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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크로우 걸', 가장 사악한 스릴러



책/학술

    소설 '크로우 걸', 가장 사악한 스릴러

    인간의 도덕성과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악을 응시하라

     

    스릴러 소설 '크로우 걸'은 근친상간과 아동 인신매매 등 현대 사회의 가장 어둡고 변태적인 부분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진행된다.

    스톨홀름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어린 소년들이 성기가 잘린 채 끔찍하게 미라화되어 살해된다. 사건을 맡은 ‘엄마’이자 ‘아내’이자 ‘형사 반장’인 예아네테는 남성 중심적인 경찰 내부의 구조에 회의를 느끼면서, 사건을 축소하려는 상사에게 반항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마리도 없이 비슷한 살인이 계속되어 난관을 겪던 중 정신 분석가 소피아 세텔룬드를 알게 된다. 그녀는 심리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 ‘빅토리아 베리만’과 시에라리온에서 소년병으로 강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청년 ‘사무엘’ 같은 심각한 내상을 지닌 환자도 정기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소피아와 예아네테에게 사건에 대해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점점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고, 동시에 소피아는 환자인 빅토리아 베리만이 말하지 않는 과거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욕망도 점점 강해져 간다.

    제3세계에서 신분도, 이름도 없이 ‘수입’되어 팔렸다가 끔찍하게 살해된 이 소년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배후는 무엇일까? 예아네테의 수사망이 점점 좁혀올수록 소피아는 점점 더 빅토리아 베리만의 과거에 빠져들게 되는데…….

    제3세계 출신의 이름 없고 가진 것 없는 소년들이 인신 매매단에 팔려 유럽 곳곳으로 수출된다. 아이를 살 수 있는 돈과, 무엇이든 해도 처벌받지 않을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이 아이들을 구입하여 변태적인 욕망을 분출하고는, 쓸모가 없어지자 추악한 방식으로 살해하여 갖다 버린다. 그 남자들에겐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아내와 딸이 있다. 아내는 육체적 힘과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고, 딸은 아버지의 욕망에 또다른 희생양이 된다.

    사건의 피의자들은 대부분 사회 내에서 승자 혹은 강자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이고, 피해자들은 어리고 나약한 미성년 아이들이다. 무한한 사랑과 애정으로 돌봄을 받으며 자라야 마땅한 어린아이들이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 때, 흔히 찾는 방어 기제가 바로 ‘대리 인격’이다. '크로우 걸'은 심도 깊은 정신 분석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이러한 방어 기제로 인해 태어난 다중 인격자들을 그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중 어떤 누가 다중 인격자이며 누가 범인일까? 이 책은 3권의 마지막 장이 가까워 올 때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으로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책 속으로

    한번은 아빠가 들판으로 달아나는 엄마 뒤를 쫓아가는 걸 벽판 틈으로 보았죠. 엄마는 죽기 살기로 도망쳤지만 아빠가 더 빨랐고 뒷목을 한 방 갈겨 엄말 쓰러뜨렸어요. 나중에 뜰을 지나 돌아올 때 보니 엄마는 한쪽 눈 위에 크게 상처가 났고 아빠는 풀이 죽어서 훌쩍이며 울더군요. 엄마는 아빠한테 미안해했어요. 아빤 거느리고 있는 두 여자를 교육시켜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떠안았으니까 공평하지 못한 운명이었죠. 엄마랑 내가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처먹는 것들만 아니었으면, 말만 잘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1권 68쪽)

    인간의 정신은 불편하다고 여기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빅토리아 베리만은 과거 일들에 대한 기억을 억압하고 그 대신에 다른 기억들을 지어내는 것이다.(1권 75쪽)

    왜 소피아가 죄책감을 느끼는가? 원래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가? 그런데 왜 그녀가 그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이 그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나? 죄책감은 인간이 고안해 낸 것 가운데서도 가장 역겨운 것임에 틀림없다고 소피아는 생각했다.(1권 79쪽)

    불현듯 인생이 맥 빠질 정도로 너무나도 짧고 무의미했던 것처럼 느껴지고, 그녀는 그게 단 한 사람 때문임을 안다. 그녀의 아빠, 벵트 베리만이 인생의 절반을 도둑질해 갔고 나머지 반생은 쳇바퀴 도는 일과에 갇힌 듯 얽매여 안간힘을 쓰도록 만들어 놓았다. 일, 돈, 드높은 야망, 선한 사람 되기, 연애는 건성으로 큰 노력 기울이지 않기. 인간으로서 한껏 바쁘게 살며 기억들이 떠오르지 못하게 단속하기.(2권 111쪽)

    욕구 단계의 맨 꼭대기에 있는 건 자아실현의 욕구인데, 그녀로서는 그 말을 이해조차 할 수 없다. 그녀는 자기가 누군지 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지도 못한다. 그녀에게 자아실현은 까마득히 동떨어진 이야기다. 왜냐하면 그녀의 능력 밖이고 그녀의 자아가 닿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욕구들에 관한 한 아빠는 모든 것을 못 가지게 막았다.(2권 119쪽)

    도시는 무척이나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땅 밑에 그리고 거기 있는 물속에 수천의 인간 시체 찌꺼기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건물들과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오직 죽음뿐이라는 것도 안다.(2권 322쪽)

    소피아는 사랑에 빠지는 건 정신병과 같다고 말했다. 사랑의 대상은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화된 이미지일 뿐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사랑에 빠졌다는 느낌에 도취했을 따름이다.(2권 425쪽)

    그녀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언제까지나 존재하는 번민을 본다. 그들 주위 환경을 색칠해 놓은 그들의 사악한 생각들을 본다.(3권 22쪽)

    그녀는 열일곱 살 때 프로이트를 간파하여 그 이후 사물을 바라볼 때 상징성을 들이대는 짓이나 멋대로 확립한 이론들에 대해 줄곧 회의적이었다. 여자들의 감정과 욕망에 대한 글은 애저녁에 다 내던져 버렸는데 그 이유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남자들이 도출해 낸 가설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의 욕망을 운운하다니, 거들떠보지도 않기로 한 결정을 재고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3권 179쪽)

    진정 모든 것이 시작된 건 언제였을까? 첫 번째 대리 인격을 만들어 낸 게 언제였지? 물론 아주 어릴 때였을 것이다, 해리는 어린아이의 방어책이니까.(3권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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