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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어린 사과를 하자면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책/학술

    "진심 어린 사과를 하자면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신간 '본성이 답이다:진화 심리학자의 한국 사회 보고서', 전중환 지음

     

    "어떤 신호를 믿을 수 있게 하려면 그 신호를 만드는데 높은 비용이 들게 하라. 진화 생물학의 주요한 원리다. 즉, 말로만 때우려는 사람은 차마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신호를 가해자가 낸다면 상처 받은 피해자는 가해자가 새로 태어났음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다. 바로 자기를 낮추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영장류에서 하급자가 상급자를 달랠 때는 몸을 쭈그리며 앉고, 눈을 내리깔고, 취약한 신체 부분을 보여준다. 자신의 몸을 문자 그대로 작고 약하게 만들어서 "나는 네 밑이야. 도전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때는 굽실거리거나, 머리를 조아리거나, 무릎을 꿇는 행동을 한다. 자신을 낮추고 작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지위를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행동을 할 때 내 뜻대로 움직일수 없는 신체기관들이 동원되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를테면 혈액 순환이나 눈물샘의 활동은 자율 신경계가 관장하므로 우리 뜻과 상관 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무덤덤하고 굳은 얼굴로 사과하는 것은 꾸며 낼 수 있지만, 뺨이 붉어지고, 눈물을 흘리고, 말까지 더듬는 얼굴로 사과하는 것은 꾸며낼 수 없다. 의지와 상관없이, 진정으로 참회한 사람만 경험하는 생리적 변화를 가해자에게서 본 피해자는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말뿐인 사과를 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 받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자면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사람들이 사과를 잘 안하려 드는 건 어지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사과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진정을 용서하고 서로 협력하는 대등한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는 첩결이다.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주저할 이유가 없다."
    _본문 116~119

    비행기에서 부사장이 승무원들에게 고성을 지르며 파일을 집어 던진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모녀가 아르바이트생들의 무릎을 꿇린다. 갑질은 인간의 본성일까? 강자는 약자를 거리낌 없이 지배하고, 약자는 강자를 군말 없이 따르게끔 우리의 마음이 진화했을까?

    보수와 진보, 수구 꼴통과 종북 좌빨, 일간 베스트와 다음 아고라, 그리고 전원책과 유시민. 왜 어떤 사람들은 질서와 안정을 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변화와 혁신을 원할까? 보수와 진보라는 개인차는 왜 생겨나는 것이며 이들은 종종 서로 갈등과 반목을 일삼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것일까?

    십대 청소년들은 술, 담배, 오토바이 폭주, 약물, 패싸움, 규칙 위반, 난잡한 성행위 등 위험한 행동에 쉽게 빠져든다. 부모와 선생님에게 반항하고, 또래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며,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다. 최근엔 저 먼 나라의 무장 테러 집단인 IS(이슬람 국가)에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청소년까지 생겨났다. 왜 십대들은 이토록 위험천만한 행동들을 서슴없이 할까? 정말로, 비정상적인 가정이나 교육 환경이 초래하는 문제인 걸까?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했다가 사임했다. 대형 마트나 고객 센터 상담을 맡고 있는 여직원들은 일상적인 성희롱에 시달린다. 길을 걷다, 대중교통 안에서, 많은 여성들이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들을 한 번씩은 경험한다. 왜 성희롱과 성추행, 이보다 더한 강간과 같은 성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걸까? 이 같은 악을 뿌리 뽑을 해결 방안은 정말 없을까?

    진보와 보수의 극렬한 대립, 십대들의 탈선, ‘헬조선’으로 지칭되는 청년 실업과 골 깊은 경제적 불평등, 무상 보육 및 무상 급식을 비롯한 복지 정책을 둘러싼 논쟁, 권력자들의 ‘갑질’,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행위 등 한국 정치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들.

    신간 '본성이 답이다'는 이러한 문제들을 ‘진화’라는 심도 깊은 렌즈를 통해 속속들이 파헤친다. 이 책은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지난 4년 여간 한국 사회와 문화, 정치 현상들을 주의 깊게 관찰, 분석하고 ‘인간 본성’에 근거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진화 심리학 스티븐 핑커는 인간 본성을 다룬 고전 '빈 서판'에서 “인간 본성이 문제다. 그러나 인간 본성이 또한 그 해결책이다.”라고 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현대 사회와 문화는 인간 마음의 산물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처방하기 위해서는 왜 우리 마음이 그와 같은 행동, 그와 같은 결과물을 드러내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본성이 답이다'는 사회적 문제들의 원인이 우리 본성 안에 있기에,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우리 본성 안에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두 정치적 성향이 우리 마음의 어떤 작용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지를 알아낸다면 상대 진영을 설득하는 전략을 짜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십대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이나 일탈 같은 어리석고 위험한 행동에 쉽게 빠져드는 원인, 영아 살해나 아동 학대가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를 이해한다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불안정한 삶 속에 내몰리지 않게 방지할 수 있다. 사회적 복지와 분배를 둘러싼 갈등들을 유발하는 인간 본성을 내밀히 살펴본다면, 장려하거나 억제하는 정책에 따르는 이득과 손실을 정확하게 가늠하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갑질’로 대표되는 권력자들의 횡포,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양산할 만큼 점점 더 깊어만 가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데 우리 사회가 노력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그보다 더 큰 문제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조언 또한 얻을 수 있다.

    '본성이 답이다'는 우리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들로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곧 이기적인 본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는 인간이 어떤 환경 조건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지, 어떤 환경 조건에서는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보이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전쟁과 살인, 대립과 갈등, 아동이나 여성과 같은 약자를 향한 폭력 등 우리 사회에서 나날이 불거지고 있는 갖은 사회악들이 도대체 왜 일어나는지, 인간 본성을 근거로 한 인과적 설명이 먼저 이루어진다면 사회악을 보다 효과적으로 줄이는 해결 방안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내보이는 각종 문제점들을 근본적인 부분에서 파악하고, 보다 나은 사회, 이타적이고 협동적인 사회로 나아가게 만들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미국 제4대 대통령이자 정치학자인 제임스 매디슨은 “인간 본성에 관한 가장 위대한 반성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정치이겠는가?”라고 했다. 문제도, 해결 방안도 모두 우리 본성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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