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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외 1권



책/학술

    [새책]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외 1권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왔다. 수상작 정지돈의 「창백한 말」을 포함해 총 10명(이상우, 김엄지, 양선형, 홍희정, 백수린, 김솔, 정영수, 박민정, 오한기)의 소설 11편이 실렸다.

    수상작 정지돈의 「창백한 말」은 ‘장’이라는 인물을 그의 일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장’의 친구인 ‘나’가 서술자로 등장하여, ‘장’이란 인물을 좇는다. 우리는 우선 ‘장’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장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세기에 살고 있다”는 장의 말처럼 장의 세계는 20세기 초반에 머문다.

    사람들은 장을 시대착오적인 예술지상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20세기 초반에 경도되어 있었고, 혁명에 물들어 있었다. 그는 그때의 사상과 예술, 사람들을 줄줄 읊고 다녔다. 모든 게 가능해 보이던 시절,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세계에 대해. (p. 31)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다시 말해 무엇이든 바꿀 수도 있던 세계가 장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모든 것이 달라진, 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게 망쳐진’ 세계가 곧 21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장은 옛날 책과 영화를 너무 봤고 어느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나’의 진술처럼 20세기 속의 장과 21세기 속의 ‘나’ 그리고 장의 여자친구 미주의 세계가 마치 평행선처럼 그어진다. 이곳에서 ‘나’는 혁명이고 이상이고 뭔지 모르겠지만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 취업을 위해 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아는 인물이다. 나는 ‘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라고 장의 상황 밖으로 물러나기도 하며 ‘장’의 세계를 서술한다. 20세기와 21세기를 오가는 그 경계과 균열의 서사는 혁명이 어려워진 세기의 혁명이란 무엇인지,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게 한다.

    백수린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청춘들의 사랑과 현실을 작가 특유의 낭만주의적 시선으로 그려내며, 소설 「첫사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선배를 짝사랑했던 나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벚나무와 첫눈 등의 물상과 어우러져 가장 극적인 낭만성을 만들어냈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작가가 문학청년의 삶을 뒤로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 선배의 모습을 암시만 할 뿐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선정의 말을 쓴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말을 빌리면 “‘J선배’가 결국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생략하는 것은, 다만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끝내 지키고 싶은 청춘의 영예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박민정의 「버드아이즈 뷰」는 실제로 있었던 특정한 사건이 떠오를 정도로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작품은 솟대문학회라는 고등학교 동아리와 연관된 몇몇 사람들의 사건들로 이뤄졌다. 몰래카메라, 학우들 간의 따돌림, 가족과의 갈등 등의 사건이 중첩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내면을 발견하는 일보다도 현실의 망각된 수치를 지적하는 일에 더 집중”(문학평론가 조연정)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홍희정의 「앓던 모든 것」은 청년 윤오와 일흔셋의 독신 여성 ‘나’ 사이의 이야기다. 둘은 수영장에서 만난 사이이지만, 함께 살게 된다. 보통의 경우 나이 많은 할머니가 손자뻘의 청년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핀다면,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묘하다. “청춘으로 회임한 듯 반지르르 윤이” 나는 눈과 “봉숭아 꽃잎으로 덮어주고 싶은 손” “아담하고 예쁘장한 엉덩이”를 응시하는 나의 시선은 분명 모성애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상기시키는 성적인 관계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일흔셋의 나는 마치 윤오라는 청춘 그 자체를 ‘앓는 것’만 같다.

    김솔의 신작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사업」 역시 작품집에 실렸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파리의 시민이 되기 위한 열다섯 살의 불법이민자 나우팔 첸토프와 그의 동료들의 삶을 다룬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유럽 시민의 인권 장정에 의해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그래서 불법이민자가 나서야 비로소 유럽 시민의 인권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뼈 있는 문장을 시작으로 파리라는 자유의 도시 아래서 벌어지는 불법이민자들의 차별, 무관심으로 얼룩진 일상이 드러난다.

