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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대신 'ASD'…더이상 남의 아이 문제 아니다"



책/학술

    "자폐증 대신 'ASD'…더이상 남의 아이 문제 아니다"

    "복잡다단해지는 사회만큼 영유아 사회성 부족 진단 범위도 넓어져"

    자폐스펙트럼장애(ASD)를 지닌 주인공의 삶을 그린 영화 '네이든'의 한 장면.

     

    Q. 어린이집 원장입니다. 저희 원에 36개월 된 아이가 있는데, 말을 못하고 "아아" "오오"라며 의사를 표현합니다. 함께 있는 다른 아이들이 이를 따라하는데 고민입니다. 제가 볼 때는 자폐인 듯한데 아이 부모께 이를 말씀드리기 힘드네요.

    A.
    해당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했을 때, 언어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라면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네요. 그 아이의 말을 따라한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의 발달이 퇴행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흉내내는 단계를 넘어 놀리거나 따돌릴 수 있으니 적합한 교육이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그 정도로 언어가 없고 협조가 안 되는 아이라면 맞춤형 교육을 하는 게 좋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단계가 필요하니, 임상 전문가와의 협력이 중요하겠죠.

    Q. 일본에서 왔습니다. 제 남편은 한국 사람이고요. 아이가 다섯 살에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섯 살에야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전까지는 제가 일본어로 교육을 했습니다. 진단을 받은 뒤에는 한국어로만 대화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이가 일본어도 하고 싶다고 하는데, 가르쳐도 될지 걱정입니다.

    A. 이중언어는 아이가 관심만 있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들 합니다. 아이가 말이 느릴 경우 (이중언어로 인해) 하나의 언어마저 잊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시는데, 아이가 관심을 갖고 있다면 언어적인 개념이 자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억지로 학원에 보내는 환경이 아니니, 두 언어를 모두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11일 경기 성남시청에서 열린 '2016 영유아 정신건강세미나'가 끝난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가 청중과 나눈 대화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연구팀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영유아의 사회성,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주제로 강연한 유 교수는 "예전에 자폐증이라고 부르던 것이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기능이 전형적으로 발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폐라고 하면 흔히들 아이가 혼자 구석에서 독특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그 범위가 무척 넓기 때문이죠. 요즘에는 자폐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편견도 많은 말이거든요. 그래서 요즘에는 'ASD'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 "포인팅, 즉 관심사에 대한 공유 없다면 ASD 강력한 징후"

    유 교수에 따르면, ASD의 핵심은 아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뇌·행동 발달이 제때 일어나지 않아 발생한다.

    ASD를 지닌 영유아는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잘 쳐다보지 않음 △불러도 대답을 잘 하지 않음 △혼자 놀이에 몰두함 △한 가지 행동이나 놀이를 반복하는 것을 선호 △양육하기 매우 까다롭다고 느껴지거나 △반대로 매우 순한 아이로 보이기도 함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가기 보다는 그 사람이 지닌 옷의 감촉(일례로 스타킹)이나 물건의 특성(반짝이는 불빛의 열쇠고리)에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등의 특징을 보인다.

    유 교수는 이러한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포인팅'을 꼽았다.

    "다른 사람과 공통의 주제를 놓고 관심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맺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대상에 주의를 갖는 겁니다. 그것이 포인팅, 즉 '합동주시'죠. 아이가 창밖의 새를 봤을 때 '선생님도 봤냐'는 의미로 선생님에게 고개를 돌리는 게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저 새에 관심이 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함께 봅시다'라고 제안하는 거죠. 포인팅, 즉 관심사에 대한 공유가 없다는 것은 ASD의 강력한 징후라고 할 수 있어요."

    유 교수는 "ASD에 대한 정의는 해뒀으나 (증상은) 각양각색"이라며 "영재로 보이는 아이인데 사회성이 좋지 않은 경우도 그 하나"라고 전했다.

    "아이의 사회성 중 중요한 것이 자신의 관심사를 타인과 공유하는 겁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갖다 주기도 하고, 관심 있는 것을 가리키는 식이죠. 이것이 관심 공유인데, 12개월쯤 되면 뇌에서 '관심사를 혼자 즐기지 말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관계를 맺으라'는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탑재 돼요. ASD는 이러한 행동이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요구하지만, 함께 즐기기를 잘 못하는 거죠. ASD를 지닌 청소년들에게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것이 '친구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존재'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ASD 진단은 꼬리표 아닌 치료 첫 단추…치료 목표는 아이가 큰 뒤 독립 생활"

    지난 2011년 국내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ASD는 전체 인구의 2.64%로 나타났다. 100명 가운데 2명 정도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2014년 연구에서 68명 중 한명꼴로 진단을 받았다. 이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유 교수는 설명했다.

    "ASD는 소아당뇨 등보다 많아요. ASD 진단을 받는 아이의 가족을 4명이라 하면, 그 아이의 행동을 이해해야 하는 친구·교사까지 20명…. 이렇게 관계되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죠. 1, 2년 만에 완치되는 게 아니라, 그 특성이 오래 가는 만큼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들죠. ASD는 더 이상 드물거나 따로 수용돼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지역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문제가 된 거죠. 사회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면서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의 범위도 넓어졌어요. 그만큼 그 아이들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진단 범위도 넓어진 거죠."

    유 교수는 ASD의 원인으로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지목했다. 결국 "ASD는 선천적인 것으로 양육의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ASD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이야기할 때는 양육을 잘 못했다기보다는, 태내에서의 공해·독성물질 등을 꼽습니다. 유전자가 이러한 것에 취약한 겁니다. 아버지의 나이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자가 노쇠해지면 주변 환경으로부터 안 좋은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죠. 선천적인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영향인 만큼 부모 양육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6~12개월 된 아이를 일 때문에 외할머니에게 맞겼다고 ASD에 노출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전적으로 부모의 유전적 잘못은 또 아니"라는 것이 유 교수의 강조점이다.

    "부모 양쪽이 모두 ASD를 지녔다면 모를까, 유전자의 변이가 원인이니까요. 유전자는 뇌의 조직을 만들고, 그 뇌 조직이 구조화 되면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그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이 환경요인일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유전자 연구를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나중에 치료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ASD는 신경과 신경을 잇는 그물망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고 뇌조직을 만드는데 사회성과 관련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뇌에 영향을 가져오는 겁니다."

    그는 "무엇보다 ASD를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아이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ASD 진단은 아이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치료의 방향을 잡는 첫 단추인 거죠. 치료의 목표는 아이가 커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국내 소아정신과의 문턱이 높은 만큼, 가능하면 지역사회 안에서 ASD 진단을 내리고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드리고자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이 오는 2018년 10월 일선 현장에 보급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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