만 원 썼어요."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역 인근 로데오거리의 한 인형뽑기방. 교복 차림의 김모(18)군은 뚫어져라 '집게발'을 응시하며 목표물을 향해 조심스럽게 운전해 나갔다.
'버튼'을 누르자 크게 벌린 집게발은 인형의 머리와 한쪽 팔을 안간힘을 다해 들어올렸다. '성공인가…' 입가에 미소가 비치는가 싶더니 곧바로 "아~"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인형을 매달고 돌아오던 집게발은 이내 목표물을 떨구고 말았다.
김군의 손은 또 다시 주머니 속으로 향했다.
김군은 두 달 전 뽑기방을 찾아 한달 용돈을 모두 쏟아부었다. 하지만 성과는 인형 단 3개가 전부였다.
김군은 "뽑기방에는 일주일에 1~2차례 오고, 학교 친구들도 뽑기방을 자주 찾는다"며 "보통 한 번 오면 2만원 정도 그냥 쓰는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돈이 나간다"고 말했다.
이날 결국 1만 원을 들여 작은 인형 1개를 뽑았다. 그리고는 인근의 다른 뽑기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일본·미국정품' 호객, 고가 경품 등 현행법 위반… 사행성 조장인형뽑기방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20여 곳에 불과했던 뽑기방은 올해 8월 기준 1천975곳으로 늘었고, 기계수 역시 같은 기간 37개에서 2만200여개로 급증했다.
이처럼 '뽑기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는 데는 이용자, 특히 청소년에게 사행성을 조장하는 영업행위가 만연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는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크레인 게임물'의 일종인 인형뽑기를 '전체이용가'로 분류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수원역 로데오거리의 한 인형뽑기방의 기계 속에 '일본 미국 정품'이라는 호객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실제로 뽑기방은 단순 인형뿐만 아니라 드론, 무선마이크, 동력자동차, 발광등, 카드케이스, 캐릭터 피규어 등 상당히 고가의 경품들도 쉽게 눈에 띈다.
현행법상 사행성 방지를 위해 완구·문구류, 문화상품, 스포츠용품류를 제외한 드론과 같은 고가의 상품을 경품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경품 가격도 5천 원을 넘겨서는 안된다.
더욱이 '일본, 미국 정품', '일본에서 직접 사온 것' 등의 문구들은 이용자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 뽑은 경품 온라인 재판매 '악순환'… "적절한 교육 필요"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뽑기에 투입하는 소액이 쌓여 금전적 피해와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이른바 '뽑기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돈이나 가치가 있는 것을 거는 모든 행위를 도박이라 정의한다"며 "인형뽑기 하나로 파생되는 불건강한, 부적절한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 염려가 되는데, 이것이 곧 '도박장애'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뽑기방의 인기가 '광풍' 수준에 이르자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뽑기 잘 하는 방법' 등 각종 동영상과 경험담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뽑기 능력에 대한 '영웅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으로, 한 번 뽑은 경품을 중고사이트 등을 통해 재판매하며 수익을 올리는 것 역시 '뽑기 중독'의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역 로데오거리의 한 뽑기방에서 사람들이 인형뽑기를 즐기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획득된 인형이 시중에 재유통되고, 판매가 되니 재미를 넘어 중독성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있다"며 "점점 더 금액이, 지출이 높아지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청소년들이) 입시 공부 위주로 비교되는 것 외에는 없으니 각종 게임과 뽑기 같은 우연, 도박 같은 것을 통해 기쁨과 희열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뽑기문화를 무조건 도박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무분별한 뽑기의 병폐를 막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청소년들은 (뽑기에) 몰입되면, 중독까지 갈 수 있는 점을 잘 모를 수 있다"며 "참여자로 하여금 이런 병폐를 알려야 한다.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하고, 지자체별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청소년들 교육시켜야 한다"고 밝혔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