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년 전 30대 한 원주민 여성의 죽음이 호주 내 인종적 분열을 그대로 노출하는 사례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여성은 참혹한 모습으로 숨졌지만 가해 혐의자인 백인 남성 2명은 그동안 검찰이 특별한 이유 없이 공소를 제기하지 않아 처벌을 피해 왔다.
하지만 가족 등 주변의 끈질긴 호소에 대중의 관심이 더해지면서 가해자 처벌 여부는 검찰 손을 넘어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호주 언론과 AP통신에 따르면 원주민 여성 라이네트 데일리는 어린 말괄량이 시절 남자아이들에게 체력적으로 뒤지지 않았다. 돌을 더 멀리 던지고 나무에도 더 높이 올라가면서 운동선수로 올림픽 무대에 설 것이라는 기대도 받았다.
하지만 라이네트가 10대가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많은 원주민 10대는 가정 폭력이나 술과 마약 등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면서 범죄에 빠져들기 일쑤다. 일부 경찰은 원주민 청소년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기도 한다.
원주민들은 호주 전체 인구 2천400만명 중 약 3%(72만명)를 차지할 뿐이지만 교도소 수감자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10대인 라이네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많이 마셨고, 16살 때 첫 아이를 배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 7명의 아이를 낳았다.
노숙인으로 전락한 라이네트는 33살이던 2011년 1월 집으로 돌아왔다. 술 마시는 일 없이 조용히 며칠을 보내고는 어느 날 전화를 받더니 낚시를 간다며 집을 나섰다.
라이네트는 다음날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북쪽의 한적한 해변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주위 곳곳에 혈흔이 남아 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라이네트는 40대 백인 남성 2명과 함께 그들의 차를 타고 해안으로 왔다. 세 사람 모두 술을 마신 상태였으며 특히 라이네트는 사실상 만취 상태였다.
사인은 성행위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라이네트로서는 술을 많이 마셔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지만, 남성들은 단지 '격렬한 성행위'로 숨졌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두 남성이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해 죽음의 원인이 됐다고 보고, 그해 4월 1명은 과실치사 혐의로, 다른 1명은 종범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약 1년이 지나 피해자를 해치겠다는 의도를 입증할 수 없다며 기소를 포기했다. 과실치사 혐의에 의도와 관련한 증거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검찰이 7명의 아이를 두고 술에 찌들어 사는 원주민 여성을 '완벽한' 피해자로 간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2년이 더 지나 NSW주 검시관은 "혐의를 입증할 만하다"며 그해 2014년 11월 가해 남성 2명을 검찰에 회부했다.
하지만 올해 1월 기소를 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결정이 다시 나왔다. 자세한 설명 없이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라이네트의 가족이 희망을 잃어갈 무렵 언론이 관심을 가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언론들은 라이네트의 비극에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크게 보도하고 나섰고 재조사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수만명이 동참했다. 지역 정치인 사무소 앞에서는 집회도 열렸다.
곳곳에서 압력이 거세자 검찰은 결국 성폭행 혐의를 보태 기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판은 내년 7월 시작될 예정이다.
라이네트의 부모는 검찰이 이 사건을 마지 못해 질질 끄는 이유가 명백하다며 "자신들의 딸은 원주민이고, 의심을 받는 두 남성은 백인이기 때문"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이번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든 정부 등 호주 사회 일부가 원주민의 고통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침묵하려 한다는 점은 매우 뿌리가 깊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