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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세의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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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세의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기까지

    [노컷 인터뷰] "유명 배우의 꿈? 평생 즐겁게 연기하는 게 꿈"

    배우 오정세. (사진=프레인TPC 제공)

     

    그야말로 배우 오정세의 재발견이다. 영화 '조작된 도시'가 베일을 벗기 전 그를 주목한 이들은 없었지만 개봉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의 연기는 어느 때보다도 섬세했고, 신경질적이었으며 잘 벼리어진 칼처럼 날카로웠다.

    '조작된 도시'의 유일한 악역. 그가 맡은 역할 민천상은 콤플렉스 덩어리 그 자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무기력해 보이는 국선 변호사의 얼굴 뒤에는 광기어린 그림자가 숨겨져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타깃으로 삼는 그의 악독함은 울분을 푸는 잔혹한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

    "민천상이라는 사람이 불편한 사람이었으면 했어요. 제 안의 저장창고에서 악역에 대한 이미지를 꺼내기 시작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곱추이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는데 연기하기가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너무 티나게 곱추인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몸으로 연기를 하다가 허리가 나갔어요. 그렇게 나온 게 오타반점(오타모반·선천성 색소질환)이에요. 아예 전면에 인물의 결핍을 드러내면 어떨까 했어요. 이마가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히틀러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가 민천상 역에 캐스팅된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 민천상의 역할은 단순히 악역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100억이 넘는 제작비에 지창욱이 맡은 주인공 권유 역과 대척점에 서서 영화를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정세는 이를 '쉽게 오지 않았던 역할 중의 하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다른 배우들이 민천상 물망에 올라 있었죠. 저는 다른 역할이었어요. 그런데 무산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박광현 감독님에게 민천상 역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죠. 전 오디션까지도 볼 생각이 있었고, 제가 생각하는 민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독님이 디자인을 해주셨어요. 항상 올라가지는 못할 거고, 안될 때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캐스팅 되는 게 제게는 더 의미있고 보람이 있어요. 쉽게 가는 것보다는요."

    관객들이 보는 것은 두 시간 남짓이지만 배우들은 캐릭터의 옷을 입기까지 자기 자신과 처절한 투쟁을 거친다. 작품에 보이지 않는 캐릭터의 전사를 만들고, 어떻게 몸을 쓸 것인지 고민한다. 오정세는 사소한 눈 깜박임이나 뉘앙스만 흘려야 하는 감정들까지 모두 생각해 스크린에 담아냈다.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저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있었어요. 어딘가 결핍이 있어서 악행에 빠진 인물인데 당연히 외로움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전사'는 배우만 갖고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정서적으로도, 외형적으로도 새로운 걸 찾고 싶었어요. 일본 배우 기타노 다케시의 눈 깜빡임을 보고,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어서 연습도 해봤어요. 그런데 그 분은 사고가 나서 그렇게 되신 거더라고요. 저는 너무 설정 같아서 그냥 살짝 티가 나지 않게 한 장면도 있고요."

    영화 '조작된 도시'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오정세의 민천상이 남긴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감정이 극에 치달은 민천상이 진짜 얼굴을 드러내고 사무실을 뒤엎는 장면이나 권유에게 맞으면서도 악귀처럼 그를 끝까지 협박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여기에도 그가 생각한 포인트가 있었다.

    "사무실 장면은 첫 테이크에서 오케이 사인이 났어요. 전 다시 하고 싶었죠. 지금까지 보지 못한 민천상의 분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다시 하려면 미술 세팅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래도 부탁해서 한 세 번 더 갔던 것 같아요. 환호를 지르는 것도 제가 생각하는 익숙한 환호가 아니라 소리 없이 막 뛰면서 아기처럼 신나하는 모습을 생각했어요."

    지창욱과 액션 연기 도중에 갈비뼈에 금이 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진짜 아픈 감정'을 영화에 녹여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연기를 향한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제가 맞는 장면이었을 거예요. 이미 합은 다 짰고, 권유가 민천상을 감정적으로 밟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건 원래 합을 안 짜고 현장에서 알아서 밟는 건데 제가 가슴을 열다가 밟힌 겁니다. 밟히고 나서 아프더라고요. 참고 하기가 힘든 상황이라 응급실에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어요. 그 뒤에 다시 돌아와서 촬영을 했어요. 작지만 제게는 진짜 감정이니까 뿌듯하고 만족스럽더라고요."

    오정세는 평소 자신의 '저장창고'에 여러 인간 군상들을 저장한다. 단단하고 깊은 연기 내공이 아무데서나 나온 것은 아닌 셈이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얍삽해 보이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눈 밑에 조그만 점이 있어요. 그럼 그 점 때문인 것 같죠. 그런 설정들을 갖고 와서 필요하면 써먹는 겁니다. 신선한 상황이나 인물 그리고 대사가 있으면 저장을 해놓으려고 하죠."

    배우 오정세. (사진=프레인TPC 제공)

     

    그는 신중하게 자신의 연기 인생을 되짚어 본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독립 단편 영화 '8월의 일요일들'부터 배우 오정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남자사용설명서'까지. 무엇 하나 쉽게 얻어낸 것이 없었고, 그래서 더 충족감이 컸다.

    "캐스팅이 어렵게 돼서 더 뿌듯함이 컸던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예전에는 단편 영화를 1년에 열 작품을 했는데, 이제 장편 네 작품에 단편 두 작품을 해요. 그러면 단편 영화 하시는 분들이 오정세 변했다고 하시죠. 사실 변한 게 아니라 상황이 이렇게 된 거거든요. 흥행 성적이나 이런 것에 휘둘리기도 싫고, 그냥 평생 즐겁게 연기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어찌 보면 이게 욕심이 더 많은 걸 수도 있어요."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으로 성공하기 이전, 오정세는 그와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 '돼지의 왕', '사이비' 등에서 모두 그가 목소리를 연기했다. 연상호 감독이 부르지 않는 것이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연상호 감독님이 절 쓰지 않았다고 속상해 하면 저 역시도 서운해야 될 사람이 너무 많고, 서운하게 해야 될 사람이 너무 많죠.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에요. 감독님이 더 잘나가든 아니든 10~20년 안에는 절 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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