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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밤낮 울고불고 살아?”



공연/전시

    “우리는 왜 밤낮 울고불고 살아?”

    [노컷 리뷰] 연극 ‘산허구리’

    연극 '산허구리'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연극 '산허구리'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연극 ‘산허구리’(작 함세덕, 연출 고선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하나를 꼽으라면, 무대 미술과 소품이다.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연극답게 배경과 소품이 1930년대 어촌 마을 한 가정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영화나 드라마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사실주의' 연극은 지루한 부분이 있어, 현대에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향의 문제를 떠나, 당시 실제 사용했을 법한 소품을 세세하게 준비하기가 비용 면에서 부담되는 이유도 있다. “국립극단이니까 가능했다”라고 고선웅 연출이 말했을 정도로, 영세 극단이 사실주의를 하기에는 돈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또 미술이나 소품 담당자를 상당히 고생시킨다. 철저한 고증 때문이다. ‘산허구리’의 배경은 1930년대 바다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삶의 터전이자 처절한 생존의 공간이었던 서해안 어촌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연극이다.

    미술은 한 가족의 비극을 손질되지 않은 초가집을 통해 형상화했다. 소품 담당자는 항아리, 아궁이, 지게, 심지어 손질해야 할 조개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들이지만, 서해안에서 공수해왔다는 조개를 보는 순간 소품 담당자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했다.

    연극 '산허구리'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연극 '산허구리'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배경과 소품은, 가난과 비극 속에서도, 남은 자들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인물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배경과 소품들이 자연스레 유지하는 것이다. 배우의 대사와 연기뿐이라면, '산허구리'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는 그 전달력이 반감됐을 것이다. 그래서 단언컨대, 배경과 소품이 이 연극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석이의 대사가 화룡점정이다. 이 가정은 3년 전까지만 해도 3~4척의 배를 가지고 있을 만큼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선주(아비)가 상어에 한쪽 다리를 잃고, 첫째 아들과 사위까지 잃었다. 특히 가장과도 같았던 첫째 아들 복조의 죽음은 집안의 활기를 뺏어버렸다.

    아비는 매일 술에 찌들어 살고, 아내와 자녀들을 폭행한다. 어미는 죽은 첫째 아들이 돌아올 거라는 바람 속에 반쯤 미쳐 있다. 술에 취해서든, 미쳐서이든 버티며 사는 셈이다. 그나마 집안에서 제정신인 것은 둘째 딸 복실과 둘째 아들과 석이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악재 속에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이들도 위태롭다.

    특히 바닷속에 빠져 시체조차 찾지 못했던 복조의 흔적(?)이 등장하는 순간 가족의 비극은 절정에 다다르고, 이 비극 속에서 석이는 외친다.

    “우리는 왜 밤낮 울고불고 살아. 뜨뜻한 쌀밥 한번 먹은 적 없었지. 왜 그런지를 난 생각해 볼 테야. 긴긴밤 계속해서 조개 잡으며, 긴긴 낮 신작로 오가며 생각해 볼 테야.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을 해 볼 테야.”

    고선웅 연출이 이 대사 때문에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힌 만큼, 극의 핵심이다. 이것은 1930년대 한 어촌 가정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를 바꿔도 달라지지 않는 지금의 이야기이고 내 주변, 우리 모두 이야기이다.

    2년 반이 넘도록 아이들을 물속에서 건지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아버지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하늘로 갔지만, 정작 사과는 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불효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고 백남기 농민의 자녀들.

    1930년대 작품인 '산허구리'의 물음은 2016년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 우리는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할까. 나는 계속 생각해 볼 테야”. 이 질문을 발견한 고선웅 연출은 관객에게 묻고 싶었던 거다. “석이는 질문했지만, 무엇을 하겠다고 답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관객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80여 년 전 질문에서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선웅 연출이 이 연극 작업을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킥킥거릴 이야기지만, 나는 그 눈물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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