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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ㆍ퓰리처상 수상 작가 12인의 미스터리 걸작선



책/학술

    노벨문학상ㆍ퓰리처상 수상 작가 12인의 미스터리 걸작선

    신간 '헤밍웨이 죽이기' …아더 밀러, 버트란트 러셀, 윌리엄 포크너 등

     

    노벨문학상ㆍ퓰리처상 수상 작가 12인의 미스터리 걸작선 '헤밍웨이 죽이기'는 'Masterpieces of Mystery'(1976)를 저본으로 삼았다. 'Masterpieces of Mystery'는 20세기 미스터리의 상징 엘러리 퀸이 직접 엮은 앤솔러지로서 총 21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읽는섬의 신간 '헤밍웨이 죽이기'에는 그중 아서 밀러의 「도둑이 필요해It Takes a Thief」 등 국내 미번역 작품을 포함,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가와 작품 12편을 재엄선해 구성함으로써 그 가치를 더했다.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이름을 떨친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 철학ㆍ과학ㆍ사회학ㆍ교육ㆍ정치ㆍ예술 등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20세기 대표 지성인 버트런드 러셀, 헤밍웨이와 함께 ‘미국 문학의 거인’으로 불리며 노벨문학상과 2회에 걸친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리엄 포크너 등 문학적 영광을 거머쥔 순문학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수상작이나 대표작이 아닌 숨은 단편을 쉽게 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에, 한층 대중적임에도 대중적이지 않았던 작품들을 선별해 ‘미스터리 단편소설집’ '헤밍웨이 죽이기'를 출간했다.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그리고 조금씩 발전한다. ‘장르문학’이나 ‘웹소설’ 시장이 확대되면서, 일부 순문학 작가들의 달라진 행보를 볼 수 있다. 장르문학과 밀접한 전자책 스토리텔링 청강을 하며 독자들과의 접점을 좁히려 한다. ‘장르문학’에 대한 사회 인식도 ‘대중과의 소통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문학’으로 변화하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역사는 이미 20세기에도 발을 떼고 있었다. 여기 순문학으로 세계적 권위의 노벨상이나 퓰리처상까지 받은 작가들임에도 장르소설의 문을 두드린 12인의 작가들이 있다. 이들의 미스터리는 어떤 모습일까.

    12人 12色의 미스터리 향연
    러디어드 키플링의 「인도 마을의 황혼」에서는 유능한 청년 임레이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다. 문제의 방갈로에서 두 친구가 동거를 하게 되면서 비밀이 드러나는데……. 아서 밀러의 「도둑이 필요해」의 거금을 도둑맞은 셸턴 부부. 잃어버린 돈을 되찾을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부부의 모습이 한 편의 연극처럼 펼쳐진다. 윌리엄 포크너의 「설탕 한 스푼」은 한 인간이 가면 뒤에 숨겨 왔던 삶이 무의식 속에서 탄로 나며 인간의 본성을 고찰해보게 한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버드나무 길」은 너무나 완벽했던 1인 2역의 결과가 불러온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준다. 맥킨레이 캔터의 「헤밍웨이 죽이기」는 흉악범과 경찰들과의 쫓고 쫓기는 집요한 과정을 묘사한 갱스터 누아르다. 수전 글래스펠의 「여성 배심원단」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은 여인을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논하는 여성 특유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T. S. 스트리블링의 「한낮의 대소동」 범죄심리학자 포지올리 교수가 그만의 독서법으로 어느 사건을 해결하는데……. 버트런드 러셀의 「미스 X의 시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격식을 차린 듯한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탐험을 통한 서사가 그려진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낚시하는 고양이 레스토랑」은 파리의 고요한 어느 레스토랑 주인의 시선과 기억, 기행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제임스 굴드 커즌스의 「기밀 고객」은 ‘초’단편이지만 단숨에 읽어 내려가다가, 한순간 웃음이 터지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마크 코널리의 「사인 심문」은 난쟁이 배우들의 죽음을 둘러싸고 심문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티븐 빈센트 베네의 「아마추어 범죄 애호가」에서는 대저택의 파티에 각계 인사가 모인 가운데 벌어진 살인 사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범인이 얼굴을 드러낸다.

    12편의 단편은 때로 등장인물 사이에서 시선을 옮겨가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게 되다가, 예상치 못한 ‘깨알 반전’에 웃음을 내뱉기도 하고, 때로는 기묘하게 불안한 분위기에 젖어 한 편씩 정복하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아울러 100년 전의 시대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만이 '헤밍웨이 죽이기'에서 줄 수 있는 커다란 덤이다.

