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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도정일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외 3권



책/학술

    [새책]도정일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외 3권

    박희수 시집, 주명철 프랑사 혁명사 제3권, 지중해 기행

     

    문학평론가 도정일의 첫번째 저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개정판이 출간됐다.

    1994년 당시 '늦깎이' 신예 비평가였던 저자의 이 책은 출간 후 평론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0쇄 10,000부의 판매고를 올리고 절판된 이력을 갖고 있다.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개정판은 초판본의 차례 그대로 문장 그대로를 살리고 오류를 바로잡아 출간되었다. 1부 '시대의 시'에는 당시 도정일이 계간지 <문예중앙> '이 계절의 시'란에 연재하던 평론이 주로 실려 있는데, 여기서 저자가 집중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은 생태/환경/자연과 문학 사이의 함수관계이다.

    도정일의 시론, 시인론, 문학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2부 '기억을 위하여'에는 저자 특유의 "시의 비밀스러운 숲의 미로를 꿰뚫을 시원한 안내 화살표" 같은 글들이 담겨 있다.

    3부 '혼돈시대의 소설'에서 도정일은 영상매체의 시대, 소비문화의 시대,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문자예술/서사의 역할과 위상은 변함없음을, 오히려 점점 더 중요해지기까지 함을 역설한다.

    4부 '왜 문학인가'에서 저자는 인문문화적 가치의 위기와 문화의 몰락 현상에 맞서기 위해서 비평의 사회적 소임/공공성을 되새기고 새로운 문학교육의 도입을 촉구한다.

    책 속에서

    내가 비평 작업을 시작했던 90년대 초 내게는 문학비평의 문학적・사회적 과제에 관한 어떤 인식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그 세 가지는 첫째, 비평의 대중성 또는 비평의 대중적 친숙화를 도모하는 일, 둘째는 비평의 사회적 공공성을 더 깊게 인식하고 실천하는 일, 셋째는 문학예술과 사회와 삶에 제기되는 당대적 위기 국면들에 대한 비평의 사유와 성찰을 제시하는 일 등이었다. 비평의 대중적 친숙화를 위해서는 비평의 어휘와 언어와 문체에 한차례 쇄신의 기회를 도입하고 비평의 화두를 당대적 삶의 일상으로부터 끌어내거나 거기 연결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개정판 서문에서

    도정일 지음/문학동네/388쪽/14,800원

     

    2009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희수(30) 시인의 첫 시집 '물고기들의 기적'이 출간되었다.

    철로는 산으로 파고든다/햇살이 쏟아지는 버드나무 잎사귀/바람은 투명한 손을 내밀어 나무의 앞섶을 어루만진다/나무는 몸을 열며 상처를 드러내고/거기에는 새로 차오르는 물과 움직이는 맥박이 있다 //여름이 지나 잎사귀들은 물 위에 띄운 배 같으리,/흐르는 여울을 따라 낮은 곳으로 흘러갈 것이니/숨 쉬는 바다를 만나 푸른 살 속에 파묻혀/열매보다 더 깊게 심연으로 뻗어가리라(「물고기들의 기적」 부분)

    관념적인 인상이 두드러지는 박희수의 첫 시집 '물고기들의 기적'에는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인간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미시적인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비극적 세계관이 짙게 깔려 있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사라짐도 사라지는" 유한한 삶의 본질과 "소멸(消滅)이라는 단어가 지닌 흰 어감"에 주목하면서 "적어도 내가 누구였을 수는 있겠지만/누구일 수는 없"(「죽음의 집 1」)다는 뼈아픈 고백을 통해 시인은 죽음을 자신의 삶과 언어를 구속하는 기제로 받아들인다. '다섯편의 노래와 한편의 의례'로 구성된 「검은 낚시꾼」에서 다양한 운명의 행로를 다채로운 형식으로 읊고 있듯이, 이 죽음을 통해 시인은 인간 존재의 한계라는 비극적 인식 속에서 "자연사를 노래하듯이 문명사를 노래하고, 문명사를 읽듯이 자연사를 관조하며 인간사의 전체적인 윤곽을 가늠"(강동호, 해설)한다.

