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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인간, 문화와 자존감에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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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인간, 문화와 자존감에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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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슬픈 불멸주의자: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슬픈 불멸주의자: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은 죽음의 공포가 주는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설계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한다.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왜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을 추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자존감에 목숨 걸며 여러 집단에 소속되고 각종 문화 활동에 전념하는 것일까? 캔자스 대학 실험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에서 함께 연구하던 셸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 이 세 학자는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의 퓰리처상 수상작 '죽음의 부정'을 접한 뒤 그들을 사로잡았던 의문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들은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한다는 베커의 주장을 바탕으로 30여 년간 500건이 넘는 연구관찰, 실험을 통해 세계 심리학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 TMT)'을 정립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실험집단에게는 그들이 언젠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통제집단에게는 별다른 언질을 주지 않는 실험을 설계하여 500건이 넘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죽음의 공포'가 소비, 투표, 재판, 자선활동, 애국심 등 인간의 판단과 활동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동기임을 입증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장 고귀한 인간 행동이나 가장 비도덕적인 인간 행동 양쪽 모두의 기저를 이루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통찰이 어떻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진보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_9쪽 '서문' 중에서

    이 책에 따르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도의 자기인식(self-awareness)과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자기 자신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안다.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이것이다. 대뇌 신피질이 확장되고 복잡하게 발달한 덕분에 오직 인간만이 눈앞에 죽음이 닥칠 기미가 전혀 없는데도 죽음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은 이 공포에 대항하여 진시황제와 이집트인, 도교의 신선사상, 연금술사, 현대의 냉동인간처럼 진짜 불멸하는 실제 불멸성(literal immortality)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보편적인 것은 묘비, 명성 등 상징적 불멸성(symbolic immortality)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화는 우리가 어떤 위대한 존재의 일부이며 우리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라는 상징적 불멸성의 희망을 심어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뜻있는 집단에 속하고자 애쓰고 창조적인 예술작품 혹은 과학적 업적, 자기 이름을 딴 건물이나 사람,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과 유전자, 또는 타인의 기억을 통해 세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군사 원정을 다닐 때마다 자신의 영웅담을 기록할 서기를 반드시 대동했다. 21세기는 평범한 사람들도 명성을 추구하고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이다.

    초기 인류는 실존적 절망에 굴복하는 대신 특별하고 초월적이며 영원한 우주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의례, 예술, 신화, 종교가 주는 보호 및 불멸의 감각으로 마음을 무장한 우리 조상들은 수준 높은 정신 능력을 한껏 활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현대 세계를 이끈 신념 체계, 기술, 과학을 발달시켰다.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적 세계관(cultural worldview)', 즉 우리가 현실의 본질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믿음의 체계는 이 세상에서 가치 있게 행동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아울러 불멸성이라는 약속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런 문화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육체와 섹스에 대한 인간의 양면적인 태도이다. 섹스는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는 욕망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문화적 금기의 대상이 된다. 어니스트 베커는 "섹스와 죽음은 쌍둥이"라고 단언했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죽음을 떠올릴 때 섹스의 육체적 측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섹스의 육체적 측면을 숙고할 때 죽음을 쉽게 연상했다(253쪽). 섹스는 배설을 하는 행위처럼 인간이 가장 동물과 흡사하다고 느끼게 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인간은 낭만적 사랑이라는 환상과 온갖 규범들로 섹스의 육체적 측면을 가렸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섹스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학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성은 섹스를 갈망하나 동시에 그 욕구를 자극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처벌한다(259쪽).

    우리는 자신이 속한 문화 안에서 스스로가 꼭 필요한 일원이라고 느껴야 한다. 이것이 '자존감(self-esteem)',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행동, 가치 있는 사회적 역할, 소임을 다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내가 지닌 세계관에 달려 있다. 한마디로 자존감이란 자신이 의미 있는 세계에 기여하고 있는 가치 있는 참여자라는 느낌을 말한다. '나는 소중하다'는 이러한 느낌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극심한 공포를 다스린다.

    저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묘사해 보라고 하거나 죽을 때 육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라는 등의 암시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수백 건의 실험을 진행해 왔다. 죽음을 떠올리는 행위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만, 반대로 이러한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종교인들이 부지런히 포교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문화적 세계관이 수적 우세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신념이 실존적 공포에 대항하는 데 효과가 있으려면 사람들이 그 신념이 맞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의존하는 핵심 믿음 대부분이 사실보다는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명확히 증명될 수 없다. 그래서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그 신념이 옳다고 더 확신하게 된다. 단 한 명만이 성서의 내용을 믿는다면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똑같은 믿음을 수억 명이 공유하면 이는 난공불락의 진실이 된다. 우리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동물 이상의 존재라는 의식은 이러한 난공불락의 진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가까이 느낄 때 이 진실을 입증하려는 욕구는 더 강해진다.

    아마 우리가 겪는 문제, 인간이 겪는 문제의 뿌리는 이것일 것이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인생의 모든 아름다움을 희생하고 우리 자신을 토템, 십자가, 피의 제물, 첨탑, 모스크, 민족, 군대, 깃발, 국가에 가둘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_제임스 볼드윈, '다음 번 화재'

    자신이 믿고 의지해 왔던 문화적 세계관이 흔들리고 자존감이 땅에 떨어진 사람들은 다른 집단을 비하하고 공격하고 말살시킴으로써 실존적 공포에서 벗어나려 한다. 트럼프 열풍, 브렉시트 가결, 테러, 반이민정서, 여성혐오 등 지금은 이러한 분위기가 전 세계에 만연해 있다.

    인류 역사는 전쟁과 학살로 점철되어 왔다. 전쟁 무기가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 인간은 자멸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막스 베버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들은 기존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격변의 시대에 나타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시대는 또 다른 히틀러와 스탈린을 불러낼 것인가?

