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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의 논평] 권력 부나방의 추락과 유신의 종언(終焉)

    • 2017-01-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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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 (사진=이한형 기자)

     

    어제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쏠렸던 국민적 주목이 오늘은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씨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선씨에게 모아지고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20일 오전부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서울 구치소의 두 평 남짓 독방에서 수의를 입고 법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할 의도로 만든 것으로 드러난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받고 있다. 소위 블랙리스트 몸통 혐의다.

    박영수 특검팀은 이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리스트의 존재를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도 위증이라고 판단하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위증)도 적용했다.

    이들 두 사람에 대한 구속여부는 빨라도 20일 밤늦게야 결정될 전망이나 현직 장관 신분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있는 조윤선 씨에 대해 여러 말이 있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판사가 피의자를 심문하도록 1997년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된 후 현직 장관이 피의자 심문을 받은 것은 조윤선 씨가 처음이다.

    조 장관은 그간 "특검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며 블랙리스트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줄곧 부인해왔다. 그러나 이제 특검을 넘어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를 받고 있는데도 장관 신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고위 공직자로서는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문체부 직원들마저 조 장관의 사퇴를 건의했는데도 그냥 버티고 있다.

    '서울대-김앤장 변호사-은행 부행장-한나라당 대변인-국회의원-여성가족부 장관-청와대 정무수석-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그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으로 한 시대의 신데렐라로 주목받았던 그의 추락은 박근혜 정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더욱 주목되는 인물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기춘 씨에 대해선 그를 수식하는 부정적인 여러 형용사가 나돈다. '왕실장', '기춘대원군', '법꾸라지', '철면피', '모릅니다의 대명사' 등.

    김기춘씨는 블랙리스트 몸통 의혹 외에도 최순실씨 국정농단 방조 의혹,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의 사표 종용 의혹, 정윤회 사건 문건 유출과 관련한 검찰수수 무마 의혹에 대해서도 특검의 조사를 받고 있다.

    김기춘 씨는 이번에 구속되고 처벌을 받겠지만 특정사건으로만 단죄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에게는 이와 별도로 역사적 단죄가 내려져야 한다. 그는 박정희 시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50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부끄럽게 만든 숱한 사건마다 그의 이름이 올라 있으며, 역사의 굴곡마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자이다.

    그를 마냥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 속에 그의 범조와 비행(非行)이 여럿 기록돼 있다.

    몇 가지만 살펴 보면, 김기춘씨는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드는 일에 참여함으로 동료들보다 빠른 속도로 승진해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이 된 후 1975년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으로 위장한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했다"고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으나 이들은 36년 만인 2013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위기를 맞았던 노태우 정권 때의 1991년, 동료를 부추켜 분신시켰다는 누명을 강기훈 학생에게 씌우며 정권의 위기에서 탈출했는데 이 프레임을 만든 사람 역시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씨라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적 평가다.

    특히 14대 대통령 선거를 한주 앞둔 1992년 12월 법무부 장관을 막 그만 둔 김기춘씨는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부산 초원복집에서 주요 기관장들과 만나 지역감정을 부추키는 말과 관권동원 등의 불법 선거 운동을 저질렀음에도 도청을 문제 삼아 사건의 본질을 흐리며 무마시킨 인물이다.

    역사는 그를 정말 '평생을 양지로 살아온 사람'이고 '좋은 머리를 나쁜 짓에만 써먹은 사람'이며 '자신의 출세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량한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려도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으로 기록할 것 같다.

    여기에 '그에 대한 단죄(斷罪)로 마침내 유신(維新)체제의 종언(終焉)을 고(告)했다'고 덧붙여질 것 같다.

    이번 사건이 모든 사람들에게 '부나방 처럼 돈과 권력을 쫓는 말로가 어떤 것인지' 또한 '거짓은 참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특히 역사의 법정에서는 '모른다'와 '기억 나지 않는다'가 통하지 않고 그 처벌도 훨씬 엄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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