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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죽음, 왜?



책/학술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죽음, 왜?

    신간 '현대조선 잔혹사', 허환주 지음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구조적 문제를 이처럼 생생하게 파헤친 보고서가 있을까? 신간 '현대조선 잔혹사'는 현대중공업 하청 노조를 밀착 취재한 저자 허환주의 땀과 눈물이 서린 기록이다. 조선소에서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 임금 차별, 체불임금이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들의 비참한 처지는 침묵과 무관심 속에 묻혀 있다.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 전달하고 있다.

    프레시안 기자인 저자는 2012년 봄 경상남도의 작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2주 동안 현장 취재를 했고, 이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와 긴밀한 유대를 가지며 관련 취재 보도를 해왔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그간의 기사를 보완한 종합적인 보고서이다.

    이 책은 조선소가 산재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 고발한다.

    "4.13 총선을 이틀 앞우고 울산에서 또 사망 소식이 날아들었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에서만 세번째 발생한사망 사고였다. 이번에 하청 노동자였다. 현장 노동자들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둠컴컴한 블라스팅 공장 내에서 작업하다 사단이 났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공장 내 총 1백 개의 작업등 중 27개가 꺼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주일 뒤, 또다시 노동자 둘이 죽었다. 18일과 19일, 연달아 굴착기에 끼어 사망하고,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

    5월에도 사망 사고는 이어졌다. 10일과 11일 각각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두 조선소는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다. 한 해가 반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한 그룹에서 벌써 일곱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것이다. 이 중 다섯 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2014년, 열세 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에필로그, 269~270쪽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꺼려 하는 위험한 일을, 정규직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떠맡고 있다. 그럼에도 늘 해고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책에서 나는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고 버려지기를 반복하는 노동자들 가운데 하나인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삶과 일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떻게 조선소로 흘러오게 됐는지, 조선소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하길래 그토록 황망하게 사라져야 하는지…….세계 1위 조선서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현대 조선소 하청 노동자, 그리고 더 넓게는 지금 여기,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었다."
    -274쪽

    안전 시설을 갖추고 안전 수칙에 맞춰 일을 하면 원청에서 요구하는 공정 기일을 맞출 수 없다. 그럼에도 원청은 다음과 같은 수법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트럭으로 환자를 이송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원청에서 하청에 공문을 보냈어요. ' 트럭으로 절대 환자를 이송하지 마라.'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 공문을 보냈죠……. 자기들은 공문 보냈는데 '니들이 지키지 않았다'는 면피용이죠.…… 산재 은폐도 마찬가지에요. 하지 말라고 수차례 공문을 보내요. 하지막 정작 산재 신청을 하면 '왜 막지 못했느냐'고 질타하죠.

    또 한번은 물량팀에서 산재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보도가 쏟아졌어요. 그러자 원청에서 공문이 내려왔어요. '물량팀 운영하지 말라.' 조선소에 현수막도 붙였어요. 물량팀 운영하다 적발될 경우 퇴출시키겠다는 내용으로요. 하지만 물량팀이 운영되지 않으면 공정 자체가 안 된다는 걸 원청에서 모를 리 없잖아요. 그런데도 이런 공문을 보내죠. 자기들은 책임 없다는 알리바이인 셈이죠."
    -125쪽

    국내 조선소가 처음 만들어질 때 하청 방식은 단순 외주화 방식으로 '사내 하청'을 활용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점점 다단계로 변모해 갔다. 사내 하청 노동자는 '본공'으로 불리는 1차 사내 하청과 '물량팀'으로 불리는 2,3차 사내 하청으로 구분된다. 물량팀은 사내 하청업체로부터 특정 업무를 재하청받아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들로 급한 '물량'이 나왔을 때만 10~50명씩 팀을 짜서 신속히 납품하는 식으로 일을 한다.