    누가 우리에게 끝없이/달리라는 형벌을 주었는가 누가/우리에게 끝없이 달리라는 형벌을/누가 우리에게 끝없이 달리라고/우리가 마침내 끝날 때까지//(…)//달리기는 우리 안에서 듣는 음악이다/달려갈수록 우리는 달리기가 되고/달리기라는 끈이 달리는 우리들을 하나로/묶어준다/포개져 쌓인 장작들이/모닥불 속에서 하나로 타오르듯이//오 달리는 강물이여/너는 포말인가, 노도인가, 파도치는 흐름인가?(「달리기」 부분)

    [추천사]
    왜 눈물이 나서 혼났는지 설명하겠다. 1부를 읽었다. 여기는 어떻게 아름다운가? 어떻게 "더럽디더러운 풍경에서/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는가? 그런 질문들을 읽고 있었다. 「기묘하게 힘찬 합창」이라는 시에서 답을 얻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읽어보면 알 것이다. 어쨌든 거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죽은 것들의 생명력은 신의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생명으로 가득 찬 시집이로군. 힘으로 가득 찬 시집이로군. 그렇게 2부로 갔다. 거기서 「죽음의 집 2」라는 시를 읽었다. 「죽음의 집 1」은 이 시집의 첫번째 시였지. 「죽음의 집 1」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그곳으로 갔다. 편지였다. 거기엔 귀신도 있고, 신도 있고, 생명도 있고, 죽음도 있었다. 정확히는 그것들을 관찰하는 박희수가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울고 있다는 문장을 쓰고 있는 박희수를 만났는데, 이번엔 박희수가 울고 있었다. 나도 울었다. 그리고 다시 2부를 읽었다. 3부도 읽었다. 거기엔 울지 않으려는 박희수가 있었다. 박희수는 지금 당장 죽을 수도, 개 같은 세상을 마냥 아름답고 힘찬 것으로 여길 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는 계속 새로운 형식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언어가 생명이 되게. 죽기 위해 흐르는 강처럼. 김승일 시인

    박희수 지음/창비/180면/8,000원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제3권 <진정한 혁명의="" 시작="" 신분제="" 국가에서="" 국민국가로="">가 출간됐다.

    제3권에는 튈르리 궁에서 살던 왕과 국회가 화합과 불화를 일으키면서 새 체제를 만들어가는 1789년 10월부터 1790년 7월 14일 전국연맹제까지 일어난 일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이 기간에 일어난 일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으로는 혁명기에 처음으로 국사범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사법개혁과 재판소 설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 파리와 지방정부를 조직해 그동안 중앙집권화했던 권력을 지방에 분산시키는 법을 만든 일, 재정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성직자 시민헌법’을 제정해 종교인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편입하게 한 일을 꼽을 수 있다.

    저자는 아무리 혁명이 대중의 힘 또는 폭력과 함께 추진력을 얻는 것이라 할지라도 늘 새로운 헌정질서를 창조하는 민주적 절차야말로 프랑스 혁명의 본질적 측면인 만큼 국회의원들의 다양한 발언을 통해 현장감을 추구했다고 밝힌다.

    최근 47년 만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부활로 여론의 주목을 한껏 받았던 우리 국회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본이 바로 법치주의라는 것,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지난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그 과정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엇보다 진지한 토론의 과정이 얼마나 필요불가결한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나마 우리의 87년 체제가 얼마나 많은 희생 위에서 가까스로 피어난 꽃이었는지, 과연 어떻게 그 체제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지 성찰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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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평등, 우애가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표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양립하기 어려운 자유와 평등의 조절자는 우애였다. 지난 6, 7월에 수비대가 파리 주민들과 형제애를 나누었듯이 이번에도 시위대는 금세 우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우애는 단결을 뜻했다. 이것이 라파예트의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반대파는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라파예트를 '모르페우스 장군le général Morphée'이라 놀렸다.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왕궁이 시위대에게 뚫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그를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 빗대어 놀렸던 것이다. (52~53쪽)

    주명철 지음 /여문책/ 324쪽/ 18,000원

     

    <지중해 여행="" 지도,="" 나를="" 기억하다="">의 저자 송영만은 지중해를 품에 안은 유럽으로 떠나 시공간을 넘나들며 여행한다. 저자는 지중해의 용광로 같은 융합 문명에 주목한다. 어느 한 문명이나 종교가 다른 존재를 질식시켰던 암흑의 바다가 아니었기에 지중해를 더욱 좋아한다. 항상 문명의 먼동을 향해 출렁였던 화해와 조화의 바다였다고 본다.

    코트다쥐르와 프로방스를 탐방한 전반부엔 개인사적인 고백과 신기루처럼 사라져간 유소년 시절의 아스라한 풍광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 한 개인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억 여행은 때로는 상상력의 바다를 헤엄친다. 감초처럼 끼어든 통영과 부산은 언제든 갈 수 있는 '나만의 지중해'로 쉼표처럼 들어가 이 책의 악센트로 자리 잡았다. 저자에게는 지중해보다도 훨씬 매력적인, 소중한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우리 모두의 지중해'다. 후반부는 역사 기행과 도시 기행이 주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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