    정지돈 외에도 후장사실주의자(최근 들어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는)로 불리는 작가들의 두 작품이 문지문학상 후보작으로 꼽혔다. 먼저 이상우의 「벨보이의 햄버거에 손대지 마라」를 살펴보자. 작품에는 실직한 벨보이, 기타리스트 첸, 거렁뱅이 켄, 버드맨, 재키, 신문배달부 등 하위 주체들이 (화자는 이들을 “도시의 천사”들이라 부른다) 뒤섞여 질주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문장들이 터뜨리는 거리의 슬픔과 분노가 쏟아진다. 또 다른 작품은 오한기의 「사랑」이다. 자기 자신, 더 나아가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분출되며 시종일관 충격을 던져준다. 작가는 어떠한 연민이나 휴머니즘도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서사에 ‘사랑’이란 역설적인 제목을 붙여 소설이 가진 폭력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김엄지, 양선형 두 작가의 작품도 서로 다른 매력을 드러내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김엄지의 「느시」는 주인공 R과 그의 동료 a, b, c의 일상을 반복, 반복, 반복해서 보여준다. 끝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업무와 무기력한 감각, 건조한 분위기 등이 소설 전체를 장악한다. ‘느시’로 대변되는 새가 줄지어 날아가는 것을 지켜만 볼 뿐 그들은 다시 식판에 같은 반찬을 받고 같은 사람들끼리 밥을 먹고, 같은 사무실로 들어간다. “이 반복되는 일상의 숙명에서 어떻게 인생을 행복하게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에 독자들은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문학평론가 우찬제)
    양선형의 「표범의 사용」은 “비옥하고, 후덥지근하며, 괴이한” 식물들이 빽빽하게 자란 유리온실이 배경이다. 그 안에서 한결같이 일지를 작성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환각을 보는데, 온실이라는 축축한 공간에 그의 환각이 더해져 밀림같이 낯선 이미지들이 만들어진다. “공백으로서의 그림자”(착각과 환영)가 장악해버린 삶은 쉽사리 조종당하고,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텁텁한 맛을 느끼게 한다.

    정영수의 「애호가들」 속 주인공은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그라나다 같은 곳에서 번역하는 삶을 꿈꾸지만 그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자신보다 학덕이 못하다고 여겼던 후배의 교수 임용, 그런 자신을 비웃는 듯한 제자, 그리고 지지부진한 애인과의 관계 등이 그러하다. “희극적 폭로, 그렇지만 결코 쉽게 웃을 수만도 없는 비속한 현실의 비극성 등등 결코 간단치 않은 서사 담론”(문학평론가 우찬제)을 보여준다.

    책 속으로

    그들은 사빈코프와 세르주에 대해,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한 세기 전의 혁명가들에 대해 길고 긴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나나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제는 사라진 지난 세기의 이상에 대해서. 나는 그들의 대화가 카페 안의 정적을 몰아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스팀의 온기처런 카페 안을 가득 채울 그들의 대화를.(「창백한 말」 p. 40)

    윤오를 처음 본 건 한 달 전이었다. 한창 아쿠아로빅 수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레인 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레인 끝에 선 청년의 몸을 따라 고개를 쭉 뽑았다. 강사가 호루라기를 연달아 부는데도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몸. 인간의 몸이 있었다. 인간의 몸이 직립해 있었다. 간결하고 담백하기 그지없는, 구차함과 번잡함을 죄다 걷어버리고 뼈처럼 서 있는 몸. 한없이 헐벗고 가여웠다. 청년이 스트레칭하듯 두 팔을 뻗었다. 그 모습이 청각을 자극했다. 누군가 끝이 뾰족한 HB연필로 스윽, 하고 올려 그은 선 같았다. 나는 목이 꺾이도록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청년도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이 청춘을 회임한 듯 반지르르 윤이 났다.(「앓던 모든 것」 p. 154)

    “꼭 벚꽃잎 같네.”
    선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선배는 고향에 쌍계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근처 십리길을 따라 죄다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했다.
    “그 벚꽃 길을 같이 걸으면 백년해로를 한다더라.”
    선배가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선배, 선배는 왜 그런 말을 내게 하는 거예요,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엄마에게 쓰다듬어달라고 머리를 들이미는 아이처럼 선배에게 자꾸 묻고만 싶었다.(「첫사랑」 p. 204)

    방심한 육신은 위험에 오히려 강하다, 잡초가 나무보다 강풍을 더 능숙하게 버텨내듯.
    동료와 뚜렷이 구별되는 모계적 특성을 지니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나우팔은 쉽게 파국을 피할 수 있었겠지만, 모든 시공간이 자신 안에 응축되어 있고 자신의 의지가 그것을 작동한다는 생각이 그를 경직시켰다.(「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사업」 p. 234)

    열사 J가 다름 아닌 재혁이라는 걸 알았을 때 솟대 75기, 그의 동기들은 모두 박장대소했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검색해보니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그들은 정색하고 말했다.(「버드아이즈 뷰」 p. 275) 닫기

    정지돈 외 지음/문학과지성사/360쪽/10,000원

     

    한국추리문학대상 수상 작가이자 현직 판사인 도진기의 최신작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재치와 예리함을 겸비한 변호사 고진이 열혈 형사 이유현과 함께 맹활약을 펼친다. 고진은 한 여성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숨 막히는 추리 공방을 펼친다.

    남편 신창순을 따라 건너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낚싯줄로 그를 교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미모의 여성 김명진. 오로지 뒷길에서 의뢰를 받으며 난해한 사건들을 해결해 오던 변호사 고진은, 판사직을 내던진 이래 처음으로 법정에 등장하여 김명진을 대변한다. 증거와 범행 동기에 대한 날선 공방이 한 차례 벌어진 후, 냉혹한 검사 조현철은 검찰로서는 사상 초유의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고진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김명진의 동생과 대학 선배들을 만나며 그녀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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