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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행진하는 바보같은 예술을 위하여



공연/전시

    그래도 행진하는 바보같은 예술을 위하여

    • 2016-09-23 10:43

    [노컷 리뷰] 몽씨어터, '바보들의 행진'

    검열에 저항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페스티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 중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5개월간 매주 1편씩, 총 20편의 연극이 무대에 오릅니다. CBS노컷뉴스는 연극을 관람한 시민들의 리뷰를 통해, 좁게는 정부의 연극 '검열'부터, 넓게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뿌리박힌 모든 '검열'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리뷰 순서="">
    1. 우리 시대의 연극 저널리즘 /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2. 포르노 시대 한가운데에 선 나를 보다 / '그러므로 포르노 2016'
    3. 그들이 ‘안티고네’를 선택한 이유 / '안티고네 2016'
    4. 주장이 구호가 안 되게 서사의 깊이 보장해야 / '해야 된다'
    5. 2016년 우리는 <김일성 만세="">를 볼 수 있는가 / '자유가우리를의심케하리라'
    6. 불신, 이래도 안 하실 겁니까? / '불신의 힘'
    7. 그는 검열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겠지 / '15분'
    8.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 '광장의 왕'
    9.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 '이반 검열'
    10. “내 정보는 이미 팔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 '삐끼ing', '금지된 장난'
    11. ‘안정’이라는 질병에 대한 처방전 / '흔들리기'
    12. '우리' 안에 갇힌 '우리' … 개·돼지 같구나 / '검은 열차'
    13.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 '그때 그 사람'
    14. 극(極)과 극(劇) / '괴벨스 극장'
    15. 그래도 행진하는 바보같은 예술을 위하여 / '바보들의 행진'
    (계속)

    라디오 드라마 '바보들의 행진'. (제공 사진)

     

    연극을 보러 들어갔는데 무대 정중앙에 마이크 세 개가 세워져 있었다. 순간 음악 공연장에 잘못 들어왔나 싶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추석 특집 라디오 드라마 '바보들의 행진'" 이라는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극단 몽씨어터는 연우소극장에서 '바보들의 행진' 이라는 이름의 '라디오 드라마'를 무대에 올렸다. 배우들의 연기를 코 앞에서 들으면서 장면을 상상하는 게 색달랐다. 여러 음향효과를 듣고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연극의 형식처럼 내용 또한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러나, 그 유쾌함 속에 '검열에 저항하는 바보같은 청춘'이라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었다.

    연극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가 배경이다. 당시 음악, 영화, 문학 등을 창작하던 작가들은 정부의 검열 하에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불가능했다. 연극은 그 때 벌어졌던 검열을 재연하며 오늘날의 검열을 묻는다.

    라디오 드라마 '바보들의 행진'. (제공 사진)

     

    주인공 한 감독은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한국에 온 재원이다. 모국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검열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검열을 하는 사람은 문화공보부 영화과 장 과장. 그는 '인간 절단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장면은 다 잘라낸다. 그만큼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인물이다. 선천적 소아마비를 가진 아들이 왼손을 쓸 때마다 "이 나라에서 왼쪽은 금지야!"라며 엄포를 놓을만큼 당시 정권에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만드는 한 감독은 자유로운 개인인데 그 영화를 검열하고 상영 여부를 결정하는 장 과장은 국가 권력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연극은 자유로운 개인의 예술 활동을 국가 권력이 제한하는 행태를 유쾌하게 풍자한다.

    연극 중반을 넘어서면, 국가 권력을 대신해 서슬퍼런 '삭제'의 날을 휘두르던 장 과장이 회심을 하게 된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한 감독과 술을 마신 이후부터다. 한 감독은 장 과장의 정체를 모른 채 그와 술을 마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유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 노예입니다." 여기서 장 과장은 거울을 보게 된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정부의 노예였던 자신의 처지를 들여다본다. 이후 '인간 절단기' 장 과장은 거의 사라진다. '빨갱이' 누명을 쓴 한 감독의 누명을 풀어주고 검열 전 원본 필름을 구해주기 위해 애를 쓴다.

    라디오 드라마 '바보들의 행진'. (제공 사진)

     

    장 과장의 이런 모습은 남산 중앙 정보부의 권 실장과 대조된다. 이 대조는 당시 정부의 '억지 검열'을 더 부각시킨다. 권 실장은 영화 검열과 '빨갱이' 검거에 적극적으로 앞서지만, 모두 억지 투성이다. 한 감독을 '빨갱이'라며 잡아들인 이유는 미국 친구들과 통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외국에 정보통을 두고 몰래 소식을 주고받은 것 아니냐는 거다. 한 감독은 "내 친구는 스티븐 스필버그다"고 항변하지만 권 실장에게는 소용 없는 소리다.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한 감독이 UCLA 출신이라고 얘기하자 권 실장은 "우크라이나 대학을 다녔으니 빨갱이"라며 다시 한 번 무식의 극치를 보여준다. 연극은 당시 정부의 억지 검열과 끼워맞추기식 사상검증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짓'이다. 미국에서 천재 소리를 듣고도 굳이 모국으로 건너와 '빨갱이' 누명까지 뒤집어 쓰며 영화를 만드는 한 감독도 바보다. 그는 "여기 모두 다 바보 만드는 곳이야!"라며 절규한다. 그러나 바보 한 감독은 행진한다. "더 바보처럼, 더 미련하게"를 외치며 끝까지 검열에 저항한다.

    라디오 드라마 '바보들의 행진'. (제공 사진)

     

    연극은 묻는다. 누가 진짜 '바보'인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예술인들의 머리채를 잡으며 국가 권력을 부리는 사람이 바보인지, 말도 안 되는 대 검열의 시대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예술인이 바보인지. 연극은 답한다. 회심한 장 과장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은유적으로 대답한다. "뭐 이런 더러운 날도 있는 거죠.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뭐 이런 더러운 날'이 꽤 오래 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검열이 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더러운 날'에 '바보'같은 연극인들은 지난 6월부터 연극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를 열었다. 5개월 간 스무 개의 공연이 진행되는 검열 비판 연극제다. 연극 '바보들의 행진'은 이 중 한 작품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 검열 사태를 오늘날로 소환한다. 5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은 검열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는 일은 자주 있어도, 과거를 은유해 오늘날을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참혹스러운가. 이 참혹스러운 검열의 시대에 '바보'같은 예술인들은 오늘도 행진한다. 그렇기에, '이런 더러운 날'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하민지 / 한양대 일반대학원 영화이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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