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서기.
중국의 유력한 차기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실각이 중국의 차기 권력 경쟁구도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전통적인 후계 경쟁 구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판에서 차기 권력구도가 짜여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공산당 중앙지도부가 쑨정차이 ‘동지’의 엄중한 기율 위반 문제를 공식 조사하기로 했다”고 24일 쑨 전 서기의 실각을 공식화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철의 기율로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쑨정차이에 대한 조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엄격한 당관리와, 당 기율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충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쑨 전 서기는 49세이던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최연소 정치국 위원에 선출된 후 이번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을 눈 앞에 둔 대표적인 중국의 ‘차세대 주자’였다.
관영매체들은 쑨 전 서기의 낙마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엄격한 당 관리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제19차 당대회를 몇 개월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쑨 전 서기의 제거는 정치적 산물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쑨 전 서기의 낙마로 덩샤오핑(鄧小平)이 확립한 이래 지금까지 관습으로 굳어진 ‘격대지정’(隔代指定)이라는 중국의 권력이양 방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인 덩샤오핑이 장쩌민(江泽民)을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한 뒤 곧바로 후진타오(胡锦涛)를 장쩌민의 후계자로 내정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의 현 지도자는 한 세대를 건너뛰어 다음 세대 지도자를 낙점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현 권력이 차기 주자를 지정해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시 주석이 전임 후진타오의 직계인 리커창(李克强)을 제치고 중국 국가 주석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격대지정 제도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쑨 전 서기의 낙마와 더불어 중국의 차기 권력주자들이 일제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후춘화 광둥성 서기
차세대 주자 가운데 가장 선두주자로 꼽혔던 후춘화(胡春華·54) 광둥성 서기는 여전히 건재한 것 같지만 영향력이 과거와 같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쑨 전 서기와 달리 후진타오 전 주석의 입김으로 화를 면했다는 말도 돌고 있지만 자신과 모든 면에서 흡사한 쑨 전 서기의 몰락은 후 서기에게도 서늘한 경고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36세에 베이징 시장에 올라 주목받던 루하오(陸昊·50) 헤이룽장 성장은 지난해 광부들의 임금 체불 항의 시위에 제대로 대처를 못한 것을 기점으로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느낌이다.
3인방 모두 시 주석과는 정치적 교집합을 갖지 않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차기 주자들이 일제히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쑨 전 서기의 뒤를 이어 충칭시 서기에 발탁된 천민얼(陳敏爾)의 비약은 단연 눈에 띈다.
장쩌민 파로 분류되는 쑨정차이와 후진타오의 지지를 업고 있는 후춘화와 달리 천민얼은 시 주석이 저장성 서기를 지내던 시절 선전부장으로 일했으며 시 주석이 저장일보에 저장일보(浙江日報)에 기고한 칼럼의 초고를 4년간이나 도맡았던 최측근이다.
시 주석이 제19차 당대회에서 구이저우(貴州)성 대표로 나서기로 한 것도 당시 천민얼 구이저우성 서기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 주석의 신임이 두텁다.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차이치(蔡奇·61) 베이징(北京) 당 서기도 만만치 않은 다크호스다.
시 주석은 차이치를 베이징 시장에 앉힌 지 4개월 만인 지난 5월 당 서기로 초고속 승진시켰는데 차이 서기 역시 저장성에서 시 주석과 10년 넘게 함께한 최측근중 하나다.
시 주석이 정적들의 후계자들을 제거하고 차기 후계구도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19차 당대회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1인 집권체제의 완성과 더불어 사실상 장기 집권까지도 노려볼 수 있게 된다.
중국 공산당 전·현직 지도부가 한 자리에 모이는 베이다이허 회의를 앞두고 벌어진 쑨 전 서기의 낙마가 시 주석의 과거 체제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