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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평론가, 세월호 이후의 한국문학 진단



책/학술

    김형중 평론가, 세월호 이후의 한국문학 진단

    비평집 '후르비네크의 혀'

     

    재앙이 일상화되어가는 재난 자본주의 시대에 문학은 항상 사건 앞에서 재현 불가능성과 마주치게 되고, 그때마다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럴 때 “대통령과 5분간 통화했으나 이후로 헤아릴 수 없는 긴 고통”을 겪고 있는 문종택 씨의 (마치 재현 불가능한 것의 기호나 되는 것처럼 괄호 쳐진) ‘울음’을 기록하고, 사라진 지성이의 얼굴에 표정을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금의 사건을 기억해내는 언어를 고안하는 것, 그것이 문학에 주어진 몫일 것이다.(「문학과 증언―세월호 이후의 한국 문학」, pp. 117~18)

    지난 세월호 사건에 대한 글에서 김형중은 ‘르포’라는 형식에 주목한다. 문학적 ‘기록술’에 해당하는 르포ㆍ논픽션과 문학적 ‘기억술’에 해당하는 시와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들 간의 겸업 혹은 협업을 통해 국가적 트라우마를 기록해나가야 함을 지적한다. 사건에 관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공백의 영역을 ‘기억’해낼 수 있는 형식으로 구현해내는 것만이 살아남은 자들, 그리고 문학을 다루는 자들에게 남겨진 풀어야만 할 숙제가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비평집 '후르비네크의 혀'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비평집에서 5·18과 세월호라는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와 그에 따르는 문학의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비평을 수행했다.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5·18을 자신의 실존과 떼어낼 수 없는 그가 오월문학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나간 고통의 흔적에 대한 시선을 담대하게 담아냈다.

    '후르비네크Hurbinek'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한 소년의 이름이다. 후르비네크는 국적이 없는 언어로, 비명인 것도 같고 신음인 것도 같은, 말하자면 비언어로 이야기하는 아이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채 말이 되지 못한 증언의 자리, 그 공백(空白),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해주고야 마는 상황에 김형중은 주목한다. 아무 말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다 말한 것이나 다름 없는 후르비네크의 말, 그의 혀. 저자는 트라우마 앞에서 한국 문학이 어떠한 형식을 획득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근래에 씌어진 소설들을 중심으로 논한다. 나아가 주목 받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분석하며 한국 문학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점검해본다.

    「총과 노래 1」 「총과 노래 2」에서 김형중은 5·18을 직접 겪지 않았으나, 그 그늘 아래서 자라온 이들을 광주 2세대로 칭하고 이른바 ‘2세대가 5·18 문학 속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대해 논한다. 먼저 「총과 노래 1」은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와 손홍규의 <테러리스트> 연작소설을 논의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김형중은 손홍규가 <테러리스트> 연작을 발표하던 200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1980년 5월을 다루는 소설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음을 언급한다. 간단히 말해 5·18 2세대는 학살자를 공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처단하는 ‘사적 복수’를 꿈꾸기 시작한다. 즉, 법 대신 총을 들고 맞서는 등장인물들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적 복수는 실패로 끝이 난다. 기세등등하게 총을 들고 나섰지만 무의식중에 총을 거두고야 마는 서사를 김형중은 ‘실패한 복수담’이라 칭한다.

    오히려 김형중은 「총과 노래 2」에서 최윤, 공선옥, 한강의 소설을 통해 트라우마를 다루는 문학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그에 따르면 직접적인 처벌의 수행으로 복수의 쾌감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백으로 남은 증언의 영역을 ‘노래’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기억을 노래라는 ‘형식’으로 쏟아내는 세 작가의 작품을 빌려 증언되지 못한 말들이 증언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서사가 아니라 더욱 다양한 형식이 복수의 유일한 방법이자 문학의 역할이 될 것임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2부 ‘다시 쓰는 후일담’에서는 최인훈, 이청준, 최인호, 황석영, 범대순, 김원일 등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온 이들의 작품을 다시 점검한다. 오랜 시간 동안 작품을 써온 작가들인 만큼 과거에 그들의 작품이 지녔던 유의미한 지점들을 논하고, 현재에 와서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2부 마지막에 실린 글 「20년 뒤에 쓰는 후일담」은 1980년 중후반의 한국 문학에 대한 분석을 수행함과 동시에 1990년대 초반 완전히 달라진 한국 문학의 헤게모니를 되짚고,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거친 지금, 낙관을 허락지 않는 작금의 문학장의 현실에 대해 논한다. 독자 수는 줄고, 걸작은 나오지 않는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20년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김형중은 한국 문학의 전망과 돌파구를 한 줄로 정리하는 대신 이어지는 3부를 활발히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문들로 채움으로써, 한국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한다. 3부의 제목이 ‘징후’인 것은 새로운 작품들이 증명해 보일 어쩌면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기미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10년 만에 문단에 돌아온 작가 백민석의 『혀끝의 남자』를 시작으로 김형중은 박솔뫼, 김사과, 황정은, 김솔, 김엄지, 최은미, 이은선의 작품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신만의 개성을 확보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재료로 삼아 한국 문학이 현재 그려내고 있는 지평의 깊이와 넓이를 정확히 짚어냄으로써 2000년대와는 또다시 구분되는 2010년대 한국 문학을 분석한다.

    유머도 판타지도 없이 그들은 이제 이 지옥적인 세계에 오로지 분노와 원한과 문장 이전의 문장들로 맞설 작정인 모양이다. [……]
    여기 아직 분노자본이 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2010년대 한국 소설에서 승화시키기 힘들 만큼 강력하고 새로운 어떤 것이 분명히 발생하고 있다.(「‘탈승화’ 혹은 원한의 글쓰기」, p. 305) {RELNEWS:right}

    김형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75쪽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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