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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보다



책/학술

    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보다

    신간 '불편한 회고:외교사료로 보는 한일관계 70년

     

    “대한민국은 1948년 탄생 이래 단 한 차례도 일본에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도, 그 불법성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해방’은 어디까지나 국내용 구호에 불과했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해방’의 논리를 부인함으로써 미일이 주도하는 ‘전후’ 체제에 편승해왔다. 시라이의 ‘영속 패전’ 개념을 원용한다면 한국은 해방은커녕 ‘영속 식민’(永續植民)의 모순 구조 속에 스스로를 가둬왔다.” ― 본문에서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지난달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두고 연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로써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과거사를 지우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1965년의 이른바 ‘청구권 협정’에서도 한일 정부는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모든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향후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반성이 필요한 국가는 일본만이 아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지만, 이런 일본을 묵인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한국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신간 '불편한 회고: 외교사료로 보는 한일관계 70년'은 일본만큼이나 안이한 한국 측의 역사 인식을 질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전후 한일 양국은 미국과 더불어 일제 식민지배라는 과거사를 봉인하고 한일관계 자체를 왜곡하는 데 사실상 협력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공범’(共犯) 관계였다. 이 책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이동준 교수가 해방 70년을 맞은 2015년 1월부터 8월까지한국일보에「광복 70년·한일수교 50년의 재인식」이라는 제목으로 27회에 걸쳐 연재한 기사를 다시 엮은 것이다. 보다 객관적인 접근을 위해 양국의 외교사료 등 공문서에 입각해 해방 후 한일관계 70년을 조망했는데, 책에는 기사에서는 거의 밝히지 못한 출처까지 제시했다. 특히 그는 1200쪽에 달하는 일본판 ‘한일회담 백서’『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도서출판 삼인, 2015년)을 편역했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의 사료를 다루는 데 능통하다. 이 책에도 여기에 실린 외교문서를 적극 활용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온전하지 않았다. 지금껏 일본은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고,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또한 거부해왔다. 이상한 일은 1951년 이후의 대일 협상에서 한국 정부마저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을 일본에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는 사실이다. 왜 한국 정부는 일제 식민지배가 ‘처음부터’ 무효라고 주장하면서도 무효에 따른 피해 보상은 요구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패전 후 도래한 냉전의 영향으로 미국이 일본에 대해 배상보다는 전후 복구를 우선시한 점을 제일 먼저 지적한다. 미국은 냉전의 논리와 경제의 논리, 그리고 무엇보다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입각해 전후 한일관계를 재편성하고자 했다. 여기에 식민지배에서 연유하는 과거사 문제가 끼어들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은 한국의 독립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종주국’ 일본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라는 시각을 견지했다. ‘분리’된 한국에 대해 ‘전후’ 일본이 배상하거나 사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한국의 권력자들 또한 국민 개개인에 대한 피해 보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국 측은 징용노동자의 미수금 문제를 대신 책임지겠다며 일본 측에 ‘목돈’을 요구했다. 그 대가가 바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로 상징되는 이른바 ‘청구권 자금’이다. 결국 한일 청구권 협상은 구체적인 내용은 무시한 총액 논쟁과 정치 담판으로 귀결되고 만다. ‘청구권’을 두고도 한국 측은 그 돈이 “일본이 식민지배의 책임을 인정한다의 의미에서 준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일본 측은 “한국의 독립 축하와 경제협력의 차원에서” 준 돈이라고 다르게 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과는 결코 한반도 강점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한일병합은 정당했으나 그 후의 식민통치에 여러 문제가 드러나 미안하다는 수준의 언급이다. 그러면 한국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앞에서도 아무런 반박조차 하지 못한다. 1965년 기본관계조약에 “이미 무효”라는 문구가 들어갔으니 병합조약과 식민지배가 원천적으로 무효화됐다는, 그야말로 한국만의 해석을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해석 차이가 존재하는 한 ‘위안부’ 문제건, 강제징용 문제건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여러 현안은 결코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비정상의 늪’에 빠진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본이 자발적으로 병합조약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인계철선’은 결국 한국 스스로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 왜곡을 운운하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 탓만 하기 전에 한국 정부 스스로 과거를 부정해온 ‘궁색한’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불편한 회고: 외교사료로 보는 한일관계 70년'은 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보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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