    이 책에서는 세상과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흑백 논리의 사물 체계인 '절벽(rock)' 세계관과 애매모호함을 수용하고 모든 신념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내포한다고 인정하는 '소용돌이(hard place)' 세계관을 소개한다. 절벽 세계관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악의 세계를 제거하려는 독선적 개혁 운동의 희생자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힌다. 소용돌이 세계관은 연민이 넘치는 세계관이지만 죽음 불안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이 양자 사이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도 타자를 인정하는 관용적인 세계관을 형성해야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실존적 공포를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부자와 명성이 가치 기준이 된 지금의 사회는 대중의 자존감을 한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자존감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개인이 다양한 자기 개념을 갖도록 장려할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은 다양한 사회적 역할과 부합하며, 각각의 정체성에는 나름의 고유 기준이 존재한다. 우리 중 누군가는 다른 직원에 비해 영업 실적은 낮고 골프 실력도 형편없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아버지이자 신실한 교회 신자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 심리적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루크레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축제에 질린 손님처럼 인생을 뜨면 어떤가?" 높은 자존감, 포용적인 세계관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초연함일지 모른다.

    책 속으로

    ‘자존감(self-esteem)’은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문화적 세계관이 제각각이듯 자존감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수단에 사는 딩카 족에서는 뿔이 긴 소떼를 가장 많이 거느린 남자가 가장 높이 추앙받는다. 트로브리안드 제도에서 남자의 가치는 그가 얼마나 많은 얌(뿌리채소의 일종-옮긴이)을 여형제 집 앞에 쌓고 썩도록 내버려두는가에 따라 가늠된다. 캐나다에서는 고무 퍽을 스틱으로 쳐서 상대편 선수가 지키고 있는 골대 안으로 가장 잘 넣는 남자를 국민 영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1장 죽음의 공포 관리하기](25쪽)

    고등학교 1학년인 프란시스코는 점심시간 즈음이면 위가 뚫리는 듯한 배고픔을 느꼈다. 그는 정부의 무료 급식 대상자였다. 하지만 그는 점심시간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쪽을 택했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학교에서 무료 급식 대상 학생들 중 급식을 먹는 비율은 37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료 급식 대상 학생들은 쉽게 다른 학생들과 구분되고 학우들에게 낙인이 찍힌다. 무료급식 대상자들에게 자아상을 지키는 일은 식사보다 더 중요했다. 그들이 굶으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존감의 본질은 무엇인가? [3장 자존감, 굽히지 않는 용기의 토대](68~69쪽)

    때로 자존감 욕구는 성공 욕구를 능가한다. 우리는 실패로 자존감이 상처 입을 경우를 대비해 실패에 대한 변명거리를 미리 준비해놓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한 프레젠테이션은 당연히 망했지. 어제 밤새도록 친구들이랑 놀았거든.’ ‘그 시험에서 D학점을 받은 건 당연해. 수업은 반이나 빼먹었고 독서 과제는 할 생각도 안했으니까.’ 인생을 헤쳐 나가려면 자기 연민과 솔직한 객관성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3장 자존감, 굽히지 않는 용기의 토대](90~91쪽)

    고대와 달리 이제 돈의 힘은 명성뿐만 아니라 존경도 불러올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사람이 원하는 것은 부가 아니라 부자에 대한 존중과 호평이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은 ‘본능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는 데에 필요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손에 넣기 위해 부를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6장 상징적 불멸성](180쪽)

    대중매체들은 섹스로 포화 상태다. 풍자 작가 데이브 배리는 “전파가 있는 어디에든 폭력과 외설물이 있다. 때때로 찾아 헤매야 할 때도 있지만 텔레비전을 켜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섹스에 관해 매우 양면적인 태도를 취한다. 섹스는 흥미진진한 동시에 무시무시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중앙브라질에 사는 메히나쿠 족은 섹스를 즐기고 자주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섹스가 성장을 방해하고 기력을 쇠하게 하며 악령과 치명적인 질병을 불러온다고 믿는다.
    왜 이렇게 즐거운 일에 양면적인 태도를 취할까? 어니스트 베커에 따르면, “섹스는 곧 육체이고 육체는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즉 섹스는 우리가 생물이고 육체적이며 덧없는 존재임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섹스는 우리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어떤 것보다도 확연하게 상기시킨다. 소변과 대변 다음으로 섹스는 인간이 동물에 가장 가까워지는 행위이다. [8장 육체와 영혼의 불편한 동맹](250쪽)

    로버트 제이 리프턴은 죽음을 초월하는 핵심적인 방법 다섯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생물사회적 초월은 자신의 유전자, 역사, 가치, 소유물을 전하거나 무한히 이어지는 혈통 혹은 종족 및 민족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행동을 통해 미래 세대와 연결됨으로써 얻을 수 있다.
    둘째, 신학적 초월은 영혼에 대한 믿음과 실제 불멸성을 수반한다. 또한 생명력과 영적으로 연결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일 수도 있다.
    셋째, 창조적 초월은 혁신과 예술, 과학, 기술 등으로 미래 세대에 기여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
    넷째, 자연적 초월은 모든 생명체, 자연, 심지어 우주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험적 초월은 경외감과 영원함이라는 감각을 수반한다는 특징이 있다. 명상, 다양한 문화 의식, 몰입하는 감각, 사색과 기쁨에 몰두하는 감각을 제공하는 활동을 비롯하여 특정한 약물도 이런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녀와 함께 놀 때나 종교 의례에 참여할 때, 창조 활동에 몰두할 때, 자연 세계에 심취할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다. [11장 죽음과 함께 살아가기](340~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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