    책 속으로

    폭풍이 연신 몰아치면서 지붕 너머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다 점차 잦아들었다. 헛간 문에 집어던진 달걀 얼룩처럼 하늘을 쪼개는 번개가 노란색 대신 옅은 푸른색으로 빛났다. 내 방 창문의 줄줄이 갈라진 대나무 블라인드 너머로 커다란 개가 잠들지 않고 베란다에서 등줄기의 털을 바짝 곤두세우고 현수교의 강철 로프처럼 단단하게 다리로 닻을 내린 듯이 버티고 선 모습이 보였다. 천둥소리가 아주 잠시 멈춘 사이 잠을 청해봤지만, 어디선가 나를 아주 다급하게 찾는 기척이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려 애쓰지만 쉰 속삭임에 그치는 식이었다. 이윽고 천둥이 멎고, 티전스가 정원으로 달려가 낮게 걸린 달을 향해 울부짖었다. 누군가 내 방 문을 열려고 시도하다 집을 가로질러 베란다로 가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고, 막 잠이 들려던 순간 머리 위 근처나 문 바깥에서 거칠게 쾅쾅거리며 떠들썩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
    나는 침실로 돌아가서 아침까지 잤지만, 밤새 누군가의 호소를 부당하게 무시하는 내용의 온갖 꿈에 시달렸다. 그 누군가가 뭘 바라는 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주변을 서성이면서 뭔가를 속삭이고 빗장을 더듬어보다가 어정어정 움직여서 숨어버린 누군가가 내 태만한 자세를 책망했고, 그러다 반쯤 잠에서 깬 채로 정원에서 티전스가 짖는 소리, 빗방울이 잎사귀를 타작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방갈로에서 이틀을 더 보냈다. 스트릭랜드는 매일 나와 유일한 동료 티전스를 남겨두고 8~10시간가량을 사무실로 나가 있었다. 햇빛이 밝게 드리운 동안은 나도 티전스도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황혼이 내리면 우리는 뒤편 베란다로 자리를 옮겨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집에 머무르는 건 우리 둘뿐이었지만, 간섭하고 싶지 않은 정체불명 거주자의 존재감이 여전히 뚜렷하게 느껴졌다. 한 번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방금 누군가가 지나간 것처럼 방 사이의 커튼이 흔들리곤 했다. 사람이 방금 일어난 듯이 대나무 의자가 삐걱댈 때도 있었다. 응접실에 책을 가지러 갈 때면 누군가가 앞쪽 베란다의 어둠 속에서 내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느껴졌다. 티전스는 해가 질 때마다 온몸의 털을 쭈뼛하게 세운 채 어두워진 방을 응시하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황혼에 젖은 시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인도 마을의 황혼」 중에서, 16-17쪽

    “리카르디 살인 사건의 목격자는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차를 몰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경감님.”
    보스 경감은 마치 그 뒤의 창문을 통해 총알이 날아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 듯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자네는 헤밍웨이가 자기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 본인이 주장한 대로 우리 모두를 없앨 때까지 마을에 오래 머물 거라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닉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머리가 좀 식고 나면 상황이 유리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한두 명쯤은 더 처치하려고 시도할 수는 있겠지요.”
    “그자는 미친개입니다. 신문에서는 외로운 늑대라고 부르지만요. 언제나 과격하고 극단적인 살인마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유형의 범죄자가 주로 그렇듯이, 소위 말하는 자기중심적 인간일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마을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남기고 싶어 할 것입니다.”
    보스 경감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리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렵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만약에 자네가 자유재량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겠나? 나는 마을 전체에 사람을 배치했네. 여기저기에서 급습을 감행하고 구석구석까지 경찰을 배치에서 수색하게 했어. 하지만 자네라면 무엇을 하겠나?”
    “외람된 말씀이지만,” 닉이 속삭였다. “저는 다음으로 습격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옆에 붙어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바로 경감님 당신이십니다.”
    「헤밍웨이 죽이기」 중에서, 171-172쪽
    지금부터 이어지는 코디 캔시 부인에 대한 기록은, 그녀가 남편 제임스 캔시의 살해 혐의를 받던 당시의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재판이 진행될 때도 아닌,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 7~8개월 후에 테네시 랜스버그의 머시니 보안관이 죄수를 자치구 교도소에서 내슈빌의 주형무소로 이송하는 작업에 착수한 그 순간에 벌어진 사건이다.
    시간이 그만큼 흐른 탓에, 자연스럽게 헨리 포지올리 교수나 지금 펜을 든 나에게는 지문이나 총흔 내지는 정신학적 분석 등 보통 많은 범죄 사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단서를 밝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머시니 보안관이 죄수를 데리고 마을을 벗어나기 고작 몇 분 전에 우연히 차를 몰고 랜스버그에 도착한 것이 우리의 불운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는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 둘은 그저 법원 광장의 모나크 카페에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갔고, 카운터의 자리가 비기까지 몇 분간 기다렸다. 마침내 두 남자가 자리를 떴다. 포지올리는 의자에 앉으면서 종이냅킨 통과 케첩 병 사이에 끼워진 오래된 지역 신문 한 부를 발견했다. 그는 신문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거의 순간적으로 신문 기사 내용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분명 살인 이야기이겠거니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그것만 읽었기 때문이다.
    「한낮의 대소동」 중에서, 233-234쪽

    “스칼렛 씨는 취미가 어떻게 되시나요?”
    컬버린 부인은 가장 수줍음을 타는 손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부인이 소문난 미소를 얼굴 가득 띠고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귓가에서 길고 달랑거리는 골동품 수정 귀걸이가 작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살인입니다.”
    안경을 쓴 올빼미처럼 지적인 인상에 영국식 야회복 상의를 차려입은 젊은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컬버린은 기쁨에 찬 환성을 가볍게 내뱉었다.
    규칙에 깐깐하게 매달리기로 유명한 집주인과 규칙을 깨부수기로 악명 높은 집주인이 공존하는 시대에, 컬버린 부인은 아무런 규칙도 인지하지 않는 듯한 안주인이라는 독특한 성격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녀가 여름 한 철간 롱아일랜드 별장의 문을 여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일부러 그렇게 만들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각양각색이었다.
    「아마추어 범죄 애호가」 중에서, 359-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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