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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완벽한 거짓말을 연습했다"…소설 '거의 모든 거짓말'



책/학술

    "그때부터 완벽한 거짓말을 연습했다"…소설 '거의 모든 거짓말'

    신간 소설 '해무도'

     

    전석순 작가의 새장편소설 '거의 모든 거짓말'은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인 주인공의 거짓말 가이드북이다. ‘나’는 3급이거나 1급 거짓말 자격증을 소지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혹은 거짓말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상대방과 거짓말 게임을 벌인다. 자격증 소지자는 백화점 매장이나 레스토랑에 투입되어 직원들의 친절도를 판별하는 일을 하거나 급수가 높은 경우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 해내는 심부름을 한다. '거의 모든 거짓말'에서 거짓말은 능력과 스펙이 되고 주인공은 스펙을 갖추려 발버둥치는 청년에 불과하다. 독자는 주인공의 거짓말을 따라 가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 소설은 시종 건조하고 차분한 어조로 사건을 이어가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거짓말일 수 있다는 긴장을 유지하며 독자의 시선을 잡아챈다.

    ‘나’는 이제 2급에서 1급으로 자격증의 급수를 높이길 바란다. 거짓말에 대한 철학과 자신감을 보이는 주인공은 이제 사랑 앞에서 거짓과 진실을 버무리기 시작한다. 여자 앞에는 남자와 소년이 있고, 주인공인 여자는 그들 앞에서 성공적인 거짓말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을 변질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덜 피어 궁색한 거짓말”이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주인공은 거짓말로 사랑을 유지시키는 데 능수능란하다. 사랑을 위한 진실, 거짓을 위한 사랑은 실체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숲처럼 그들의 관계를 둘러싸고 미지의 색을 뿜는다. 모든 것이 희미해졌을 때 기어코 드러나는 진실은 그녀의 거짓말이라는 게 결국 ‘친’ 거짓말이 아닌 어설픈 구라였음을 밝혀 준다. 그녀의 거짓말은 여기서 멈추는 것일까. 우리의 거짓말은 이제 시작인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가 거짓과 진실의 숲에 들어갈 차례다.

    책 속으로

    그러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거짓말을 쳐 왔다. 연인과 기대에 못 미치는 밤을 보내고 나서도 말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나에게 연민을 품는 사람들에게도 나도 왕년엔 잘 나갔다고 외쳤을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만 이미 많은 부분이 거짓말로 얼룩져 있다. 얼룩은 전체를 뒤덮어 무늬를 이룬 지 오래다. 이젠 어디가 얼룩이고 어디가 멀쩡한 부분인지도 알 수 없다. -24쪽

    그때부터 완벽한 거짓말을 연습했다. 너무나도 완벽해서 나마저도 진짠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의 거짓말. 선물을 받으려면 산타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믿는 척해야 했다. 산타를 믿지 않는 아이에게는 결코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익은 오로지 거짓말쟁이들의 것임이 분명해졌다. -72쪽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내뱉는다면 결국 거짓말이 된다. 들켰을 때도 당당하고 뻔뻔해지려면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예전엔 거짓말을 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거짓말을 또렷하게 의식하면서 쳤다. 지금 던진 게 잘 통할지 가늠해 본다는 건 이미 허술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그때 이미 거짓말이 노쇠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157쪽

    전석순 지음/민음사/248쪽/13,000원

     

    신간 '해무도'는 외딴 섬마을에 전해져오는 구전 괴담을 소재로 밀실 미스터리이다. 고립된 섬을 무대로 일곱 명의 인물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살인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내용을 섬뜩한 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소녀의 몸이 ‘하얀 공포’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을 때 즈음, 그는 그 하얀 공포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슴 한 구석이 쿵쾅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하얀 공포는 그의 영혼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것,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게 그를 옭아매고 있던 것이었다. 그랬다. 그것은 지난 이십 년을 그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던 바로 그 해무(海霧)였던 것이다."

    해무가 끼면 원한에 맺힌 할미 구렁이가 나타나 사람을 끌고간다는 기괴한 전설이 내려오는 섬에서 두 사내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마침 은사를 뵙기 위해 섬에 들렀던 외지인 '치수'는 섬마을 사람들이 쉬쉬하며 사건을 묻어두려는 데 의문을 품는다. 도망치듯 섬을 떠나온 지 20년 후, 은사인 정 교수의 부고를 듣고 다시 섬을 찾는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섬에서 그는 과거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을 하나둘 만난다. 그리고 때마침 몰아닥친 눈보라와 기상 악화로 섬에 고립되고, 급기야 일행 중 한 명이 목이 잘린 채 발견되지 모두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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