    대형 조선 3사에서 근무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는 2016년 3월 말 현재 9만 5천명에 달한다. 원청 생산직 노동자 한 명당 하청 노동자는 3.5명이다. 특히 대형 조선사들이 주력한 해양플랜트 사업의 경우 생산직 노동자 10명 가운데 9명이 하청 노동자다. 물량팀의 경우 그 특성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업계 전체에 2만 명이 넘게 존재할 것으로 추산된다. 원청-하청 -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조선소 작업라인의 끝자리인 물량팀에 노동자들이 들어가는 이유는 임금이 다소 높기 때문이지만 현재는 일감이 끊겨 퇴출 1순위다. 하지만 사업자 등록조차 하지 않은 물량팀장이 많이 임금 체불이나 산재가 발생해도 법률상 사용자 책음을 묻기 어렵고 고용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원청과 하청의 임금 격차와 근속연수를 보자. 2014년 조선업의 경우를 살펴보면, 임금은 2년차 하청 노동자가 원청 노동자의 73.8%를 받았다. 월 통상임금은 원청이 140만 4천 원인 데 비해 하청은 118만 원이다. 조선업 평균 근속연수는 원청 기업의 경우 16년1개월인 반면, 사내 하청은 2.4개월에 불과하다.

    안전 사고는 무리한 기성 삭감과 관련이 있다. 기성이란 하도급 대금의 일종으로, 투입된 인원과 작업 시간 등을 계산해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주는 공사비를 가리킨다. 노무비, 잡비, 자재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기성이 낮으면 인건비를 아끼는 수밖에 없다. 기성을 절반으로 삭감하면 작업 시간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처럼 빡빡하게 진행되는 공정이 바뀌지 않는 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리한 기성 삭감이 몇몇 업체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따르면, 2015년 6월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협의회 소속 272개 소속 업체 중 60%가 임금을 주지 못했다. 2015년부터 2016년 초까지 하청 노동자 3천4백여 명의 임금 197억여 원이 체불됐다. 퇴직금과 임금을 주지 못해 노동부에 피소된 업체 사장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 그물망 설치는 고사하고 안전 교육도 어렵다. 안전 교육 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산정돼 임금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체불임금도 문제지만 올 들어 전방위로 진행디고 있는 '임금 삭감'도 문제다. 현재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에게 기본급 10%, 수당 30% 삭감에다 연장·휴일 근로도 없앴다. 게다가 연차수당과 휴업수당도 지급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급 순환 휴직까지 강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량 해고다. 2015년 1년 동안에만 최소 1만5천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2016년 들어서는 이런 대량 해고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 5개사(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해양조선) 하청업체 대표들은 정부에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이한 방법, 즉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내용은 철저히 기업 살리기였다. 기존 노동 구조를 더욱 유연화하는 안들이 주를 이뤘다. 노동자와 연관된 대책들은 모두 대량 해고로 인한 퇴직과 실업을 전제로 하고, 이주 노동자의 원활한 사용을 위한 내용뿐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는 전혀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게 기자회견이다. 이 와중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그룹에서 2016년 5월 현재 일곱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이 중 다섯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요즘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조선소 구조 조정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 시작도 현대중공업이다. 소위 '비상 경영 체제'를 선포하며 3천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사무직, 정규직 중심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의 해고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고는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고는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다.

    이 책은 산재 사망 사고 현장에 대한 밀도 있는 취재와 관계자 인터뷰, 사내 하청 노조와 하청업체 사장들의 생생한 인터뷰 등을 통해 사내 하청 문제에 대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

    '정규직 아버지와 비정규직 아들'에서 현대중공업 정규직인 아버지가 아들을 이 회사 하청 노동자자로 취업시켰다가 산재 사고로 잃은 사연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들과 같은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들도 정규직인 나와 똑같이 일한다. 원·하청으로 나눠 노동자를 갈라치기 한다. 이것으로 사람 목숨의 가치도 구분하고 있다. 원청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내 아들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이 위험한 현장 곳곳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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