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무현대통령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거론했다.
노 대통령은 어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한일간의 과거 진실을 규명해서 사과하고 반성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해는 그 다음의 일이며, 이것이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과거 청산의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해 7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임기 중에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노대통령은 그동안 양국관계의 진전을 고려해 과거사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았지만 우리의 일방적인 노력 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해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올해는 한일 수교 40주년에 광복 60주년이 겹치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뜻깊은 해이다. 두 나라 정부도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삼아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당국의 외교자세와 역사인식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왔다.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 대사는 주재국 수도인 서울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 시마네 현은 독도의 날 제정 조례안을 만들고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쪽으로는 양국의 우정을 내세우면서 한쪽에서는 과거 제국주의의 사고를 버리지 않고 있는 일본의 이중적 태도가 더욱 노골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일본과 한일간의 과거사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입장을 밝힌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실 우리 정부는 김 영삼 김 대중 정권을 거치면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갈수록 온건해져 왔다. 잊을만하면 발생하곤 하던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외교는 무대응 침묵이 가장 좋은 정책이라는 자세를 보였다.
일본 정부나 우파 학자들의 무례한 행동에 우리 정부의 나약한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적지 않은 굴욕감을 느껴 온 것이다.
이번 노 무현 대통령의 3.1절 경축사 발언을 계기로 일본도 법적 외교적 차원의 과거 청산만 내세우지 말고 징용과 위안부 등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한국민들에게 실질적인 위로가 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의 대일 외교도 보다 능동적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혹시 노 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실제 대일 외교에는 적용되지 않고 국내 여론의 무마용이라면 국민들은 더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정부도 대통령의 한일관계 인식을 토대로 외교적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고 과거사 정리 작업에도 보다 전향적으로 임해야 한다.
이 정희 CBS해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