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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녀의 지독한 인생…독일 소설 '끝나지 않는 여름'



책/학술

    17세 소녀의 지독한 인생…독일 소설 '끝나지 않는 여름'

    반쪽짜리 인생들의 특별한 순간들…최민우 소설 '머리검은토기와 그밖의 이야기들'

     

    독일 소설 '끝나는 않는 여름'은 17세 소녀 셰리든의 지독하고도 뜨거운 성장기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양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양오빠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어린 소녀는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성적 모험을 즐기고,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고, 끔찍한 범죄의 주인공이 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방랑한다.

    황량한 소도시에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서 고향을 탈출하기만을 바라는 소녀가 있었다. 엄격한 양어머니와 무거운 집안 분위기, 따분한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대도시로 가서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던 매력적인 열일곱 소녀. 진정으로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던 고독한 입양아. 그러나 소녀가 마침내 고향을 떠나던 밤, 막내오빠가 아버지와 다른 오빠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여름을 삼킨 소녀'에서 강간과 낙태, 살인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셰리든은 이제 다섯 명이 죽고 두 명이 중상을 입은 존속살인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 몰려 전국적인 비난을 받는다. 이름을 바꾸고, 신원을 숨기고, 소문이 미치지 않는 먼 곳까지 도망쳐도 소용 없다. 소녀는 계속해서 잘못된 남자를 사랑하고, 어리석은 결정들을 내리고, 그럼으로써 잔인한 운명과 다시 마주하게 될 테니까.

    셰리든은 자신의 감정이 가리키는 길을 미련스러우리만치 진지하게 좆는다. 설사 그 길이 대부분 틀린 길이라고 할지라도.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북로드/488쪽/ 13,800원

     

    최민우 작가의 첫 소설집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진부한 현실 속에서 작은 틈새를 발견해내고 있으며, 그 틈새야말로 우리를 특별한 삶의 순간으로 데려다줄 유일한 가능성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민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뭔가 부족한 듯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1인용 돈까스집에 그려진 가짜 문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레오파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덜컥 아이부터 임신한 의붓딸과 그녀의 남자 친구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한물 간 트로트 가수(「머리검은토끼」), 우연히 취직하게 된 ‘떴다방’에서 오래전 집을 나갔던 어머니와 재회하게 되는 ‘나’(「반ː」), 그리고 옛 애인이었던 민영이 과거에 후원금을 노린 부녀 사기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와 거리를 두려는 ‘나’(「코끼리가 걷는 밤」) 까지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반쪽짜리 인생들이다. 하지만 반쪽과 반쪽이 만나서 완벽한 하나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다행이라면, 반쪽과 반쪽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짜르르한 스파크가 우리를 권태로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점이다.

    책 속으로

    어질어질한 머릿속에서 민희의 얼굴과 현숙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마치 민희가 지금 자기 아내로, 다른 남자와 낳은 딸과 함께 언제든지 조곤조곤한 말투로 자신을 속일 준비가 되어 있는 현명하고 머리 검은 아내로 둔갑해 지금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기라도 하듯. (「머리검은토끼」, 87쪽)

    우리가 필요할 때는 말을 걸고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동정도 하지만 결코 얼굴을 기억하지는 않는 사람들과 불현듯 눈을 마주치게 되는 바로 그때, 코끼리처럼 큰 귀에 우람한 덩치의 중년 남자와 커서 미인이 될지도 모를 퉁퉁한 여중생이 불길한 비밀을 감춘 채 인구 천만의 도시 속에서 약간의 후원금을 벗 삼아 발걸음을 옮기며 골목과 거리를 떠도는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착각에 가끔 빠지기도 했다. (「코끼리가 걷는 밤」, 169쪽)

    좁고 고요한 임대아파트 부엌에서 부용이 병철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을 때 그의 동공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바싹 졸아들었다. 그다음부터 그는 고기였다. 누가 만져도 똑같은 고기. 누구라도 살과 뼈를 가르고 뼈와 뼈를 분리하고 가죽을 벗겨내고 연골을 파내고 지방을 밀어내고 털을 골라내고 내장을 다듬고 피를 씻어낼 수 있는 고기. (「여자처럼」,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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